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대체 아버지를 어떡하면 좋아.' 아내의 한숨 섞인 걱정과 푸념이다. 수년째 반복되고 있는 일이기에 새삼스럽지 않으나 그 횟수가 잦아짐이 염려스럽다. 이미 푸념을 넘어 탄식, 원망의 단계라 해도 지나침이 없다. '속 끓이지 말고 그냥 둬라. 아직 정신 못 차렸다.' 70년을 밥 수발과 뒷바라지하신 장모님의 체념 어린 탄식이다. 아내의 걱정, 푸념과 장모님의 탄식을 불러오는 주인공은 올해 95세 장인 어른이다. 정상적인 노화 과정과 치매 사이의 중간 단계라는 경도 인지장애 단계는 이미 지난 것 같다. 대졸 신입사원 급여 수준의 연금이 매월 통장으로 입금되나 입금 다음 날이면 잔액이 바닥인 상황이 반복되고 있다. 마음에 드는 물건을 보면 카드를 꺼내기 때문이다. 소비 증후군 치매 증상인 당신께선 딸과 아내의 근심에는 별 신경 쓰지 않는다. 아니 관심조차 없다.
건강관리에 대한 높은 관심과 더불어 의학이 발달하고 생활 수준이 높아지면서 사망률이 현저히 줄어든 우리나라는 전 세계에서 인구 고령화 속도가 가장 빠르다. 국제연합(UN) 기준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2000년에 고령자 인구 비율이 7.2%로 고령화 사회로 진입한 후 2018년에는 14.3%로 고령 사회, 2024. 12. 23 기준으로 초고령 사회로 진입했다고 한다. 2024년 8월 말 기준으로 통계청, 국민연금공단, 건강보험공단이 공동 조사한 시도별 인구조사에서 우리나라 인구는 총 51,801,449명, 이 중 95세는 3,975명이다. 나이별 생존확률은 90세가 5%, 95세는 조사 자료에 없었으나 1~2% 정도일 것으로 짐작된다. 그중의 한 분이 장인 어른이다.
예로부터 '효' 를 모든 행동의 근본이라 하여 가장 중요한 덕목으로 여겼기에 장수는 축복이었다. 지금보다 훨씬 짧은 삶을 살았던 선조들은 회갑을 큰 경사로 여겨 잔치를 열고 그 기쁨을 이웃과 함께하였다. 그러나 요즘 세태는 그때와 확연히 다르다. 회갑 잔치를 하는 사람은 보기 어렵고 칠순조차도 뭐 그리 축하받을 일이냐는 듯한 백세 시대에 살고 있다. 아파트 내에서도 노부부가 함께 산책, 운동하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사는 동안 건강을 유지하기 위함이다.
구순에 이르면 신체적 퇴화 또는 정신적인 장애로 요양원 또는 요양병원에서 기거하는 노인이 많다. 그러나 장인에겐 남의 얘기다. 매일 출근하는 나와 별다름 없는 일상을 누리신다. 그런 부모님이 이웃이기에 매일 들르는 아내다. 요양보호사 자격을 취득한 후로는 매일 두 차례 이상 들른다. 장인의 식사 수발은 거동이 다소 불편하신 장모님 몫이다. 오래전 홍콩에 이주한 동생과 올케의 몫까지 더 하여 두 분을 보살피며 분리배출, 시장 봐주기, 약 심부름 등이 아내 몫이 된 지 오래다. 매일 얼굴을 대하기에 장인의 행적을 직접 보고 듣기에 장인에 대한 아내의 잔소리와 걱정이 늘고 목소리가 커지는 경우도 가끔 생긴다. 장인의 무절제한 카드 사용 때문이다.
