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리소장 14년에 이런 경우는 처음이다. 지난 사흘간 관리소에 걸려 온 감사 전화가 서른세 통이다. 전화뿐만 아니라 관리소로 찾아온 주민도 있었다. 관리비 부과 업무를 담당하는 경리계장은 출근하자마자 걸려 오는 전화 응대에 오전 내내 바빴다. 문의하는 내용은 같았다. '관리비가 왜 이리 적게 나왔느냐, 뭔가 계산이 잘못된 건 아니냐?'라는 것이었다. 평소 걸려 오는 전화는 거의 민원 사항이다. 주차, 청소, 층간소음 등 무언가 해결을 바라거나, 지적하는 것이기에 신중히 응한다. 그러나 이건 달랐다. 평소보다 횟수도 많을뿐더러 통화 시간도 길었다. 응대하는 경리계장도 같은 내용을 반복하며 설명하느라 지칠 만도 하나 전혀 그런 기색이 없다. 오히려 쾌활한 목소리에 웃음까지 나누며 '감사하다, 고맙습니다'로 통화를 마친다. 또 전화가 오고 다시 같은 상황이 반복된다. 어느 정도 예상하였으나 훨씬 웃돌았다. 모두가 엊그제 배부한 관리비 고지서 때문에 일어난 일이다.
극한 폭염과 잦은 비로 냉방과 제습을 위한 에어컨 가동이 그 어느 때보다 많았던 지난여름이었다. 매년 7월과 1월은 냉방과 난방으로 한 해 중 관리비가 가장 많이 나온다. 지난여름 에어컨 사용에 비례하여 관리비가 얼마나 많이 나왔을까 하는 우려 속에 관리비 고지서를 살폈을 것이다. 그런데 이게 어찌 된 영문인가. 에어컨을 많이 틀었음에도 지난달보다 10만 원가량 적은 금액이다. 놀라움과 함께 의구심이 든다. 왜 이리 적게 나온 것인지, 혹여 계산이 잘못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에 전화하는 것이었다.
300세대 이상인 의무 관리 대상 공동주택은 관련 법령에 따라 매년 1회 이상 외부감사를 받는다. 재무 투명성을 높이고, 입주자들의 권익을 보호하기 위함이다. 부임 후 살펴본 전년도 외부감사 보고서와 감사 방법이 그동안의 경험과 차이가 있었다. 두 명의 외부감사인이 이틀간 전년도 회계 처리한 주요 지출 사항의 법규 및 절차 준수, 증빙 처리의 적확성 등에 대한 감사를 한다. 그리고 감사 종료 전 전반적 회계처리 내용에 대해 총평하는 시간으로 현장 감사를 마무리하고 한 달 후쯤 수십 쪽에 달하는 감사보고서를 보내온다. 관리소장은 외부감사인의 지적과 개선을 권고하는 사항을 반영, 처리한 내용을 회신하는 것으로 외부감사가 종료된다. 그러나 현 근무지에서는 감사 당일 서너 시간 서류 검토만으로 종료되었다고 했다. 외부감사의 취지와 실효성에 의문이 들었다.
외부감사는 잘못 또는 착오 처리한 회계업무에 대한 지적과 수정 및 재발 방지를 위한 개선 권고를 통해 올바른 회계처리의 정착을 위함이다. 외부감사업체를 바꾸고 세밀한 감사를 요청했다. 평균 2일의 현장 감사를 총 3일에 걸쳐 전년도 회계 부분에 대한 외부감사가 실시되었다. 그 결과 지난 몇 년 동안 처리하지 못한 관리비 차감 재원을 찾아낸 것이 1억 원이 넘었다. 내부 갈등으로 인한 조직과 업무의 불안정성 외 업무 간섭 등으로 관리 직원, 경비, 미화원의 사직이 그만큼 잦았고 또 그런 이유 등으로 관리비 차감 처리를 제때 하지 못한 것이 주원인이었다. 현 입주자대표회의 출범 후 세 번째 소장, 최근 일 년을 기준으로 다섯 번째 소장인 내 경우가 그동안의 내부 사정을 말해준다.
감사 결과에 대한 요약 보고와 함께 찾아낸 1억여 원의 처리를 논의하여 관리비가 가장 많이 나오는 7월 관리비 부과 시 일시에 차감하기로 의결되었다. 전액을 투입하면 세대당 12만 원의 관리비 차감도 가능했으나, 매월 분할 부과하는 일부 항목의 잔액을 정리하고 9만여 원의 금액이 차감된 관리비를 부과했다. 연중 가장 많은 관리비를 예상했으나 지난달보다 오히려 10만여 원 가까이 줄어든 관리비 고지서에 무슨 영문인지 알고자 전화하는 것이다. 입주한 이래 이런 일은 처음이라며 음료수를 가져오기도 했다. 그런 광경을 보며 보람은 있었으나 마냥 흐뭇한 것은 아니었다.
관리비 차감 재원의 출처는 관련 법에 따라 적립한 관리 직원, 경비, 미화원의 퇴직급여 충당금, 연차수당 적립금 등 소위 인건비의 미지급분이다. 1년을 근속해야 지급되는 퇴직금, 연차수당 등이 지난 몇 년간 단지 내부의 불안정으로 자의 반 타의 반으로 그만둔 수많은 퇴사자의 몫으로 적립은 했으나 지급하지 못한 돈이다. 대체 사정이 어떠했길래 그 많은 관리직원, 경비원, 미화원이 일 년도 채우지 못했을까. 결국 피고용인을 위해 적립한 금액이 그들에게 지급되지 못함에 고용주에게 배당금 형식으로 되돌아간 셈이었다. 정상적 근무 환경이라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더 이상 반복되어서도 안 될 일이다. 공동주택은 일반 직장에 비해 근무 환경, 임금 수준, 복지제도가 열악한 편이다. 1억 원이라는 인건비가 원래의 주인에게 지급되지 못하고 관리비 차감 재원으로 사용되어 이를 반기는 입주민의 반응을 지켜보는 마음이 개운치 않은 이유다.
관리소장으로 재임하는 동안 이런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해야 함을 또 하나의 과제로 받아들인다. 직원들의 뒷모습을 보며 ‘이왕 들어왔으면 최소 일 년은 견뎌봅시다’라고 나지막이 혼잣말을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