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단상

서울살이

메리 크리스마스

by 참개

기억 들 중엔 이상하게 그 날의 바람이 어떠하였는지 혹은 신호등의 카운트다운 숫자가 얼마나 남았었는지 또렷하고도 선명하게 기억 나는 조각들이 있다.


내 21살의 크리스마스 이브날도 그 조각들 중 하나다. 고등학교를 한 살 늦게 들어간 나는 21살에 대학교를 들어갔다. 지금이야 웃으며 회자할수 있지만 그 당시엔 정말 힘든 것을 넘어서서 구질구질(?)한 생활을 했던 나의 21살은 가난했고, 또 뭘 사지도 않고 먹지도 않고 뭘 하지도 않았다. 그래야만 살 수 있었으니까.

내가 당장 할 수 있는 일은 정말 단순한 아르바이트밖에 없었다. 그래서 택배 상하차도 해보고, 전단지 알바, 호프집 서빙, 연회장 세팅 알바 등등 많은 것들을 했다. 그렇게 정신 없지만 대개 1학년들이 그렇듯 별 의미 없이 1년을 보냈고 크리스마스 이브가 되었다. 뭐 나는 그날도 수업을 마치고 강남에 있는 지금은 잘 기억이 안나지만 인터콘티넨탈 호텔이었나... 아무튼 그러한 호텔로 가서 연회장 서빙을 해서 하루 일당 3만원 좀 넘는 돈을 받았다.

유달리 그날 사람들이 많았나보다. 아마 크리스마스 이브라 다들 행복한 저녁에 시간가는줄 몰랐겠지. 11시가 넘어서도 끝나지 않자 매니저는 나에게 야간 수당을 줄테니 더 해달라고 부탁했고, 특별한 스케줄이 없는 나와 몇몇은 남아서 추가 업무를 하고 나니 새벽 한시였다. 매니저가 쥐어준 봉투 속에 야근수당과 교통비는 합해서 5만5천원정도 되었다.

택시를 탈까 하다가 일단 그냥 걷기로 했다. 어떻게 번 돈인데, 택시를 타는 것은 너무 큰 사치고 아까웠다. 눈이, 그것도 아주 함박눈이 내리고 있었다. 아직까지도 남아있는 사람들은 눈이 오는 화이트 크리스마스를 즐기고 있었고, 강남을 벗어나 교대쪽으로 들어서자 대로엔 나 뿐이었다.

갑자기 눈물이 나기 시작했다. 남들은 오늘의 저녁을 위해 15만원, 20만원씩 그냥 쓰는데, 나는 그깟 5만 5천원 때문에 이렇게 걸어야 하다니. 내 자신이 너무 비참하고 이 현실이 너무 싫고 분했다. 몸이 뻐근하고 피곤한 것이야 참아 낼 수 있지만, 마음 속에서 멍이 드는 것은 견뎌내기가 어려웠다.

결국 사당에 있는 집까지 눈을 맞으며, 울며 걸어왔다. 발이 시려서 얼어가는줄도 모르고 그냥 씩씩 거리면서 울며 걸어왔던 것 같다. 오면서 그 생각을 했다. 꼭, 정말 돈 많이벌거라고. 돈이 이 세상의 최고라고. 정말 악착같이 벌어서 올라가겠다고 다짐했다.


그래서 그런지 크리스마스만 되면 그 날이 생각나서 그런지 돈을 아끼기가 싫어진다. 남의 생일에 무슨 호들갑이냐는 생각이면서도 뭔가에 홀린것처럼 돈을 그냥 쓴다. 그리고 그건 어쩌면 그건 흰 돈봉투를 손에 쥔 채 부들부들 떨며 걸어갔던 눈길 위의 나에게 주는 위로 혹은 일종의 보상과 같은게 아닐까 생각해본다. 아마 올해 크리스마스도 아주 성대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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