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운동을 하게 된 이유
호각 소리에 맞춰 운동장 레일을 열심히 뛰었지만 결국 내 손등에 찍히는 도장은 숫자 ‘6’이었다. 6명 중 6등.
내가 운동에 소질이 없다는 사실을 처음 알게 된 순간이었다
생각해보면 어린 시절의 나는 친구들과 놀이터에서 노는 것보다 집에서 인형 갖고 노는 것을 좋아했고, 쉬는 시간에 술래잡기를 하기보다 책을 읽는 것을 좋아했다. 엄마는 이런 나를 보고 ‘하긴 너는 기어 다닐 시기에도 엉덩이를 끌고 다니더라’고 했다. 그냥 태생이 그런 아이였다.
학창 시절 내내 체육 시간이 곤욕이었다. 수우미양가 중 양, 가를 받는 일이 일상이었다. 체력장이라도 하는 날이면 학교를 가고 싶지 않았다. 어차피 윗몸일으키기 0개, 오래 매달리기 1초, 100m 달리기 23초, 유연성 -10 일 텐데 뭐하러 힘쓰나. 뜀틀을 뛰면 뜀틀 위에 턱 하니 앉기라도 해야 하는데 애초에 오르지를 못하고, 5개 정도 늘어 선 허들을 발로 하나씩 차면서 뛴 적도 있다. 배드민턴이나 탁구는 공 주우러 다니느라 운동이 되더라.
결론적으로 ‘운동’은 나와 연결 지으래야 지을 수 없는 단어였다.
어른이 되면 운동을 안 해도 될 줄 알았다. 체육시간이 없으니까. 하지만 다시 운동을 해야 할 시기가 찾아왔다. 일반 사무직 직장인인 나는 하루 종일 앉아서 일했고, 잦은 회식과 야근으로 저녁이면 자연스럽게 고칼로리 음식을 섭취하는 날들이 이어졌다. 분명 딱 보기 좋은 모습으로 대학교를 졸업을 했는데, 직장 생활이 길어질수록 어쩐지 내 양볼은 날이 갈수록 통통해지고, 옷 속에 가려진 뱃살은 자기표현을 하기 시작했다. 망했다. 결국 운동을 해야만 하는 시기가 다시 온 것이다.
운동을 시작한 대부분의 사람들이 으레 그렇듯이 나 또한 집 근처 헬스장을 방문해 야심 차게 3개월을 결제했다. 결과는 말 안 해도 뻔하다. 헬스장 관장님 통장만 두둑하게 만들어 드렸다. 등록할 때는 러닝머신이라도 뛰어야지라는 마음이었지만 오늘은 야근, 내일은 회식, 모레는 데이트, 그 다음날은 친구랑 약속. 주말은 피곤하니까 쉬어야지. 뭐 길게 말하지 않아도 이 글을 보는 누군가는 한 번쯤 겪었던 일.
그렇게 나는 또 운동과 멀어졌다.
인생 대부분의 시간을 통통한 체형으로 살아온 나에게 다이어트는 평생 숙제와 같았다. 먹는 것을 줄이고 운동을 하면 빠진다는, 너무나 당연하지만 불편한 사실을 나는 알고 있었지만 실천은 독한 사람들이나 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저 조금 통통할 뿐이지 일상생활에 큰 불편함도 없고, 특별히 아픈 곳도 없으니 독하게 빼야 할 필요성도 못 느꼈다. 남들처럼 ‘다이어트는 내일부터’, ‘맛있으면 0칼로리’를 외치며 먹고 싶으면 먹고, 움직이지는 않고, 그러고 살았지 뭐. 다이어트가 아니라 건강을 위해서라도 운동을 하는 게 좋다고는 하지만 지금 나는 건강한데? 안 아픈데? 굳이?
어쨌든 사무직 직장인인 나는 2년에 한 번씩 건강검진을 해야 했다. 간단한 신체검사와 피검사가 다지만. 건강검진 결과서를 받으면 어느새 또 늘어버린 몸무게 보고 잠시 충격받을 뿐 다른 부분은 크게 걱정할 것이 없었다. 그러던 중 20대 후반 어느 날, <혈당 수치 98>이 찍힌 결과지를 받게 되었다. 생각해보니 그 이전 검사에서도 항상 90대의 혈당을 기록했었다. 병원 홍보 관련 일을 쭉 해오던 나는 나는 공복혈당이 100 이상이면 공복혈당장애, 즉 당뇨 전단계이며 126부터는 당뇨라는 콘텐츠를 쓴 기억이 떠올랐다. 나 여기서 더 높아지면 당뇨 위험 단계라는 건가? 나는 아직 20대인데?
