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좋은 문학회
한 달에 두 번, 등단 2년에서 9년 차 수필가 다섯 명이 만나 각자의 글을 발표하고 합평회를 한다. 같은 길을 걷는 이들과의 만남이기에 찌든 일상에서 벗어나 지친 마음을 힐링하고 청량감마저 느끼는 귀한 시간이다. 수필 지도 선생님은 동시, 시, 수필 부문 유명작가로 현재 최고 전통의 수필문예지 편집장 S 선생님이다. 선생님을 포함해 여섯 명이 매달 둘째, 넷째 수요일 저녁에 만나 식사와 함께 유쾌하고 진지한 시간을 갖는다. 모임은 3년 전 시작하였다. 구리시 문예 대학 수필 반 수업에 참여한 세 사람으로 출발하였다. ‘어쩌구리 수필 반’이란 명칭도'구리'라는 지명과 과제로 제출한 '어쩌다 반장'이라는 글 제목을 따 온 것이다. 이후 등단 9년 차 L 수필가, 2년 차 G 수필가의 합류로 여섯 명이 되었다. 수필 반 문우들의 면면을 살펴본다.
맨 먼저 훤칠한 키, 온화한 인상으로 우리 수필 반 간판 얼굴인 전직 교장 선생님 K 수필가다. 평생 교직에 종사하다 초등학교 교장을 역임한 후 퇴임했다. 자녀를 둔 부모가 바라는 선생님의 표상 같은 분이다. 그동안 발표한 몇 편의 글에서 아이들이 올곧게 자라도록 지도하고 교육 본연의 이념에 충실한 학습지도 외 인성까지도 보듬어 온 참교육자의 면모를 엿볼 수 있었다. 은퇴 후에도 한글 교실, 독거노인 방문 등의 지역 봉사활동으로 평생 교직에 종사한 이력에 걸맞은 노후의 삶을 꾸리고 있다. 오랜 세월 틈틈이 연마한 수준급 트럼펫 연주 실력에 시적 감성을 바탕으로 쓰는 그의 글에는 시적 표현과 운율이 담겨있으며 교육자다운 한 개의 오탈자조차 찾아보기 어렵다.
두 번째 Y 수필가다. 자타 공인의 글솜씨는 우리뿐만 아니라 선생님도 인정한다. Y 작가의 글은 화려하고 현란하며 우아하다. 어떻게 저런 글을 쓸 수 있을까 하는 궁금증은 Y 작가의 독서량과 독서 모임 활동의 산물이기도 하나, 그게 전부가 아니라는 생각이다. 타고난 재능에 더하여 Y 작가만의 섬세한 감성, 사물에 대한 관찰력, 사유의 깊이가 남다른 것으로 이해된다. 엄청난 독서량을 기반으로 하는 풍부한 어휘력과 문장력, 다양한 비유와 인용은 그 깊이와 넓이를 가늠하기 어렵다. 특히 식물과 나무에 대한 해박한 지식은 가히 전문가 수준이다. Y 작가의 글은 다른 문우들에게 자극과 함께 칭찬과 부러움은 물론 더러 시샘마저 자아낸다.
세 번째로 G 수필가. 우리 수필 반과 문학회에 없어서는 안 될 G 수필가다. 위국헌신 군인본분 (爲國獻身 軍人本分)의 정신으로 34년을 직업군인으로 국가에 봉사 후 전역했다. 타고난 성실함, 학구열로 은퇴 후에도 다양한 장르의 배움과 봉사활동 중 그의 문학적 소양과 재능을 간파한 선생님의 지도로 등단 후 수필 반에 합류했다. 모임 내 최연장자이나 늦은 등단을 빌미로 한 선배 문우들의 겁박(?)에 그만의 넉넉함으로 수필 반은 물론 문학회 간사역까지 도맡아 수필 반, 문학회의 모임은 물론 대외활동에서도 역량을 발휘하고 있다. 몸에 밴 배려심과 섬세함으로 G 작가가 관여하고 있는 어떤 모임에서든 환영받는 문우다. 수필 반은 물론 우리 문학회가 잘 운영되는 것은 그의 기여도가 크다는 점에 모두가 공감한다. 수필 반 합류 이전부터 많은 글을 써온 G 작가의 수필집 발간을 고대한다.
