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의 성도 이름도 알지 못한다. 스무 차례 이상을 만났어도 몇 마디 대화를 나누는 게 전부였기 때문이다. 오늘도 그랬다.
한 달에 한 번 정도 파주에 있는 부모님 산소를 찾는다. 서울의 한 천주교 성당에서 운영하는 공원묘원이다. 십수 년 전 아버님을 이곳에 모신 후, 몇 년 지나 어머님도 아버님 곁으로 모셨다. 북쪽이 가까운 탓에 이곳의 봄은 서울보다 늦다. 5월 초순인데도 산소 위 화단의 철쭉과 영산홍에 몽우리만 맺혔을 뿐 아직 꽃을 보지 못한다. 연분홍, 빨강, 흰색으로 주변을 물들이고 있는 아파트 화단의 꽃들과 비교된다.
묘원 내에서 조화 판매를 하는 그녀를 처음 본 게 삼 년 전쯤이다. 집에서 차로 100번 도로, 자유로를 따라 임진강을 거슬러 한 시간쯤 가면 이곳에 도착한다. 공원 입구에서 이백 미터쯤 안으로 들어가면 묘역관리에 필요한 용수 공급과 성묘객을 위한 공동 수도시설과 화장실이 있다. 공동수도 옆에는 오가는 성묘객을 맞이하고 배웅하는 관리인 역할을 대신하는 듯한 큰 향나무 한그루가 있고 그 향나무 아래가 지난해까지 그녀의 영업장소였다. 조화를 파는 곳이 수돗가 옆이라 화초에 물을 주기 위해 물통에 물을 받거나, 일을 마친 후 신발 밑창의 흙을 씻어내기 위해 수돗가에 들르며 자연스레 눈인사와 짧은 대화를 나누게 되었다. 한두 차례 조화를 팔아주기도 했고 빨간색, 파란색 플라스틱 양동이 십여 개에 담겨있는 형형색색의 조화가 무슨 꽃인지 묻기도 했다. 간혹 원플러스 원 묶음으로 산 생수나 음료수의 여분을 건네고 답례로 그녀의 커피를 얻어먹기도 했다.
더위가 유난했던 지난여름, 아침 일찍 산소에 갔다. 얼마 전에 심은 꽃모종과 목마른 화초에 물을 주기 위해서다. 전날 화원에 부탁해 놓은 꽃모종을 찾아 도착한 시각이 평일의 출근 시간 전이었다. 성묘객이 오는 시각으론 이르기에 그녀 또한 나오기 전이다. 서너 시간 산소 정리를 마친 후 다시 수돗가로 갔다. 그녀가 나와 있었다. ‘일찍 오셨네요.’ ‘좀 팔렸어요?’ 가벼운 인사를 나눈 뒤 얼굴의 땀을 씻고 신발의 흙을 물로 씻었다. 그런 내 모습을 바라보던 그녀가 불쑥 말을 꺼냈다. ‘이달 말까지 장사하고 여기 비우래요.’ 말하는 그녀의 얼굴에 수심이 가득했다. ‘왜요? 자릿세를 달래요?’ 그런건 아닌데 묘원 관리소장이 비우라 했단다.
그녀의 영업장은 주차장으로 들어가는 입구 오른쪽에 서 있는 향나무 아래다. 차량 출입이나 주차장 이용에 지장은 주지 않으나, 화장실과 수돗가를 이용하는 성묘객의 왕래가 잦은 구역이다. 성묘객의 시선과 묘원의 미관을 고려하는 관리소의 입장이기에 그녀에 대한 배려보다 혹시나 발생할 수 있는 민원이나 안전사고 예방을 위한 조치인 듯했다. ‘그럼 이제 어디서 장사할 건가요? 이만한 장소가 또 없을 텐데….’ 아직 생각해 보지 않아 모르겠다고 했다.
공원 입구 도로변에는 조화 가판점 두 군데가 있다. 처음 오는 성묘객은 거의 그곳에서 조화를 산다. 묘원 경내에도 조화 파는 곳이 있는 줄 모르기 때문이다. 마케팅 측면에서 볼 때 그녀의 영업장은 입지 여건상 매우 불리하였다. 하지만 그들보다 늦게 시작했기에 그들이 텃세를 부리거나 시비를 걸지 않는 것만으로도 다행이었다. 그러기에 그들 옆에서 장사할 수도 없는 일이다. 허락할 리가 만무하기 때문이다. ‘그만둘까도 생각해요’라고 말하는 그녀의 말에 힘이 없었다. 도매로 떼온 조화를 팔아 큰 이익이 생기는 것도 아닐 것이다. 조화 판매로 얻는 얼마 안 되는 소득이 그녀에게 유일한 수입원이라면 절망적인 상황이다. 주말이면 늘 그곳에서 꽃을 파는 그녀였다. 서로 인사를 나누고 간단한 음료를 주고받던 인연이 앞으로 더는 이어지지 못한다는 아쉬움과 함께 걱정스러웠다. 잘 됐으면 좋겠다는 위로의 말을 남기고 집으로 왔다.
몇 주가 지난 토요일, 여느 때처럼 아침 일찍 산소에 갔다. 가는 내내 그녀가 그곳에서 장사하고 있기를 바랐다. 이른 시간이라 향나무 아래는 텅 비어 있었다. 어떻게 됐을까? 이따 내려올 때 이곳에 있는 그녀의 모습을 상상했다. 산소 주변의 풀을 뽑고 화단의 키 자란 화초에 지지대를 세운 후 가져간 물통의 물을 몇 차례 뿌려주고 주변 정리를 마친 시각이 정오쯤이었다. 내려오는 길에서 바라보이는 향나무 아래에는 여전히 아무도 없었다. 장사를 접었나, 아니면 다른 곳을 찾았을까 하는 생각을 하며 얼굴과 신발의 흙을 씻은 후 공원 입구로 차를 몰았다. 굽은 도로를 천천히 내려오다 공원 입구가 시야에 들어올 무렵, 눈에 익은 모습이 입구 안쪽의 공터에 보였다. 승용차 한 대가 주차되어 있고 그 옆에 가지런히 놓여있는 대여섯 개 양동이에 담겨있는 조화가 보였다. 짐작대로 그녀였다. 차가 멈추는 모습에 그녀도 알아본 듯 반가이 맞이한다. ‘오셨어요? 이곳으로 옮겼어요.’ ‘여기서 장사를 해도 된대요?’ 그녀는 밝은 표정으로 그렇다고 했다.
수년간 장사를 했던 그녀의 사정을 딱하게 여긴 관리소장이 통행에 지장이 없는 이곳에서 장사할 수 있도록 배려해 주었다는 것이다. 다행이었다. 묘원 관리의 명분도 찾고 어려운 사람에게 살길을 터준 종교 시설 관리자다운 배려가 고마웠다. 여분의 생수와 음료수를 건네주고 그녀가 타준 커피 한잔을 마시고 집으로 오는 내내 마음이 가벼웠다. 앞으로도 그녀의 모습을 계속 볼 수 있게 되었다는 사실에 안도하였다. 비록 십여 분 남짓의 짧은 만남과 몇 마디 대화가 전부이나, 사라질뻔한 내 일상의 한 조각이 종전과 같이 그 자리를 지킬 수 있게 되었다는 사실에 마음이 흡족하였다. 집으로 오는 길, 자유로를 따라 말없이 흐르는 임진강 물빛이 그날따라 유난히 반짝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