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순이다. 세월이 참 빨리도 흘렀다. 마음이야 아직 청춘인 것은 어디 나만 그럴까. 세월이 흐르는 물과 같다는 옛말이 이제야 실감한다. '이미 흘러버린 시간을 어찌하랴. 받아들여야지, 받아들일 수밖에….’ 하며 스스로 다독여 보나 ‘뭘 이루었다고, 뭘 해놓은 게 있다고….’ 하는 생각에 이르면 마음만 더 헛헛해진다.
오롯이 나만을 위한 시간도 그리 갖지 못한 채 살아온 세월이었다. 그렇다고 누구와 무엇을 위해 소중한 것을 포기했거나 많은 것을 희생한 그런 삶도 아니었다. 대부분이 그러하듯 내게 주어지고 부딪혀 오는 현실에 적응하며 한눈팔지 않고 열심히 산다고 했을 뿐이다. 앞으로도 그리 긴 시간은 아닐지라도 한동안 그런 삶이 이어질 것이기에 설렘이나 아쉬움 없이 담담한 마음으로 맞이하려 한다.
나이 칠십이면 기본적 수명은 누렸다. 새로 산 것보다 입던 양복이 더 편하고 반짝이는 새 구두보다 발이 편한 헌 구두를 즐겨 신는다. 리즈(Leeds)시절의 아내보다 잔주름 진 얼굴의 지금의 아내가 더 편안한 것은 함께한 세월이 주는 선물이리라. 큰 병치레 없이 살았으니 그 또한 감사한 일이다. 부모님 중 한 분이라도 계신다면 더없이 좋으련만 구순 넘어 떠나셨으니 욕심임을 안다. 다행히 아직 장인 장모님이 생존해 계시고, 눈뜨면 나가는 일터가 있기에 아쉬움을 달랜다. 마음먹기에 따라 작으나마 무엇 하나 정도는 이룰 수 있는 시간이 남았기에 이마저 놓치지 않겠다는 다짐을 해본다.
남은 삶을 어찌 살 것인가 하는 고민에 앞서 지나온 삶을 먼저 돌아보기로 하자. 최선을 다한 삶이었다고 자신할 순 없으나 그렇다고 허투루 산 것도 아니다. 주어진 현실에 충실하려 했으나 최선을 다했느냐는 물음에는 선뜻 ‘그렇다.’ 답하지 못한다. 최선을 다했다면 정신적, 물질적으로 지금보다 훨씬 더 단단하고 여유로워야 한다. 그리 내세울 것도 없는 삶이나마 한 번 되돌아보려 함은 어느덧 삶의 정점을 지나 누구나 가는 그곳으로 가는 귀로에 있기 때문이다. 그리 멀지도 않은 저 아래 보이는 강 너머 어렴풋한 그곳까지 쉼 없이 가야 한다. 지금 걸음으로도 오래 걸리지 않을 것이기에 남은 시간 또한 그리 여유롭지 않다.
눈길 위의 발자국이 뒷사람의 이정표가 된다 했다. 내가 걸어온 길, 지금 가고 있는 이 길에 앞서거니 뒤서거니 걷고 있거나 아직은 정상에 있으나 얼마 후, 같은 귀로에 들어설 그들에게 한 조각 도움이 된다면 그것 또한 의미가 있을 것이다. 치부가 드러날망정 진솔하게 쓰기로 하자. 단 한 번뿐인 삶이란 여정에서 치열함도 없이 놓쳐버린 수많은 시간에 속죄하는 마음으로 써보리라. 겨울밤 창가에 서서 별이 총총한 밤하늘을 바라보며 깊고 긴 호흡을 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