다음으로 우리 문학회 본산인 봉화산 문파(?)의 교주님으로 추앙받고 있으며 어쩌구리 수필 반 외 다수의 수필 반 창설로 후진 양성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는 S 선생님의 부군 L 수필가다. 등단 후, 지역 문인협회, 한국수필가협회 등의 이사로 활동 중이며 우리 문학회 3대 회장으로 기틀을 다졌다. 아내가 지도하는 글쓰기 모임에 참여하는 일이 쉽지 않음에도 선뜻 합류 후, 누구보다 수업에 열성적이다. 그의 글은 한국 수필 문학상 수상 작가인 선생님과는 결이 다르다. L 작가 특유의 편안한 문체와 스토리텔링 기법으로 그만의 독자층을 보유하고 있다. 최근 발간한 두 번째 수필집 '백 세까지 살아남으세요' 에서처럼 손자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매일 안양천 변을 따라 걷기 운동을 하는 다복하고 화목한 가정의 가장이다.
선생님에 대한 언급은 자제하기로 한다. 어려서부터 '스승의 그림자도 밟아선 안 된다.'라는 성현의 말씀을 기억하기에 감히 스승을 평하는 무례나 ‘강상(綱常)의 도’를 범할 수 없다. 더더욱 나의 보잘것없는 문재(文才)와 필력으론 선생님을 담아내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다만 한 가지 정도는 조심스레 언급해 본다. 글에 대한 평가는 선생님의 외모나 성품과 달리 그리 아름답지도 인정스럽지도 않다. 더러 야박함마저 느낀다. 수양이 부족했던 수업 초기, 그런 서운함에 수필 반 이탈, 봉화산 하산을 고민하기도 했다. 이제는 웬만한 지적에는 끄떡도 하지 않는 ‘뻔뻔 9단’ 수준의 내공도 쌓였고, 이왕 시작한 일 갈 데까지 가보자는 오기도 있어 그럭저럭 버텨내고 있다. 10년 묵은 ‘내 책 한 권’의 꿈을 이룰 수 있었던 것도 그런 선생님의 글에 대한 몰인정(?) 덕분임을 알기에 서운함보다 감사함이 더 크다. 그저 L 수필가의 넓은 도량과 이해심을 거울삼아 버텨내다 보면 조만간 두 번째 책도 낼 수 있으리라는 기대를 해본다.
한 분의 스승과 다섯 문우 간의 수필 반 내 서열은 엄하나 가족 같은 분위기다. 수필 반 내 등단 순위로는 내가 서열 2위다. L 수필가 합류 전까지는 1위였다. 수필 반 초기부터 얼마 전까지 학번, 군번만큼이나 등단 연도의 절대성, 존엄성 등을 강조한 덕분에 G 수필가로부터 깍듯한 선배 대접을 받고 있음은 천만다행이다. 더욱이 최근 ‘일신우일신’ (日新又日新)하는 그의 글솜씨는 청출어람의 본보기로 등단 경력을 무색하게 한다. 게다가 작금의 국내 현실도 고려해야 한다. 오랜 세월 육군사관학교 복무로 그가 길러낸 간성(干城) 만도 수천 명으로 군부의 절대적 지지를 받는 그다. 그의 인내심이 언제 임계점에 도달하여 비상 소집령을 발동할지 모른다. 조심해야 한다. 등단 선배라는 권력도 권불십년이요, 화무십일홍이다. 지금보다 더 겸허하고 낮은 자세로 G 작가를 대하고 심기를 살펴야겠다고 마음을 다진다.
이런 문우들을 만난 것은 큰 행운이 아닐 수 없다. 수업 전날, 보낸 윗글에 대한 선생님의 평을 받았다. 농담이라도 ‘교주’라는 호칭을 삼가라 하셨다. 감히 누구의 엄명이라고…. 즉시 답신을 드렸다.
‘네, 알겠습니다. 두령님.’
PS : 언제부터인가 함께 글공부를 하며 미운 정보다 고운 정이 더 많이 든 가족 같은 수필 반 문우들에 대한 글을 한번 써보리라 생각했었지요. 극한 폭염으로 다소 지쳐있는 요즘이기에 한 번 함께 웃고자 올려 봅니다. 지난주 발표에 그 마음을 받아주신 선생님과 '어쩌구리 수필 반' 문우님들의 아량에 힘입어 올리는 글이니 문학적 잣대보다 가벼운 마음으로 봐주시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