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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금이 Apr 09. 2018

너 없는 시소

초단편

 

 “혜령이 있어요?”

 “……….”

 “어디 갔어요?”

 “없다! 갔다!”

 

 목소리의 떨림 속에서 알 수 있었다. 그녀가 어디로 갔는지를. 순식간에 내 귀는 높고 기다란 유리창을 넘어 메마른 골목 끝에 서 있었다. 12월의 바람은 벗은 나무의 남은 잎들마저 떨어트렸다. 바싹 여윈 잎들의 휜 등이 땅바닥에 쓸리는 소리를 듣고 있었다. 그때 작은 생명이 몸속에 막 자리 잡고 있었지만 혜령이 엄마의 말은 파편화되어 오랜 시간 내 의식의 막을 찔러댔다. 


 그녀는 작고 축축한 손으로 내 손을 잡곤 했다. 언제나 어디서든 나를 기다렸다가 불쑥 나타났다. 그녀의 집은 5층 빌딩이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꼭대기 층으로 올라가면 방이 몇 개인지도 모르는 집에 들어설 수 있었다. 그곳은 내가 봤던 가장 견고한 궁전이었다. 공부를 잘한다는 이유로 혹은 그녀의 취향에 맞는다는 이유로 간택되어져 날마다 숙제를 함께 했다. 그녀의 방이 내 방이었으면 좋겠다는 상상을 지치도록 했다. 잘 사는 집 아이들이 그렇듯 그녀는 까탈스럽고 괴팍하기까지 했다. 아줌마를 시켜 내겐 불고기와 뜨거운 밥을 차려주고는 자신은 언제나 라면과 콜라를 먹곤 했다. 난 그 덕분에 새로 출시된 케이크를 날마다 먹을 수 있었다. 

 

 달리 친구를 사귀지 않았던 이유로 내가 단 한 명의 친구였지만 난 그런 그녀를 인내심으로 대하지 못했다. 일 년도 넘게 축축한 손에 잡힌 채 엘리베이터를 오르내렸지만 우정이 오래 가지는 못했다. 그녀가 죽도록 싫어졌고 작은 손이 스멀거리는 벌레 같았으니까. 내팽개치듯 먼저 떠난 것은 나였지만 아무리 돌아봐도 고등학교 삼 년을 걸쳐 친구라곤 없었기에 대학을 들어간 봄날, 다시 피어난 꽃들처럼 찾아갔다. 스무 살의 나는 수녀가 되고자 결심했던 때였으니까, 미끈거리는 손은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자신의 목에 걸려 있던 십자목걸이를 풀어 내 목에 걸어주었다. 


 “이건 너한테 더 잘 어울린다. 이젠 자주 놀러올 거지?”

 

 늦은 사월인데도 겨울옷을 입고는 담 뒤쪽으로 개천이 흐르는 나의 집을 찾아오기도 했다. 오, 그 집 안방엔 술에 쩔은 아버지가 누워있었다. 수녀가 되겠다고, 아니 중이 되겠다고 그녀를 떠난 후, 순도 100%의 세상은 그 어디에도 없다는 것을 뒤늦게 깨닫기까지 삼 년인가, 사 년이 걸렸다. 대학 졸업장을 받긴 했다. 세상 속에서 내가 살 수 있는 성을 짓기로 한 후 그녀에게 전화 걸었다.


 이제야 다시금 물어보자. 넌, 혜령이를, 정말, 좋아했던 거니? 좋아한다는 것은 내게 없는 무엇을 상대방에게 욕망하는 걸까. 감방에 갇힌 무기수, 이기주의! 한쪽 유방을 잘라냈다고 했다. 그녀는 여전히 친구가 없었다. 왼쪽 다리와 오른쪽 다리 길이가 다른 채 커버린 우리의 우정은 예전처럼 손을 잡았지만 걸을 때마다 조금 절뚝거렸다. 더구나 함께 할 숙제가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러나 의무감이었는지, 미안함이었는지 자주 만났다. 명동성당에도  갔다. 12월의 네온사인이 흐르는 거리도 걸었다. 그녀는 옷을 샀고 내게 사주기도 했다. 그리고 영화도 보러갔다. 마지막 콘서트! 


 난 어리석게도 유방을 잘라냈으니까 암이 완치됐다고 생각했다. 자꾸 흘러내리는 한쪽 브래지어 끈을 치켜 올리며 햇살 속 습기가 가득한 5월의 양수리 길을 걸었다. 어디로 갈지 정한 건 아니었다. 그녀는 습관처럼 내 손을 잡았다. 동쪽인지, 북쪽인지 손을 잡고 마냥 걸었다. 길옆으로 이름을 알 수 없는 꽃들이 피어 있었다. 그때 스물다섯이었다. 그 순간 내가 남자였더라면 좋았을 것 같았다. 그녀는 작은 꽃들처럼 어여쁘게 말하고 웃었다. 마침 구름장이 낮게 내려앉더니 소나기가 쏟아졌다. 블라우스가 흠뻑 젖어 움푹한 가슴이 드러나고 말았다.  


