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생 처음으로 얻어먹은 커피 한 잔이었다. 정확히 44년 만이다. 구십 오세 장인이 직접 타 준 커피를 얻어 마신 것이다.
일요일 느지막한 오전, 휴대폰이 울렸다. 장인이었다. "예, 접니다. 이 서방, 집에 있나? 잠시 와서 뭐 좀 옮겨 줄래? 예, 좀 있다 가겠습니다." 장인은 같은 아파트 이웃 동에 장모님과 두 분이 살고 있다. 옮겨달라는 물건은 입식 재봉틀이었다. 거실 에어컨 옆에 있던 녀석이다. 이미 현관문 가까이 옮겨져 있었다. 결혼 초, 옛 처가에서 봤던 것이니, 족히 사오십 년 장모님 손때가 묻은 물건이다.
어릴 적 어머니가 재봉질하는 모습을 가끔 보았다. 재봉틀 상단 실패꽂이엔 하얀색, 검은색 실이 감겨있는 실패가 꽂혀있고, 오른손으로 손잡이를 돌리며 발판을 살짝 밟으면 재봉틀 바늘이 빠르게 상하로 움직였다. 명주실이 실거리를 지나 옷감을 박음질하며 지나갈 때 나는 재봉틀의 리드미컬한 소리와 함께 실패가 돌아가던 모습이 아직 눈에 선하다.
그때는 재봉틀을 미싱이라고 했다. 가정집에 있는 유일한 '기계'인지라 기계의 영어 표현인 Machine(머신)을 일본에서 미싱 mishin이라 했고, 우리에게도 그대로 통용된 것으로 짐작된다. 미국 자동차제조업체 제너럴모터스를 상징하는 GMC 마크가 새겨진 픽업트럭이나 화물자동차를 '재무시'라 불렀던 것과 비슷하다. 자동차가 귀했던 시절, 재무시 트럭 꽁무니를 쫓아다니던 일, 해 질 무렵 어머니와 마주 앉아 풀 먹인 요나 이불 홑청을 다듬이질하던 추억처럼 이 재봉틀도 내 추억의 창고에 저장될 것이다.
'이제 나이 들어 재봉틀 쓸 일도 없고, 안 쓴 지도 오래됐다. 자리만 차지하고 있어 치우려고 한다. 그래도 쓰는 데 아무 문제없으니 누가 쓰겠다는 사람 있으면 그 집에 줘라.' 크기 때문에 승용차에 싣지 못하고 집에 가져가도 놓을 자리가 마땅치 않기에 문간방으로 옮겨 놓고 차편을 구한 다음 치워드리겠노라 했다. 그 방에는 치워달라고 한 지 일 년이 넘은 계륵 鷄肋 같은 1인용 가죽 의자 하나와 식탁 의자 세 개가 새 주인을 기다리고 있다. 부탁을 들어드리지 못한 터라 다른 손볼 거리는 없는지 물었다. 장모님은 안방 문틀에 붙어있는 쫄대가 덜렁대니 다시 붙여달라고 했다. 두 분에겐 맥가이버요, 기술자로 통하는 사위다. 부탁하는 일이야 그저 그런 일이다. 발코니 버티컬이 뻑뻑하다, 형광등이 깜박거린다, 액자, 시계를 옮겨 걸어달라, 스마트 TV가 안 나온다 등 소소한 일이다. 명색이 십사 년 차 아파트관리소장인데 그런 일 쯤이야... 서당 개 삼 년이면 풍월을 읊는다고 했다. 그동안 눈동냥, 귀동냥한 것만으로도 해결할 수 있는 일이다. 더러 서툴고 시간은 걸리지만 해결하지 못한 일은 없었다.