당뇨는 가족력이 있는 질환이다. 가족 중 당뇨가 있다면 내가 당뇨일 확률이 매우 높아진다. 나의 경우 부모님은 당뇨가 없지만 외할머니가 꽤 오래 당뇨를 앓고 계셨다. 푸근한 우리 할머니는 혈당 관리를 위해 식사하실 때면 잡곡밥을 반공기만 먹고, 달달한 간식은 입에도 대지 않으시고, 과일조차 가려가며 드셨다. 그리고 살을 빼기 위해 수영이나 헬스 등 운동도 꾸준히 다니셨다.
그렇다면 나는 우리 할머니의 유전자를 물려받은 걸까? 끼워 맞추기일 수도 있지만 나는 체형도, 식성도 엄마가 아니라 정반대인 할머니를 닮은 터라 괜히 걱정되기 시작했다. 흰쌀밥과 달달한 케이크를 포기할 수 없는 나에게 이 무슨 청천벽력같은 이야기인지. 혹시나 싶어 최근 3개월의 혈당을 알 수 있는 당화혈색소 검사도 했는데 5.9로 당뇨전단계라고 나왔다. 20대 후반인 나에게 당뇨 빨간불이 켜진 것이다.
당뇨에 관한 이야기를 하려는 것은 아니니 의학적 지식은 넘어가고 당뇨 관리에 대해서만 간단히 정리해보자면 당뇨는 혈당이 높아지지 않도록 평생 관리해야 하는 질환이다. 혈당 관리를 위해서는 당 섭취를 줄이는 식이요법과, 근력을 키우는 운동요법이 가장 기본이다. 나의 건강검진표를 보고 의사 선생님이 한 한마디가 가슴에 콕 박혔다.
‘당뇨가 오긴 올 거예요. 관리해서 최대한 늦게 오도록 해야죠’
암도 완치되는 세상이지만 아직까지 당뇨는 수술로 치료할 수 있는 병도 아니고, 당장 목숨이 위험한 병도 아니다. 하지만 서서히 온몸을 망가뜨리고, 여러 가지 합병증으로 고생하게 만든다. 그 당시에는 안과에서 일하고 있었는데 당뇨망막병증 관련 콘텐츠를 쓰다가 뇌리에 남은 문장이 있다.
(당뇨망막병증이란 당뇨로 망막의 혈관이 손상되어 결국엔 실명에 이를 수 있는 질환이다)
‘혈당관리를 아무리 철저하게 해도 당뇨 유병기간 15~20년 이후에는 결국 당뇨망막병증이 발생합니다’
당뇨 때문에 내가 실명까지 될 수 있다는 건가? 30대부터 당뇨가 시작되면 한창인 50대에 합병증으로 고생하게 된다니. 결국 나는 당뇨를 최대한 늦게 맞이하기 위해서라도 운동을 시작해야 했다.
처음에는 운동이 그렇게 싫을 수 없었다. 앞서 말했듯이 나는 운동과 친하지 않은 사람이고, 재밌다고 느껴본 적도 없는 상태였다. 하지만 말 그대로 ‘살기 위해’ 시작했기 때문에 꼭 해야만 했다. 싫어도 했고, 귀찮아도 했고, 아무 생각 없이 한 날도 있다. 안타깝게도 단 한 번도 운동이 재밌어서 한 날은 없었다. 그런데 지금은 운동을 가기 위해 약속 시간을 조정하기도 하고, 주변 사람들에게 운동을 권유하는 전도사가 되었다. 지금부터 이 변화에 대해 이야기해보려고 한다. 물론 이렇게 비장하게 말할 정도로 놀라운 이야기는 아니지만.
운동이라곤 해보지 않은 새싹운동러가 다양한 운동을 경험하며 결국 재미를 찾는 그 험난한 일대기를 함께 즐겨주시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