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의 취향과 습관에 따라 글 쓰는 시간은 각기 다를 것이다. 밤의 적막이나 고요함을 선호하는 이도 있고 이른 새벽이나 아침의 맑은 정신일 때 또는 시간에 구애됨이 없는 이도 있을 것이다. 글쓰기 선생님인 서금복 수필가의 저서 중 『수필 쓰기에 딱 좋은 사람들』이란 제목의 수필집이 있다. 2022년 제41회 한국수필문학상을 받은 수필집이다. 오랜 기간 많은 제자를 지도하고 양성한 경험에서 우러나온 글이며 책명이라 생각하였다. 책이 출간된 후 수필 수업을 받는 제자들에게 책을 선물하셨다. 『수필 쓰기에 딱 좋은 사람들』이란 책 제목을 보며 떠오르는 생각이 하나 있었다. 선생님 지도로 등단한 문우가 서른 명이 넘는다. 내가 서른 번째다. 선생님 지도로 2년째 수필 공부를 하며 아직 저서 한 권이 없는 나에겐 가히 범접할 수 없는 제목이다. 지금의 나에겐 ‘수필 쓰기에 딱 좋은 사람들’이 아닌 ‘수필 쓰기에 딱 좋은 시간’이라는 제목의 수필 한 편이 어울릴 것이다.
글공부를 시작한 후 갈증을 느끼는 것은 글 쓰는 시간이다. 직장인이기에 주로 퇴근 후 밤에 글을 쓰곤 했다. 주위가 어수선한 낮보다 밤의 적막함이 몰입에 쉽기 때문이다. 그러나 오래 가지 못했다. 사무실 일에 대한 상념과 잔상이 어른거리고 다음 날 출근해야 하는 현실 때문이다. 이른 새벽에 글을 써보기도 했다. 이점도 있었으나 안착시키지 못했다. 요즘은 주말 글쓰기를 하고 있으나 이 또한 주말이라는 환경으로 욕심만큼 글쓰기 시간을 확보하지 못하고 있다. 일정한 시간의 확보가 쉽지 않아 어떻게 개선해 볼까 고민하다 시간을 가리지 않고 틈날 때마다 글을 쓰는 시간을 가져보기로 했다. 특정 시간을 정하기보다 짬짬이 단 몇 줄의 글이라도 쓰거나 수정하는 시간을 가져보려 함이었다. 하루 두세 차례 정도 글을 들여다볼 기회가 있기도 했고, 또 주말이 아니라도 글을 대하는 횟수는 늘었으나 규칙적이지 못함에 글을 쓰는 속도, 집중력, 양적인 면에서 기대에 미치지 못한다.
숙면을 하는 것이 건강에 좋고 집중력 발휘에 도움이 되는 것은 누구나의 상식이다. 나이가 들며 예전처럼 깊은 숙면을 하지 못하고 가수면 상태나 토막잠을 이루는 게 일상이 된 지 오래다. 다소 염려되기도 하나, 노화에 수반하는 현상으로 받아들인다. 때론 토막잠과 숙면을 이루지 못함이 글쓰기에 도움이 되기도 한다.
영상 제작 일을 하는 아들의 귀가 시간은 항상 늦다. 밤 열두 시 전 귀가와 그 후의 귀가가 반반 정도다. 현관과 붙어있는 방을 쓰기에 새벽 한 시가 넘거나 두, 세시에 귀가하는 아들이 현관문 번호 키를 누르는 소리에 곧잘 잠을 깬다. 숙면에 들지 못한 상태이기 때문이다. 늦은 귀가를 맞이해 주는 것도 자식에 대한 마음을 표현하는 일이기도 하기에 대수롭지 않게 여긴다. 이 습관이 글쓰기에 도움이 된다. 잠이 깬 김에 쓰다만 글을 들여다볼 시간을 갖게 되는 것이다. 드문 경우이나 그러다 새벽을 맞이할 때도 있다. 개운하지 않은 몸으로 하루의 일과를 마치고 귀가하면 가벼운 식사 후 밀려오는 피곤함에 자리에 든다. 그리고 또 습관처럼 어제 잠을 깬 시간대에 다시 눈을 뜬다. 결국 현재의 생활방식에 변화가 없는 한 고정된 글쓰기 시간을 확보하는 일이 뜻대로 되지 않는 생활을 이어가고 있다.
전업 작가는 하루 중 글쓰기에 얼마만큼의 시간을 할애하고 있을까. 온종일 글을 쓸 수 있는 여건에 있다 하여 글을 많이 쓸까 하는 물음에는 꼭 그렇지는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다. 오롯이 자신만의 시간이 많다고 하여 글을 욕심껏 쓸 수 있는 것은 아니리라. 그렇다면 글을 언제 쓰는 것이 좋은 것인가? 하루 중 깨어있는 시간, 즉 바깥이 밝으면 글 쓰는 시간을 갖기 어렵다. 일하기 때문이라는 궁색한 변명을 앞세워 본다. 블로그, 카페, PC에 저장해 둔 글을 꺼내 몇 줄 추가하거나 잠시 교정하는 정도다. 그러나 지금까지의 경험으로 빠듯한 시간 속에 글을 쓴 일이 더 많았다. 결국 정해진 글쓰기 시간을 확보하기가 쉽지 않은 만큼 차라리 밤과 낮을 구분하거나, 시간을 특정하지 않고 기회 있을 때마다 글을 쓰는 것이 현명하지 않을까 싶다. 선생님처럼 경륜에서 우러나오는 울림이 있고 공감이 가는 글을 쓰기에는 부족함이 많다. 현재의 생활방식을 쉽게 바꿀 수 있는 여건이 안 될 바에야 따로 시간을 정하여 글을 쓰기를 하기보다 낮이든 밤이든, 또 집이든 사무실이든 때와 장소를 가릴 것 없이 글쓰기를 해보자 마음먹는다.
배워야 할 것, 메꾸고 채워야 할 것이 많은 신인에게 글쓰기, 수필 쓰기에 딱 좋은 시간이란 따로 없다. 하루 중 어느 때, 어느 곳이든 컴퓨터 앞에 앉을 수 있는 시간이면 그 시간이 글쓰기에 딱 좋은 시간이라는 생각을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