모든 게 부족했던 시절에 가정을 꾸렸고, 전쟁의 후유증 속에 온갖 어려움을 몸소 겪었기에 근검, 절약이 뼛속까지 몸에 밴 장모님이다. 한겨울 실내 공기가 다소 서늘해 보일러 온도를 올리며 좀 따뜻하게 지내시라 해도 내복 입어 괜찮다며 도로 낮추신다. "저승 차 타고 갈 때까지 설거지하다 갈 팔자"라는 점쟁이 말을 운명으로 받아들이며 평생을 알뜰히 살림하며 뒷바라지하셨으나 정작 당신을 위한 일은 별로 한 게 없는 장모님이다. 장인은 그 반대다. 치매 증상의 진전에 따라 예전과 다름을 느끼나 정작 본인은 인정하지 않는다. 아내를 만났을 때 오십 중반이셨다. 가정과 자식을 위해 온갖 노력을 다한 우리 아버지 중의 한 분이었다. 그 덕분에 안정된 삶을 유지하며 네 명의 증손자를 둔 일가를 이루었으니 이제는 평안하고 여유로운 삶을 누려야겠으나 세상사가 바람 같지 않다. 치매의 그림자가 어른거리면서 점차 다른 사람으로 변했다. ‘사람은 늙으면 도로 아기가 된다’라는 말처럼 쇠잔해 가는 육체와 함께 정신력도 감퇴(減退)하는 것은 어찌할 수 없다.
결혼할 무렵에 처가는 신설동, 장인 사무실은 명동이었다. 그런 연유로 서울 지리에 밝으시다. 이곳 왕숙천 변의 남양주로 이사 온 후로도 서울 나들이는 이웃집 마실 수준이었다. 동년배 친구, 지인은 모두가 세상을 떠났기에 노년의 일상을 함께 할 누구도 없다. 흉흉했던 코로나 시절, 매일 서울 나들이를 하는 이유를 말벗을 찾아 나서는 것으로 이해하고 안쓰러운 마음으로 지켜보았다. 아내의 소망은 단순했다. 엄마랑 함께 여생을 재미나게 지내시는 것이었다. 아내의 그런 바람과 잔소리는 장인의 안중에 없고, 귀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애원도 하고 화를 내기도 했으나 이젠 지친 듯하다. 아내에겐 평생의 울타리인 장인이다. 한평생을 자식을 위해 헌신했음을 알기에 어찌 감사하지 않을까. 아내 나름의 노력과 정성을 다하고 있다. 그러나 예전 아버지의 모습은 점점 사라져 간다. 내 정성의 부족함으로 알고 더욱 정성을 쏟으나 그만큼 아픔으로 돌아온다. 오래지않아 떠나실 당신이기에 최선을 다해 그날 이후의 아쉬움과 후회를 줄여보려 애쓰고 있으나 그런 노력이 무의미하다. 지금 아버지는 분명 내 아버지이기도 하고 아니기도 하다. 예전의 아버지로 돌아올 수만 있다면 무엇인들 못 할까. 평생을 가족을 위해 헌신한 엄마를 봐서라도 예전의 모습으로 돌아오길 간절히 바라는 마음이나 변해 가는 당신을 붙들지 못한다.
비 오는 날, 당신의 우산 아래 손잡고 걸었고 뜨거운 여름날 당신의 그늘에서 자란 아내다. 가정을 꾸린 후 자식을 키우며 그 우산과 그늘이 어떤 것이며 부모 자식의 관계가 멍에요, 굴레인 것도 깨달았다. 그 멍에와 굴레를 기꺼이 쓰고 온 당신이기에 아내 또한 마다하지 않을 것이다. 얼마 후면 그 멍에와 굴레에서 벗어나 영원한 안식을 누리실 것이나 잠시나마 예전 아버지로 돌아올 수는 없는지…. 그 굴레와 멍에의 무게를 오롯이 감내하기엔 아직은 미숙한 자식임을 헤아려 줄 수는 없는 것인지…. 당신께서 머무는 자리를 바라보는 아내의 눈에 슬픔과 물기가 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