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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차분 Jul 06. 2022

2. 클라이밍, 끝내 잡지 못한 홀드

나의 운동 성향 파악하기



앞서 말했듯이 나에게 운동 신경은 거의 없는 수준으로 그나마 있는 운동 신경은 모니터 앞에서 타자 칠 때나 쓴다. 이런 상황이다 보니 스포츠는 그냥 남 일이다. 남들은 자전거도 타고 스키도 타고, 보드도 탄다는데 그게 뭐예요? 내 몸이 내 의지대로 움직이지 않는데요. 그런데 호기심은 또 많아서 남들이 해보는 건 꼭 해봐야 하고, 핫하다 싶은 건 그냥 넘어갈 수가 없다. 스포츠도 마찬가지였다.


몇 년 전 겨울, 나도 고글 딱 쓰고! 스키복 딱 입고! 스노보드를 타고 슬로프를 멋들어지게 내려오겠다며 처음으로 스키장을 갔다. 하지만 발에 보드를 장착하고 혼자 일어나지를 못해서 슬로프는 커녕 리프트도 타지 못하고 그대로 돌아왔다. 또 언제 한 번은 폴댄스 원데이 클래스를 가자는 지인의 제안에 ‘오 요즘 폴댄스 핫하지!!’ 이러면서 쫄래쫄래 따라갔었는데, 10명 남짓 되는 수강생 중 유일하게 봉에 매달리는 것조차 하지 못해서 애꿎은 봉만 붙잡고 1시간을 민망하게 보낸 경험도 있다.


이런 일이 한두 번이 아닌데, 정말 양심 없게도 나는 새로운 무언가를 시작할 때마다 ‘혹시 나한테 숨겨진 재능이 있는 거 아냐? 늦었지만 직종 변경해야 하나?’라는 생각을 한다. 스노보드도 폴댄스도 시작조차 하지 못했고, 20대 중반이 돼서야 겨우 배운 자전거는 앞으로 직진 밖에 못하면서. 심지어 남들 다 있는 운전면허도 겨우 땄다. 도로주행 연수를 시작할 때는 베스트 드라이버가 될 줄 알았는데 도로주행 시험에서 3번 떨어지고 추가 연수까지 받아서 4번째에 겨우 붙었다. 마지막 도로주행 시험을 치고 차에서 내리는데 시험관이 한숨을 쉬며 ‘불합격할 뻔했습니다. 연습 많이 하세요’라는 말을 덧붙이셨을 정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들보다 호기심은 많았는지, 새로운 도전을 포기할 수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폴댄스를 가자고 했던 그 지인이 클라이밍에 푹 빠져 클라이밍 전도사가 되었다. 주변 사람들에게 클라이밍의 재미를 설파하고 있었는데, 때마침 무료했던 나는 그 말에 홀려 클라이밍에 도전을 해보기로 했다. 여느 때처럼 ‘클라이밍은 좀 다르지 않을까? 혹시 나 아마추어 대회 나가고 그러는 거 아닌가?’ 하는 김칫국을 여러 사발 마시면서. 이제 나는 새싹 클라이머다. 스파이더맨 마냥 찰싹 붙어 벽을 타보겠다!


클라이밍은 벽에 다양한 모양의 홀드가 붙어 있는데 그 홀드를 손으로 잡고, 발로 디디며 벽을 타는 운동이다. 처음에는 무조건 위로만 올라가면 되는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라 홀드에 적힌 숫자 순서대로 잡아야 하며, 마지막 홀더까지 떨어지지 않고 터치해야 한다고 했다. 이걸 문제 푼다고 표현을 했고 정식 명칭은 볼더링이라고 했다. 이외에 리드나 스피드와 같은 방식도 있는데 암벽이 높아야 해서 실내 클라이밍장에서는 볼더링을 가장 흔하게 한다.


