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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차를 마셨는데, 도파민이 돌잖아요?

기호식품을 '취미'라는 이름으로 두게 된 까닭

by 이차분


지난 글의 주제가 '돈을 쓸 정도로 사랑하게 된 취미'이긴 했는데 다시 읽어 보니 돈돈돈돈 돈타령이어서 조금 민망해졌어요. 그래서 이번에는 제가 느낀 '차'의 매력을 순수하게 이야기해보려고 해요. 이렇게까지 좋아할 생각은 없었던, 첫눈에 반한 그런 이야기입니다.


차는 커피, 위스키, 와인 등과 같은 기호식품 중 하나일 뿐이죠. 마셔도 그만, 마시지 않아도 그만이니까요. 또 이러한 음료를 누구나 마시긴 하지만, 마시는 모두가 '취미'라고 표현하진 않아요. 그래서 문득 궁금해지더라고요. 커피 애호가, 와인 애호가처럼 기호식품을 '취미'로 둔다는 것이 대체 어떤 의미일까요? 출근길 매일 같이 아이스아메리카노를 마신다고 해서 커피 애호가라고는 하지는 않는데 말이에요.


저는 어떤 점에서 스스로를 '차 애호가'라고, '취미가 차'라고 표현할 수 있는 걸까요?


매일 마셔서? 아니죠. 그럼 아침마다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들고 출근하는 직장인 모두가 커피 애호가겠죠. 직장인들에게 '아. 아'는 포션(게임 속 회복 아이템인 물약을 지칭) 일뿐인걸요. 아니면 집이나 직장 등에 떨어지지 않게 구비해 두면 애호가라고 할 수 있을까요? 그럴 수도 있겠지만, 탕비실에는 태초에 '커피믹스'가 있었고, 친구 결혼 선물 중 흔한 것이 캡슐커피머신이며, 집들이나 감사 선물로 받은 와인이 집에 있는 건 평범한 일인데... 이들 모두가 애호가는 아니긴 해요. 그렇죠? 그럼 혹시 비싼 차나 와인, 커피 혹은 관련 도구 등을 구매해서 일까요? 물론 애호가의 흔한 특징 중 하나긴 하지만, 저렴한 제품을 구매한다고 해서 애호가라고 칭하면 안 될 이유는 없죠.


아- 여기까지 쓰고 보니, 역시 '모든 것은 마음에서 비롯된다'는 성인의 가르침이 틀리지 않았다는 것을 문득 깨닫게 되네요. 남들이 보는 기준은 없어요. 내가 좋아한다고 느끼기 때문에 저는 애호가입니다.



제가 <차>를 취미로 삼아야겠다고 다짐한 날, 저는 도파민 과다로 엄청 흥분했어요. 지난 글에서 살짝 언급한 첫 '보이차 클래스'에서 차를 제대로 알게 된 그날이요.


첫 '보이차 클래스'에서 제가 푹 빠지게 된 건, 사실 차가 아니라 <차를 마시는 행위>였어요. 나를 먹이기(?) 위해 따뜻한 물을 끓이고, 다관(찻주전자)과 찻잔을 데우고, 우린 차를 마시는 그 자체. 아니 그렇게나 정적인 행위를 했는데 왜 저는 차분해지지 않고 오히려 도파민이 돌았을까요? 온전히 나를 위해 무언가를 하는 일이 드물었던 걸까요, 아님 차 클래스라는 새로운 경험이 주는 흥분감 때문일까요.


아, 물론 차 맛 자체도 나쁘진 않았어요. 한꺼번에 많은 정보가 들어와서(차는 같은 차나무 잎으로 만들고, 만드는 방법에 따라 차 종류가 나뉘고, 내가 알고 있던 우롱이나 홍차가 그 종류 중 하나고, 페퍼민트는 차가 아니다 등등) 차 맛을 느낄 틈이 없었을 뿐이죠. 원래 알아야 맛도 느낄 수 있는 법이니까요. 모르긴 몰라도 보통 불호 포인트라고 여기는 보이차의 젖은 낙엽 향이 저에겐 포근하게 느껴질 만큼 좋았던 걸 보면, 맛도 마음에 들었던 것은 확실해요.


이후 티소믈리에 강의를 듣고, 찻집을 찾아다니면서 차 경험이 늘어나니 자연스럽게 차 맛도 알게 되었어요. 저는 백차나 녹차보다는 청차(우롱)나 홍차가 취향이고, 청차는 청향보다는 농향에 손이 잘 간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죠. 차는 맛의 스펙트럼이 넓어서 취향에 맞게 즐길 수 있다는 점이 참 매력적이에요.


간혹 차를 마신다고 하면 '건강'에 좋기 때문이냐는 이야기를 듣는데요. 실제로 차에는 각종 비타민, 무기질, 아미노산, 카테킨 등등이 풍부하게 들어 몸에 이롭긴 하지만, 몇 년간 차를 마시면서 느낀 점은 차 애호가들 기준, 차가 과연 몸에 좋을까 싶어 의아해지는 부분들이 있어요. 이 차 애호가들은 대체로 매일 차를 마시고, 다회 등 모임을 하면 5~6시간은 기본으로 쉬지 않고 차를 마시는데, 이는 과도한 차 섭취로 인한 위장 장애(카페인 함유)나 식도 손상(뜨거운 온도) 등을 야기하지 않을까요?


어쨌든 지금의 저는 '차 맛'이 좋아서 여전히 마셔요. 아침마다 나를 위해 물을 끓이고, 개완과 찻잔을 데우는, 차를 우리는 재미도 분명 있지만요. 차 한번 마셔보실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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