 “자꾸 브래지어가 흘러내려!”

 “괜찮겠어? 돌아갈까?”

 “아냐. 너무 시원해. 살 거 같아.”


 어렴풋이 느끼고 있었던 걸까. 자신에게 남은 시간이 길지 않다는 것을. 혹은 끔찍한 수술을 버텨내면서 이미 늙어버린 걸까. 생이 얼마나 몸서리칠 만큼 뜨거운지를 알고 있는 것 같았다. 


 “죽기 전에, 꼭, 한 번, 해 보고 싶어!”  


 내가 갖고 있는 시간과 그녀의 시간이 다르다는 걸 그땐 몰랐다. 그녀는 직감하고 있었던 것 같다. 자신에게 주어진 짧은 시간, 아직 해보지 못한 것들을 열망해야 한다는 것을. 그녀가 갈망하는 것들을 찾아다니는 동안 난 유학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어쩌면 암이 재발했다는 것을 그때 느끼고 있었는지도 몰랐다. 그래서 더욱 해보고 싶은 것들에 매달렸던 게 아닐까.


 “넓적다리가 너무 아파!”

 “미술 한다던 그 선배랑?”

 “응. 그냥 브래지어 차고….”

 “좋았어?”

 “뭐 좋기보다 너무 아프더라!”


 27살 유학을 준비하던 여름, 독일에서 결혼을 위해 나온 유학생과 한 달 만에 식을 올렸다. 급조된 결혼식에 그녀가 왔다. 독일은 근처에도 가보지 못하고 어찌저찌 마련한 신혼집에 휴지며 비누며 잔뜩 들고 찾아왔다. 붉은 작약꽃 그림을 액자에 넣어오기도 했다. 동양화과를 나온 자신의 그림이었다. 아, 그 작약꽃 그림을 삶의 모퉁이를 돌면서 잃어버렸다. 결혼과 동시에 임신과 출산. 첫아이의 백일이 채 지나지 않아 두 번째 아이를 임신하는 동안 그녀는 유방암이 재발하고 내게 간다는 인사도 없이 떠나갔다. 


 그녀 엄마와의 짧은 전화를 끊고 한 달도 넘게, 석 달도 넘게 그녀는 꿈으로 찾아들었다. 차가운 손을 내밀어 내 손을 잡고는 산등성이로 들판으로 밤새도록 쏘다녔다. 내 안에서 생명이 점점 자라나듯 꿈도 날마다 또렷해졌다. 난 그녀의 혼이 이 세상을 아직 떠나지 못했다고 생각했다. 아니면 나의 무엇이 그녀를 보내지 못한다고. 난 그때나 지금이나 친구가 없다. 우정이란 나의 삶 전체를 건네줘야 하는 무엇이니까. 그런 친구를 만나지 못했으니까. 그래서 그녀를 보내지 못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뱃속에 생명이 자라고 있었다. 밤마다 찾아오는 꿈의 길을 닫아야 했다. 난 반지하 방에서 위령제를 시작했다. 두 손을 크게 벌렸다가 모으고 다시 일어났다가 앉았다. 햇살이 드는 창을 한참 바라보았다. 내 안에 웅크리고 있는 그녀에게 속삭였다. 


 “잘 가, 이젠 가야지. 넌 내게 너무 많은 걸 줬어. 난 아무것도 준 게 없는데…. 나, 사는 날까지 널 기억할게. 네 이름을 불러줄게. 너 없는 시소에 가끔 올라탈게. 네가 친구라곤 나밖에 없었듯 내게도 너는 작고 어여쁜 친구니까. 둘도 없는…. 잘 가!”


 천도재라고 할까? 어쩌면 나의 평안을 위해 너의 허허로움을 다시 틀어막았는지도 모르겠다. 네가 살았다면 나의 삶은 더 행복했을까? 모든 우정도 다 나를 중심에 두는 이기주의로 더럽혀지고…. 너의 삶 전체를 내게 선물로 넘겨버린 여리고 축축한 영혼, 그런 너를 다시 서글프게 한 건 아닐까. 내 안에 쪼그리고 있는 너를 일으켜 세워 다짐을 받았으니까. 몸이 그리워서 밤마다 찾아오는 네게 오지 말라고, 중요한 일을 하고 있으니까 제발 가라고, 부탁했다. 그날 이후, 단 한 번도 너는 내 꿈에 나타나지 않았다. 단 한 번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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