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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애기타 Jun 23. 2024

독일 이웃 제시카

  그녀를 처음 만난 것은 독일 뒤셀도르프 공항이었다. S 교회 중국 우한지부에 선교활동을 했던 신도가 코로나19 바이러스에 감염된 지 모르는 채 귀국해 동료 교인들을 감염시키고, 교인들의 확진 사례로 코호트 Cohort Isolation 조치가 내려지고 2차, 3차 감염 사태로 온 나라가 들끓던 2020년의 12월이었다. 유입 초기, 적극적인 봉쇄 조치를 하지 않은 우리나라와 일본의 코로나19 감염상황이 세계적인 뉴스거리였다. 70년대 초 파독 간호사로 출국해 지금은 뒤셀도르프에 정착한 작은 누님의 전화를 받았다. 독일 언론에 우리나라 코로나19 확진자 급증 뉴스가 연일 보도되어 걱정스러운 마음에 전화한 것이었다.     

  그해 연말 독일 누님의 칠순을 맞아 큰 누님과 함께 열흘 일정으로 독일에 갔다. 13시간의 비행 끝에 도착한 공항에서 독일 누님, 조카와 함께 마중 나온 그녀를 처음 만난 것이었다. 첫인상은 비호감이었다. 큰 덩치에 금발 머리는 양어깨너머로 너풀거려 사자머리 같았고 화장기 없는 민얼굴에 청바지 차림이라 외관상으로 바이크족 같다는 생각이었다. 그녀는 두 손에 꽃다발과 샴페인 병을 들고 있었다. 마치 오랜 친구를 대하듯 웃음 띤 얼굴로 뒤셀도르프에 온 것을 환영한다며 종이컵에 샴페인을 따른 후 건배를 제의했다. 얼떨결에 받아마시긴 했으나 속으로 이건 무슨 경우인가 싶었다. 일부 사람들의 시선도 느낄 수 있었다. 누님의 성품과 전혀 어울리지 않은 이런 선머슴 같은 여성과 어찌 가족처럼 지내는 사이가 되었는지 의문스러웠다. 우리 일행을 집까지 바래다주고 간 다음 누님의 얘기를 들은 후에야 안심이 되었다. 제시카는 독일 중산층의 전형적인 독일인이었다. 전화국에 기술직으로 근무하며 대학생 아들을 둔 오십 후반의 워킹 맘이었다. 남편은 IT분야 컨설턴트로 사는 곳은 서울의 강남 같은 곳이라 했다. 

  열흘간의 짧은 기간 동안 제시카를 다섯 번 만났다. 덩치와 생김새와 달리 매우 친근하고 활달한 성품이었다. 평소에도 자주 오느냐 했더니 물었더니 일주일에 한 번 정도 퇴근길이나 주말에 오는데 우리가 온다는 얘기에 열흘 간 휴가를 낸 것이라 했다. 그런 그녀가 고마웠다. 있는 동안 쇼핑을 겸한 이웃 도시 유기농 식품매장, 공업도시 레버쿠젠에 있는 놀이공원, 천문전시관에도 그녀의 차로 직접 안내하였다. 생일을 맞은 나를 위해 라인강 옆 식당에서 생일 파티를 열어주고 또 집으로 식사 초대하는 등 가족과 다름없이 대해 주었다. 멀리 있는 우리보다 누님에게 더 의지가 되는 독일 이웃이라는 생각에 짧은 기간이나마 그녀에게 잘해주기로 했다. 

  MSG 성분이 들어간 식품을 먹으면 남편의 몸에 이상 증상이 생기나 김치는 그렇지 않다며 최고의 건강식품이라고 확신하는 그녀다. 김치에 관한 프랑스 박사학위 논문도 읽었다고 했다. 누님에게 김치 담그는 법은 물론 한국 음식 조리법을 배우는데 열성인 그녀는 인삼과 한식, 특히 김치 예찬론자다. 더러 집에 와서 식사하는 경우 김치는 건강식품이며 다이어트에도 좋다 하며 서툰 젓가락질로 연신 김치 그릇에 손이 간다. 식사 후 남은 음식마저 가져온 플라스틱 용기에 담아 가는 그녀에게 견고한 독일경제의 기반과 근검절약이 몸에 밴 독일인의 모습을 느낄 수 있었다.   

  제시카의 집은 누님 집에서 차로 15분 거리에 있었다. 체류 6일째 되는 날, 우리 가족 모두를 그녀 집으로 식사 초대했다. 독일 중산층의 생활하는 모습이 궁금했고 또 처음인지라 호기심 반 설렘 반이었다. 꽃다발과 누님이 담근 김치 한 통을 우리 전통 보자기에 싸서 들고 갔다. 5층 건물 3층의 집에서 기다리고 있던 남편과 아들과 반갑게 인사를 나누었다. 손님맞이 하는 그녀는 늘 보았던 헐렁한 상의에 청바지 입던 그녀가 아니었다. 평소와 달리 손님맞이 옷차림을 한 모습이 인상적이었고 기품마저 느껴졌다. 잘게 썬 양배추에 식초를 쳐서 담근 독일 김치 사우어크라우트 Sauerkraut를 비롯한 그녀가 준비한 독일식 음식은 짜게 느껴졌다. 신토불이란 말처럼 우리에겐 한식이 최고였다. 식사 후 거실로 자리를 옮겨 서로의 건강관리법을 얘기하다 요가와 혈기도 기본 동작을 알려 주는 등 그녀 가족과도 우애를 쌓았다. 초대에 대한 답례로 귀국 전날 한국식당으로 그녀 가족을 초대했다. 재료 출처와 조리법이 의문스럽고 우리 입맛과 거리가 먼 베트남 출신 주방장이 만든 정체불명의 한국 음식을 맛있게 먹는 그녀 가족을 보며 언젠가는 제대로 된 우리 음식을 맛 보여 주리라 생각했다. 귀국 후 코로나가 유럽 전역에 확산해 마스크를 구하기 어려워 손수 만든 마스크를 쓰고 다닌다는 말에 반출 통제 물품인 줄 모르고 500장을 보내려다 통관 금지 품목으로 지정되어 보내주지 못한 게 못내 아쉬웠다.      

  요즘도 누님과 전화할 때 제시카가 옆에 있으면 서로의 안부를 묻는다. 그때마다 그녀는 언제 올 거냐고 묻는다. 누님과 조카는 자기가 잘 챙길 테니 염려 말고 다시 만날 때까지 건강히 지내라고 한다. 

  생활환경, 사고방식, 피부색은 달라도 사람이 더불어 사는 세상이다. 어느 곳이든 이웃과 정을 나누며 살다 보면 내가 자란 고향이나 우리 집보단 못해도 그런대로 살만한 곳이 되지 않을까 싶다. 올해 독일행은 언제쯤이 좋을지 책상 위 달력을 뒤적거려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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