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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 얼마나 절실했는가

주택관리사(보) 자격 취득기

by 애기타

▣ 그대 얼마나 절실했는가.

이루고자 함이 얼마나 절실한지 먼저 스스로에게 물어보라 하고 싶다. 그 이루고자 함이 허황하거나 요행이 아니라면 대부분은 그 절실한 만큼 이루어지는 것이 삶의 이치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지금까지의 살아온 경험으로도 또 내 주변 사람들도 대개 그랬었기에….


TV 프로그램 중에 오디션 프로그램을 즐겨본다. 출연자들의 풋풋함과 목소리 하나에 승부를 건 그들의 절실함을 가늠해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수많은 사람들과의 경쟁 속에서 그들이 이루고자 하는 것을 얻기 위해 기울여 온 그들만의 이야기에 가끔은 가슴이 찡한 순간도 있다. 참으로 다원화된 사회 속에 우리는 살고 있다. 불과 얼마 전의 트렌드가 옛것이 되어버리는 세상의 빠른 흐름 속에 웬만큼의 재능이나 노력만으로 자신의 입지를 확보하고 오랫동안 유지한다는 게 정말 어려운 일이다. 불과 십 대 후반, 이십 대 출연자인 경우, 저 나이에 벌써 저런 생각을 다 했을까? 하는 감탄도 한다. 삼십 대의 출연자 또한 여러 사정으로 가슴에 품어온 자기만의 못다 한 꿈을 이루기 위해 오직 한길로 매진해 온 그들이다.


불과 5분도 안 되는 그 짧은 순간에 자신의 모든 것을 다 보여주기 위해 온 힘을 기울이는 그들의 모습이 왜 안쓰럽지 아니할까. 저리도 절실한 바람이 꼭 이루어지길 바라는 마음으로 짧고도 긴 그 시간을 그들의 심정으로 지켜본다. 같은 길을 가고자 하는 이가 어찌 한둘일까. 그들과의 경쟁이요 생존게임이니 어찌 치열하고 처절하지 않을까. 누가 승자가 되어 살아남고 다음 라운드에 진출할 것인가에 대한 답은 자명하다. 누가 더 처절하고 절실하게 원하고 준비했느냐에 따른 결과를 얻기 때문이다. 대중은 냉정하지만 객관적이다. 누가 더 내 마음을 움직였는가에 따라 선택한 것이기에 그 선택을 탓할 수 없다. 나보다 더 절실함을 보인 사람이 선택되는 것이다. 비록 원했던 결과를 오늘 얻지 못하더라도 좌절하지 말고 내 절실함의 부족을 인정하고 더 절실한 마음으로 손톱 준비하기를 바랄 뿐이다.


▣ 그대 지금도 절실한가.

퇴직 후 조급한 마음으로 벌인 일들이 경험과 준비 부족으로 가지고 있던 얼마 안 되는 돈마저 소진하고 나서야 마음은 점점 조급해졌다. 그 무섭다는 은행이자 외 아파트 관리비, 외면할 수 없는 친인척, 지인들의 경조비, 4대 보험료, 각종 공과금, 차량 유지비 등은 어찌하나. 아직 독립시키지 못한 자식의 결혼 준비는 어떻게 하나…. 내게 맞는 돈 버는 일이 무엇일까? 자격증 취득을 통한 취업 방법은 없을까라는 고민이 매일 반복되었던 그땐 불면이 친구였다.


많은 고민 끝에 부동산중개사, 주택관리사로 압축되었다. 버스로 몇 정류장에 불과한 학원으로 찾아가 학원장과 상담 후 주말 오전, 오후반의 특강을 들어본 다음 선택하기로 했다. 특강을 전후로 나와 같은 입장인 그들의 조언 등을 참고한 결과, 주택관리사가 좋겠다는 판단으로 수강 등록하였다.


자격시험까지는 불과 6개월여. 다른 수강생의 경우 이미 다섯 과목에 대한 3개월 단위의 첫 라운드 강의를 마친 상태였다. 상고 출신에 법학을 전공한 이력으로, 죽기 살기로 한다면 가능하다는 판단이었다. 시험과목에 대한 큰 부담은 없었으나 3개월을 앞선 동급생들과의 격차는 어쩔 수 없었다. 첫 달 수강 후 치른 학원 모의고사의 성적은 25명의 수강생 중 끝에서 2등이었다. 더 내려갈 데도 없으니 차근차근 올라가자며 자신을 위로하고 마음을 다잡았다. 3개월의 격차를 따라잡는 방법으로 그들보다 더 많은 시간을 책과 씨름하는 그것 외에는 무슨 방법이 더 있으랴. 왕복 40여 분의 학원 통학은 자전거로 다니며 체력 관리를 하기로 했다. 공부에 무슨 왕도가 있을까. 책과 씨름한 시간이 많은 게 왕도라는 생각으로 먹고 자는 일 외엔 모든 시간을 예습과 복습에 투자하였다.


