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는 위로하지 않는다

조용히 시간을 지킬 뿐이다

by 이차분

고백하자면 저는 지극히 현실적이라고 해야 할까요. 공감 능력이 떨어진다고 해야 할까요. '감성'과는 참 거리가 먼 사람입니다. 이런 글을 쓰고 있으면서도요. 그래서일까요, 가끔 힘든 일이 있을 때에도 어떤 것에 위로를 받는다는 느낌이 생소합니다. 따뜻한 말, 글귀뿐만이 아닙니다. 아름다운 음악을 듣는다거나, 가슴이 뭉클해지는 영화를 본다거나. 혹은 누군가의 진심 어린 위로의 말로도 제 마음을 추스리기는 참 어렵습니다. 물론 그 말을 건넨 상대방의 마음에는 깊이 고마움을 느끼지만요. 다들 그런가요?


누군가는 묻습니다. '따뜻한 차가 위로 되지 않나요?', '차 마시는 것이 힐링 아닌가요?'라고요. 글쎄요. 따뜻한 차 한잔이 마음을 보듬어 주고, 위로를 준다는 이야기 수없이 보고, 들었지만 사실 아직까지도 느껴본 적은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힘들고 지칠 때면 습관적으로 차를 찾습니다. 물을 뜨겁게 끓이고, 다구를 데우고, 찻잎을 넣고, 차를 우리고, 우러난 차를 호호 불어 한 모금 마시는 것까지 이 일련의 과정들을 행합니다. 거의 기계처럼요.


처음 차를 마실 때는 조용하게 차를 우리면 자연스럽게 마음의 안정을 얻게 될 줄 알았습니다. 현실은 다르더라고요. 다관에 욱여넣은 찻잎처럼 제 머릿속은 복잡했고, 뜨거운 찻물처럼 마음은 들끓었습니다. 찻잎은 물에 닿아 서서히 풀어지고 있지만 저는 끝없이 이어지는 생각들로 엉키기 시작합니다. 그 순간은 차의 맛도 향도 느끼지 못한 채, 이미 식은 찻물만 관성처럼 들이켭니다.


차분하게 차를 마시다 보면 끝도 없이 꼬리를 물던 고민이 어느 순간 '탁' 하고 해결된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보통은 별 소득 없이 찻자리를 정리합니다. 엽저를 꺼내서 버리고, 다구를 헹구죠. 기력이 있다면 다건으로 하나씩 닦거나 아니면 건조대에 엎어 둡니다. 혹여 찻물이 들까 싶어 테이블은 꼭 닦고요.


하지만 이 무미건조한 과정 속 차가 주는 의미는 분명히 있습니다. 그저 시간을 벌어다 주었습니다. 생각해 보면 어떤 힘든 일이든 결국은 지나가더라고요. 그 시간을 차가 함께 해줍니다. 조용히 곁에서요. 찻자리를 준비하고, 차를 마시고, 정리하다 보면 시간은 흐르더라고요. 시간이 지나고 나면 으레 그렇듯이 힘들었던 순간도 별 게 아니게 되죠. 시간이 약이라거나 시간이 해결해 준다는 케케묵은 위로가 정답이라는 것을 이제는 알고 있으니까요.


앞으로 어떤 고민과 걱정, 힘든 일이 저를 찾아오게 될까요. 그때마다 저는 또 차를 찾게 되겠죠. 그리고 차는 저를 따뜻하게 안아주지도, 포근하게 달래주지도 않겠지만 그저 조용히 저와 함께 시간을 보낼 것입니다. 제 시간이 다 흐를 때 까지요.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나를 위해 찻자리 노동을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