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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茶) 마시다 인싸된 썰 푼다.

한줌단이 만든 위력

by 이차분



갑작스럽게 저의 MBTI를 공개하자면 ESTJ예요. 모임을 여는 것도 좋아하고, 참여하는 것도 좋아하고,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것도 좋아해요. 이런 저에게 <차>는 안성맞춤인 취미예요. 이 이야기를 하면 다들 의아하게 느끼실 거예요.


"아무리 생각해도 <차를 마시는 행위>는 정적이며 조용하고 차분할 것 같은데 어째서 'E형'이 좋아할 만한 취미지?"


사실 <차>를 취미로 하는 사람, 심지어 젊은 사람은 정말 잘 없어요. 요즘 점점 늘어나는 추세지만 여전히 적어요. 우리나라는 아무래도 커피의 민족이기도 하고, 커피에 비해 차의 맛과 카페인은 강렬하진 않으니까 그런 것 같아요. 다른 취미에 비해 정보도 많지 않아요. 그래서일까요, 차를 즐기는 소수들이 모여 커뮤니티를 이루었는데, 그 활동이 꽤 찐해요.


저 또한 차를 처음 마시기 시작하면서 정보도 얻고, 경험도 공유하고 싶어서 SNS를 통해 <차 마시는 젊은이>를 찾아 나섰어요. 아무래도 또래와 소통하면 편하니까요. SNS 속에는 청년들이 주축이 되는 차모임이 꽤 있었고, 그들의 활동은 굉장히 활발했어요. 일당백이라는 말이 있듯이 모임 구성원 수는 적지만 이들은 '이 취미를 세상에 널리 알리리'라는 사명감을 가지고 있었어요. 재밌지 않나요? 저에겐 아주 신선했어요. 많은 취미를 가볍게 즐기느라 깊게 빠져본 적이 없긴 해도 어떤 동호회에서 취미를 널리 알리고 문화로 만들기 위한 활동을 하는 건 지나가며 본 적도 없거든요.


차모임에서 가장 흔한 활동은 <다회/차회> 예요. 말 그대로 차를 마시는 모임이죠. 그런데 그저 모여서 차를 마시는 것이 아니더라고요. 같은 차를 물, 차도구 등을 달리해서 마셔보거나 차 산지별로 맛을 비교해 보는 비교 시음회도 하고, 차와 함께 음식을 곁들이는 페어링이나 차로 다양한 음료를 만들어보는 티베리에이션 다회도 해요. 또 차와 함께 책을 읽거나 그림을 그리는 등 어떠한 활동을 곁들인 다회도 있어요. 햇차가 나오기 전이면(보통 봄) 묵은 차를 털어내자며 일명 <낙엽다회>를 하기도 하고, 차문화대전 등 꽤 큰 차 박람회 이후에는 어떤 것을 샀는지 같이 나누고 마셔보는 <샀다회>가 열리기도 해요. 또 차 관련 대회(티베리에이션이나 티블렌딩 등 대회가 있다)에서 수상한 이들이 자신의 출품작을 선보이는 다회에 참석한 경험도 있어요. 처음 접한 신세계예요.


이 모든 활동은 찻집이나 동호회 등에서 공식적으로 여는 경우도 있지만 대체로 <차애호가>인 개인이 직접 기획해 장소를 빌려서 열고, 또 다른 개인이 그 다회에 참여해요. 그야말로 다회가 차애호가들 사이에서는 하나의 문화더라고요.


그렇다 보니 차는 집에서 혼자 조용히 마시기보다 여러 다회에 참여하게 되고, 차 마시는 인구(?) 자체가 적으니 자연스럽게 자주 마주치게 되고, 안면을 트다가 마음이 맞다 싶으면 친구가 되는 그런 일련의 경험을 꽤 자주 하게 돼요. 또 찻집 자체도 많지 않아서 유명한 찻집을 투어 돌듯이 다니다 보면 우연히 마주치기도 해요. 다회나 모임에 참여해서 이야기하다가 '인스타 맞팔할까요?' 라며 아이디를 공유하면 이미 맞팔인 경우도 종종 있어요. 이렇게 차를 같이 마시는 친구는 다우, 차친구라고 표현해요. 차애호가가 되면 필연적으로 <차친구/다우>가 생기더라고요.


여담이지만 한국 차 애호가들의 가장 큰 축제, 코엑스에서 열리는 차 박람회인 <차문화대전>이라도 가게 되면 여기저기 아는 얼굴들이 지나다니는 진귀한 경험도 할 수 있어요. 옆길로 조금 새자면, 차문화대전과 같은 차 박람회도 다른 박람회들과 조금 다르게 독특한 문화가 있어서 놀랐는데요. 보통 커피나 디저트 박람회를 가면 시음이나 시식하고 부스를 스쳐 지나가기 마련인데 차 박람회에서는 차 시음을 상당히 길게 하더라고요. 끝도 없이 차를 우려 주세요. 하동이나 보성 등 한국차 생산자분들이 참여하는 부스나 중국, 대만 등 차 수입 업체 부스에 가면 의자가 4-5개 정도 준비되어 있는데, 거기 앉아 우려 주시는 차를 마셔보고 마음에 들면 구매할 수 있어요. 부스별 찻자리는 예약제도 아니고 일행만 앉아야 하는 것도 아니더라고요. 자연스럽게 합석하며 양쪽에 인사도 하고, 차를 우려 주시는 분들에게 차 정보나 이야기를 들으며 또 다른 차친구를 사귀는 자리가 되는 만남의 장, 그 자체였어요.


그리고 사실 차를 마셔보니까 차친구는 필수예요. 세상에 차 종류는 어마어마하게 많기 때문에 차친구들과 나눠 마셔야 다양한 차를 접할 수 있으니까요. 가지고 있는 차를 빨리 먹어야 가벼운 마음으로 새 차를 살 수 있기도 하고요!


차를 마시며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그 사람들을 통해 새로운 경험을 하고 있어요. 취미로 인해 나의 세상이 넓어지는 요즘, 앞으로 어떤 세상이 기다리고 있을지 기대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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