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릎이 시큰거린다. 이런 증상을 느낀 게 열흘쯤 되었다. 운동화 끈을 묶고 일어설 때 왼 무릎 좌우로 당기는 느낌과 오금에 찌릿한 통증을 느꼈다. 무엇을 짚거나 붙들지 않으면 다시 일어서기가 불편했다. 전에도 가벼운 증상이 없진 않았다. 그럴 때마다 무릎에 충격을 받았거나 시큰거릴 만한 실마리가 될만한 일도 없었기에 곧 괜찮아지겠거니 했다. 다행히 바람대로 며칠 지나면 증상이 사라졌다. 이번에도 그러려니 했으나 생각 외로 오래 가고 통증의 정도가 조금씩 더해갔다. '왜 이러지' 하며 약장을 뒤져 파스를 붙이고 연고도 발라보았으나 별 차도가 없었다. 며칠 더 지나자 움직일 때 통증이 더해 걸을 때 약간 절뚝거려야 했다. 내일이 토요일이니 목욕탕에 가서 뜨거운 탕 속에 무릎을 오래 담가 온찜질을 해주면 좀 나아지려나 했다.
'소장님, 점심 식사 가시죠' 하는 소리에 시계를 보니 어느새 열두 시다. 벌써 시간이 그리되었나 하는 생각을 하며 일어섰다. 사무실을 나서며 반장에게 무릎 얘기를 했다. '이러다 말겠거니 했는데 이번에는 좀 오래 가네요. 특별히 충격받은 일도 없는데….'라는 내 말에 나이 동갑인 반장이 빙긋이 웃으며 답한다. '소장님, 연식이 오래돼서 그래요. 연식이 오래되면 하나둘 고장이 나게 마련입니다'. 연식이란 말에 직원들과 함께 웃었으나 마음속으론 '그래서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까지 특별히 아픈 곳 없는 건강 상태를 유지해 왔다. 오십 대에 찾아온 노안이 첫 번째 노화 증상이었고 그 후 녹내장 판정으로 안압을 낮춰주는 약물 투여와 눈 혈관의 혈류 개선에 도움이 된다는 약을 먹은 지 십여 년이다. 친구들보다 이삼 년 늦게 찾아온 전립선 이상으로 작은 알약 하나를 매일 먹고 있으나 다행히 혈압, 당뇨, 인지장애 등은 아직 정상이다. 최근 잦아진 깜박 증상이 좀 염려스럽긴 하나 육체적으로는 비교적 건강함을 유지하고 있는 상태였다.
평소 한약, 양약을 불문하고 약 먹는 일과 병원 출입에는 익숙지 않았다. 술과 친하지 않았고 부모님에게 물려받은 가족력이나 지병도 없다. 자연치유를 신봉하는 것은 아니나 화학제 성분인 약과 약물에 의존하는 것에 대한 막연한 거부감이 있었다. 양약의 효능을 무시하거나 가벼이 보는 것은 아니다. 약을 먹지 않으면 사나흘 고생하는 증상도 약을 먹거나 주사 맞으면 하룻밤 새 눈에 띄게 호전되는 경험도 했다.
나이와 비례하는 면역력 저하에 따른 증상과 질환으로 잦은 병원 출입을 하거나 여러 종류의 약을 먹는 사람이 주위에 적지 않다. 형님도 그중의 한 사람이다. 재직 시 업무상 잦았던 술자리가 퇴직 시까지 지속되었기에 그로 인한 후유증은 퇴직 후 오롯이 형님 몫이 되었다. 방에 있는 약봉지 수만큼 아픈 곳이 많다. 아니 안 아픈 곳이 없다 할 정도다. 형님처럼 내 주변의 그런 증상을 가진 이들은 과거 본인이 즐겼거나 불가피했든 간에 술자리가 잦았던 공통점이 있다. 이런저런 증상으로 부은 얼굴로 한 움큼씩 약을 먹는 모습에 안타깝기도 하고 불안한 생각도 든다. 한 군데 불편한 증상을 다스리기 위해 개발된 약이다. 이 약 저 약을 같이 먹으면 체내에서 약의 성분끼리 충돌하여서 되려 부작용이 생기는 경우가 있지 않을까 하는 나만의 근거 없는 막연한 걱정에 약을 좀 줄이고 물을 자주 마시고 걷기운동이라도 꾸준히 해야 한다고 잔소리만 늘어놓는다.
신체 기능이 퇴화하고 사용 연한에 다다랐으니 본래의 기능이 예전 같지 못함은 당연하기에 병원 출입과 약에 의존하는 것은 피할 수 없다. 자동차의 부품을 정기적으로 점검하고 교체해 주면 새 차와 같은 성능을 유지하나 어디 사람의 경우 가능한 일이 아니지 않은가. 자동차와 인체가 근본적으로 다름은 교체가 가능한 점과 그렇지 못함의 차이일 것이다. 팽팽하던 이삼십 대의 피부가 나이가 들수록 탄력이 떨어지고 처지고 주름지는 것은 자연적인 현상이다. 의료 및 미용 기술의 발전과 함께 피부나 신체 장기의 원래 수명과 기능을 더 연장하고 유지하는 어느 정도 가능해진 시대에 살고 있음이 그나마 다행스럽다.
동네 병원에서 무릎에 물이 차 있다는 진단을 받았다. 아니, 무릎에 물이 차다니 이게 무슨 일인가. 내가 무슨 조기 축구회원도 아니고, 라이더나 바이크족, 등산 마니아도 아닌데 무릎에 물이 차다니…. 생전 처음 경험하는 일이다. 물을 주사기로 뺄 것인지 마르게 할 것인지 의사가 물었다. 한 번 빼면 계속 빼야 하니 일단 마르게 해보겠다는 의사의 말에 그러라 했다. 간단한 시술과 의료보험 적용이 안 되는 무슨 충격파 치료를 십오 분가량 받고 의료보험 수가 외 칠만 원을 더 계산하였다. 이차 면담에서 의사는 무릎 주변의 근육을 단련해야 한다며 유산소운동인 걷기보다 계단 오르기를 권했다. 일주일에 두 번이 바람직하나 최소한 한 번은 와야 하고 몇 주 더 치료를 받아야 한다는 의사의 말을 귓등으로 듣고 병원문을 나왔다.
나이 들면 아픈 재미로 산다고도 한다. 살아온 세월만큼 신체 각 부위의 연식이 오래되었음을 어찌하랴. 피하고 싶다고 피할 수 있는 선택사항이 아니다. 한결 편안해진 무릎에게 마음을 전해본다.
'의사가 괜찮단다. 이만하길 다행이다. 그동안 네게 무심했는데 한 번도 삐치는 일도 없이 지금까지 굳건히 버텨온 네가 대견하고 고맙다. 한쪽은 아직 멀쩡하다 하니 그것 또한 감사하고 고맙구나. 이왕에 지금까지 잘 버텨왔으니 앞으로 한 십 년만 더 버텨주었으면 한다. 그때쯤이면 여러 일이 정리된 후일 테니 그땐 좀 아파도 괜찮을 것 같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