이 방 저 방 서랍을 뒤져 테이프를 찾아 쫄대에 덕지덕지 붙은 테이프를 뜯어낸 다음 새 테이프로 붙이는 작업을 시작했다. 이를 가만히 지켜보고 있을 장인이 아님은 익히 아는 터, 예상대로 도움 안 되는 참견이 시작되었다. 어쩌다 외식 후, 집에 오는 길도 알려주는 분이다. 몇 번을 알아서 하겠다고 해도 계속되기에 다 마무리한 다음 말씀드릴 테니 거실에 계시라 했다. '심심하던 차에 참견 거리가 생겨 좋았는데 나가 있으라니... 그럼 커피나 한잔해야겠다'며 거실의 장모님을 향해 '커피 물 끓여라, 커피 한잔 먹게. 이 서방도 한 잔 타 주고.' 소리쳤다. 가는 귀가 먹어 TV 볼륨을 항상 크게 틀어 놓는 장모님은 듣지 못한 듯 대답이 없었다. 잠시 후, '커피 물 안 끓이나?' 하더니 나가셨다.
5분 여쯤 흘렀을까?' 이 서방, 커피 한잔 먹고 해라.' 하는 말씀에 고개를 드니 장인의 두 손에 커피잔 두 개가 있었고, 그중 하나를 건네셨다. 아니, 이게 뭔 일인가? 전혀 기대하지 못한 모습에 놀랐다. 지금까지 한 번도 이런 적이 없었다. 커피를 다 타시다니… ‘고맙습니다’ 하며 한 모금 마셨다. 밍밍했다. 봉지 커피 하나로 두 잔을 만든 것 같았다. 사위가 된 후, 처음 얻어먹는 장인의 수제 커피다. 그 맛이 싱거우면 어떻고 짜면 또 어떠랴. 구십오 세 장인이 타주는 커피를 얻어먹는 이가 세상에 나 말고 또 누가 있을까, 또 있다고 한들 몇이나 될까. 일하는 내내 ‘참 별일이다.’ 하는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이 광경을 본 장모님도 커피를 타준 남편이 기특(?)한 듯 '세상에, 당신이 이 서방에게 커피 타줄 줄도 아요.' 하며 미소를 지었다.
어쩌면 두 번 다시없을 전무했고 후무할 일이다. 간혹 처가에서 식사라도 할 때면 내가 커피를 타드린 적은 있었으나 장인이 타준 경우는 이게 처음이다. 거듭 생각해 봐도 신기하였다. 평소 손가락 하나 까닥 않고 물 한잔도 엄마에게 다 시킨다고 아내를 투덜거리게 하는 장인이다. 그런 분이 직접 커피를 끓이다니... 이 어찌 귀한 커피가 아닌가! 언젠가 떠나시고 나면 이 커피 한잔이 생각날 것 같다. 집에 와 아내에게 이야기하며 반응을 기다렸다. 무슨 소리인가 하는 표정이었다. 다시 ‘오늘 품값으로 장인이 타 주신 커피 한 잔 먹고 왔다’라고 말했다. ‘뭐, 아버지가 커피를 타 줬다고….’ 놀란 눈으로 되묻는 아내의 표정은 '세상에 이런 일이...'였다. 그도 그럴 것이 아내로선 한 번도 보지 못한 일이며 또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월급쟁이 사위라 생활이 여유롭지 못함을 늘 염려하신 두 분이다. 홍콩에 사는 처남이 다녀가며 드린 용돈을 이거 딸에게 주지 말고 이 서방이 쓰라며 쥐여주던 장모님이다. 그때마다 실랑이한다. 용돈을 드린 횟수나, 장모님이 주는 용돈을 아내에게 상납(?)한 횟수나 어금버금하다. 부모님은 지금 두 분의 연세에 작고하셨다. 늦게 철든 아쉬움을 두 분에게 일부나마 해소할 수 있음은 다행이다. 백세시대의 여생을 건강하게 지내시길 바라며 떠나시는 그날까지 맥가이버 사위, 만능 해결사 사위 노릇에 좀 더 잘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