초단편
늘 그렇듯 저녁인사를 위해 그녀에게 전화했다. 목소리가 잠겨 있었다. 조금 지나자 참기 힘들다는 듯 울음이 터져나왔다.
“왜 그래? 말을 해야 알지?”
“그냥….”
“말을 해보라고!”
“아냐.”
“왜 울고 그래? 지금 몇 신데…. 왜 혼자 울고 있냐고!”
난방을 아낀다고 방바닥은 얼음처럼 차가울 것이다. 냉동기의 찬밥덩이를 렌지에 돌려 새가 모이를 쪼듯 조금 먹긴 했을 게다. 나도 모르게 화를 치밀어 올라 일방적으로 전화를 끊었다.
잠을 찾을 수 없었다. 가도 가도 양 스무 마리는 없었다. 그 허연 길에서 핑크빛 잠의 조각케이크를 조금 얻어먹기도 했다. 언 나무들의 창유리를 지나 멀리까지 걸어가서 눈 내린 들판 한가운데 섰다.
“정희야~”
내가 서 있는 지점을 중심으로 둥근 지구가 거대한 몸체를 조금 들어 올린 것도 같았다. 내 안에서 휘어진 지평선을 만나고부터 줄곧 그 너머에 닿고 싶었다. 직감적으로 그곳은 혼자 가야만 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지점에 가까워질수록 순도 99% 혼자만의 공간은 무너지기 시작했다. 새하얀 들판을 만날수록 깊고 뜨겁게 무엇인가를 향한 목마름이 솟구치곤 했다.
‘어쩌면 사람이 그리운 건 아닐까!’
하루의 지평선 너머로 누군가를 부르는 목소리의 파장이 붉은 노을처럼 피어났다가 가라앉았다.
“이 근처인 것 같은데….”
눈밭에 서서 기다렸다. 햇살 출렁이는 물속을 지나 주황빛 빛살이 낡은 의자를 어루만지는 모퉁이를 돌았다. 창틀에 스며든 감청색 새의 안쪽 날개를 흘끗 보기도 했다. 흘러가는 그 모든 것을 깊게 들이마시면서 언젠가 내가 사라져야 할 길에서 한참 서성거렸다.
“이 지점에서 헤어진 것 같은데….”
그때 작은 목소리가 내 안 어디선가 새어나왔다.
“어제는 사형장에 끌려가는 꿈을 꿨어.”
5톤 적재량의 화물차가 20년이 넘도록 7톤, 9톤, 13톤을 지고 달려왔다는 걸 엄마인 나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감각이 마비된 것 같아. 웃을 일이 없어. 반복, 하루가 다 똑같아. 반복일 뿐이야!”
그래서 그녀는 텅 빈 밤이면 혼자 마른 샘가에서 울고 있었을까. 서른 살 그녀가 그대로 주저앉은 채 일어날 수 없을까봐 화가 났던 게다. 초과화물을 지고 아무리 달려가도 목적지는 나타나지 않았다. 누군가의 속임수에 걸려든 것 같았지만 그자가 누군지를 알 수 없었다.
“누구야, 도대체!”
“나의 천적은 나인 거지.”
지평선을 바라볼 때면 늘 만나게 되는 것, 그곳이 세상 끝이라고 생각되어도 그 너머는 있을 것이다. 혼자만이 아니라는 것, 때로 혼자가 더 힘들기도 하다는 것, 그래서 누군가를 더 크게 불러야 한다고 말해주고 싶었다. 다시 그녀에게 다가가 몸을 낮췄다.
“조금이라도 나눠 들고 싶어.”
“미안해, 이젠 나아진 것 같아.”
눈 내린 들판 한 구석엔 그녀가 내동댕이친 짐들이 보였다. 속이 빈 종이상자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