처음 클라이밍장을 방문한 나는 1회 체험부터 해보기로 했다. 대부분의 실내 클라이밍장에서는 1회 체험이 가능하며, 클라이밍화도 대여해준다. 그리고 센터마다 다를 수는 있으나 내가 간 곳은 클라이밍이 처음인 경우에 기초 강습을 간단히 해준다. 그리고 나서야 직접 홀드를 잡게 된다. 초보자의 경우 직벽에서 시작한다. 초보니까 조금 누운 벽이 아닐까 했는데, 아쉽게도 90도 벽이었다. 여길 어떻게 매달리지? 의문이 들었다. 게다가 강사가 잡으라는 그대로 홀드를 잡았는데 딱 잡는 순간 ‘아니 이걸 계속 버텨야 한다고?’, ‘여기서 다음 홀드를 어떻게 잡아?’ 등 오만가지 생각이 다 들었다.


클라이밍의 기본은 한 손과 두 발이 삼각형 모양으로 균형을 잡는 것이고, 이동을 할 때도 그 균형을 유지해야 한다고 한다. 아니 그 말이 이해는 되는데 좀처럼 몸이 따라주질 않았다. 나는 첫 도전인 만큼 가장 쉬운 문제를 풀어봤는데도 홀드 3개 정도 잡고는 팔과 손가락이 너무 아파서 뚝 떨어졌다. 대체 10개가 훨씬 넘는 홀드를 어떻게 잡으면서 이동하고 버티지? 근육 하나 없이 갸날픈(?) 나의 팔과 손가락으로는 무겁디 무거운 나의 몸을 지탱할 수가 없었다. 사실 클라이밍은 팔로 버티는 것이 아니라 다리의 힘과 코어로 버텨야 하는데 초보다 보니 요령이 없어 팔에만 엄청난 힘이 들어가는 것이었지만.


그런데 하다 보니 오기가 생겨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계속 벽에 매달렸다. 앞선 시도보다 홀드를 하나 더 잡을 때마다 희열이 느껴졌다. 이 재미에 하는구나! 정신없이 벽에 매달리다 체험 시간이 끝나고 나니 그제야 잔뜩 펌핑된 전완근이 아파왔다. 또 거친 홀드를 억지로 잡다 보니 손가락도 쓸리고, 물집도 생겼다. 게다가 다음 날은 전신 근육통으로 앓아누웠다.


사실 클라이밍은 누가 봐도 쉬워 보이는 스포츠가 아니다. 선수들의 등 근육만 봐도 알 수 있지 않나. 조그만 홀드에 손이며, 발이며 어떻게든 잡고 디뎌서 다음 홀드를 잡는데 팔의 힘, 다리의 힘, 코어의 힘까지 전신의 근육 하나하나를 다 사용하고… 아니, 심지어 유연하기까지 해야 한다. 운동 신경도, 근력도, 유연성도 부족한 내가 하기는 쉽지 않은 운동임은 분명했다.


그렇지만 처음 해 본 클라이밍은 생각보다 재미있었다. 운동에 재미를 느끼는 경험은 인생에서 처음이었다. 객관적으로 클라이밍에 재능은 없지만 선수할 것도 아니고, 재미는 있으니까 꾸준히 하다 보면 좀 늘지 않을까? 이런 생각이 들었고, 마침 딱 집 근처에 클라이밍장도 있었다. 나도 이제 어른인데 취미 스포츠 하나 정도는 있어야지. 일단 해보자 싶어서 클라이밍장을 찾아가 3개월 수업을 등록하고 클라이밍화까지 구매했다.


참고로 클라이밍은 실내에서만 한다면 초기 비용이 크게 부담되는 스포츠는 아니다. 클라이밍화와 미끄럼 방지를 위해 손에 바르는 초크 정도만 구매하면 된다. 복장 또한 집에 있는 티셔츠와 편한 트레이닝복을 입으면 된다. 물론 어느 정도 실력이 되면 자연스럽게(?) 산에 가서 암벽을 타게 되니 다양한 장비가 필요하지만 말이다.


어쨌든 정신을 차리니 나는 초보 클라이머가 되어있었다. 주 2회 강습을 받고, 강습이 없는 날은 혼자 벽을 탔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고 나는 클라이밍을 즐길 줄 아는 고수가 되어 지금도 꾸준히 벽을 타고 있다….라고 마무리를 지었다면 애초에 나는 운동을 찾아가는 과정을 담은 이 글을 쓸 일이 없었겠지. 안타깝게도 나의 클라이밍 도전은 새싹에서 더 이상 자라지 못했다.


클라이밍 자체는 정말 재밌는 스포츠다. 스타트 홀드가 아래쪽에 붙어 있어서 바닥에 앉은 자세에서 코어의 힘으로 매달려야 하는 코스가 있었는데, 처음에는 엉덩이만 들썩들썩하다가 어느 순간 거짓말처럼 벽에 딱 매달려서 시작을 할 수 있게 되었다. 그때의 그 쾌감이란…! 게다가 경사가 진 벽을 타고 갈 때도, 이걸 잡으라고 만든 홀드인가 싶은 홀드를 어떻게든 잡고 지나갈 때도 성취감이 정말 엄청났다.


클라이밍은 재미에 성취감까지 느낄 수 있는 스포츠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첫 강습 3개월 이후 연장 등록을 하지 않았다. 지극히 개인적인 이유지만.


직장을 다니던 나는 퇴근 후 1시간에서 1시간 30분 정도 운동할 여유가 있었다. 그런데 체력이 좋지 않다 보니 몇 번 하지도 않았는데 펌핑된 전완근과 손가락 통증이 괴로웠고, 있는 힘부터 없는 힘까지 다 끌어 쓰고 나니 금방 지쳐서 다음 시도까지 회복 시간이 꽤 필요했다. 게다가 내가 다니던 클라이밍장은 규모가 작기도 하고, 안전상의 이유로 한 벽에는 한 명만 운동하도록 안내하고 있어 실질적으로 내가 벽에 오를 기회는 1시간에 몇 번 없었다. 또 실내 클라이밍장에는 다양한 난이도의 암벽이 존재하지만 초보자의 경우 도전 가능한 암벽이 한정적이라 사람이 더 몰릴 수밖에 없었고, 나는 미숙하다 보니 한 번에 홀드를 몇 개 잡아보지도 못하고 떨어져서 다음 사람에게 자리를 넘겨야 하는 경우가 부지기수였다.


한마디로 정리하자면 시간적 여유가 없는 나에게 시간 대비 운동량이 적었다는 것! 물론 내가 새싹클라이머를 벗어나 어느 정도 체력과 실력이 있었다면 이런 고민을 할 필요도 없었겠지만, 그 단계까지 꾸준히 할 자신도 없었다.


덧붙여 사소한 부분이라고 생각될 수 있지만, 어느 누군가에게는 큰 문제일 수 있는 ‘친목’도 하나의 벽이었다. 센터마다 분위기는 다르겠지만 내가 다니던 곳의 경우 기존 회원들은 이미 친해진 상태이고, 새로 등록한 회원들은 나처럼 혼자 오는 경우가 거의 없어서 그 분위기에 쉽게 융화되기가 어려웠다. 물론 나의 성향 탓도 있겠지만 내 시간과 돈을 투자하는데 마음 불편하고 싶지는 않았다.


결국 클라이밍을 나의 운동으로 만드는 것은 실패했고, 그 후에 친구들과 가끔 1회 체험하는 것으로 아쉬움을 달랬다.



이 경험으로 나는 깨달은 것이 있다. 운동은 ‘시작’이 아니라 ‘지속’이 중요하다는 것을.


만약 운동을 시작할 계획이라면 무작정 센터를 찾아가 등록하기보다 우선 현재 나의 상황과 체력, 건강 상태, 성향 등 다양한 요소를 객관적으로 파악해보도록 하자. 그다음 주변 사람의 경험담이나 온라인 상의 체험기 등을 참고하여 나와 잘 맞을 것 같은 운동을 몇 가지 선정한 후 반드시 한 번 이상 체험해 볼 것을 권한다. 센터 장기 등록이나 관련 장비, 용품을 사는 것은 그 후에 결정해도 절대 늦지 않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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