폐자전거 수거 작업을 마친 관리사무소로부터 쓸 만한 것 하나 얻었다. 오후 수업 인지라 오전엔 인터넷 강의를 2배속 4배속으로 예습, 복습하다 6배속까지 들으며 하루 최소 10시간 이상을 공부에 매달렸다. 두 번째 라운드 3개월이 지난 시점에 본 모의고사 성적은 중간이었다. 수강생 중 최고령자는 나보다 두 살 연상이었다. 어느 날 예·복습에 대한 얘기를 나누다 하루 15시간을 공부한다는 말에 자극을 받고 다음 날부터 15시간으로 늘렸다. 1차 시험을 얼마 앞둔 최종 모의고사 성적은 상위권이었다. 시험 전, 지난해 출제 문제집 한 권을 다 풀어본 평균 점수는 합격 점수를 다소 웃돌았으나 회계과목이 다소 찜찜하였다.


가장 시간을 많이 할애한 회계는 원가계산 문제가 매년 7~8문제가 출제되었다. 방정식을 응용한 문제도 있기에 수학이 없는 과를 골라 법학과를 지원했던 나에겐 부담이 가는 과목이었다. 결국 생애 최초로 머릿속이 하얘지는 경험을 선물하였다.


시험 당일, 진인사대천명의 심정으로 한 시간 일찍 도착해 차분하게 대응하자며 마음을 다졌다. 1차 시험은 민법, 회계 원리, 시설 개론 세 과목이다. 첫째 시간 민법은 예상보다 쉬웠다. 최소 80점 이상 기대되었다. 시설 개론은 70점 정도를 목표하였으나 생각보다 까다로워 60점 전후의 점수가 예상되었다. 드디어 마지막 운명의 회계 원리 시험을 맞이했다. 6개월 인고의 시간을 보낸 내겐 승부의 시간이다. 최소 50점 이상만 획득한다면 평균 합격선을 넘을 수 있다. 온 신경을 집중하여 한 문제씩 차근차근 풀어내자며 시험지를 받았다.


전반부 회계이론은 이해력 문제로 힘들지 않게 해결하고 시간을 요구하는 원가계산 문제를 먼저 해결한 후 나머지 문제를 풀기로 했다. 원가계산 한두 문제를 풀어보니 생각보다 어려웠다. 답이 나오지 않아 다시 풀기를 반복하였다. 마음은 조급해지고 어쨌든 풀려고 안간힘을 쓰던 중 '남은 시간 30분입니다'라는 감독관의 말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아니 시간이 벌써 그리 흘렀어.’ 하며 남은 문제가 얼마인지 남은 문항을 보니 아직 상당수가 남아 있다. '이거 큰일 났다' 하는 생각이 드는 순간 갑자기 머릿속이 하얘지는 것이 아닌가. 내시경 검사 시 먹는 위장 조영제가 퍼져나가는 듯했다. 처음 겪어보는 경험이었다. 당황스러운 마음에 집중해야지 하는 마음과는 달리 진정되지 않았다. 이래선 안 되는데….


오늘, 이 순간까지 얼마나 처절하게 책과 씨름했던가. 이 고비를 넘기지 못하면 그간의 온갖 노력이 수포가 된다. 얘기만 듣던 머릿속이 하얘진다는 경험을 내가 겪다니…. 이럴 순 없다. 이 순간을 위해 그동안 어떻게 준비해 왔는데 이렇게 무너질 순 없다며 몇 번의 심호흡과 잠시 눈을 감고 정신을 가다듬었다. 그러기를 일 분여. 절반 가까이 남은 문제를 더 이상 원가계산 문제로 시간을 소비하지 말자며 문제지를 앞으로 다시 넘겨 100% 확신이 들지 않더라도 정답으로 추정되는 답을 표시해 나갔다. 못다 푼 원가계산 문제에 다시 도달하기도 전 ‘15분 남았습니다.’라는 말에 콩닥거리는 가슴을 억누르며 문제를 풀었다. 못다 푼 원가계산 4~5문제는 운에다 맡긴다는 심정으로 정답을 찍고는 답안지에다 답을 옮겨 적었다. 시험 종료를 알리는 요란한 벨 소리와 함께 남은 3~4문제는 모두 3번에 마크하는 것으로 마무리하였다.


몸에 기운이 빠지고 허탈하였다. 준비해 온 시간의 거의 절반 가까이 회계 원리 학습에 투자하지 않았던가. 그놈의 2차 방정식을 응용해야 하는 원가계산 문제의 덫에 무너진 자신이 한심하였다. 시험장을 나와 동료 수강생들과 힘없는 인사를 나누며 마음속으로는 그래도 과락은 면했겠지 하며 위로했다. 과락만 면한다면 민법과 시설 개론에서 받은 초과 점수로 평균 60점의 합격선은 넘을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하며 가채점을 위해 학원으로 발길을 돌렸다.


학원에서 가채점한 점수는 65점 전후였다. 그래도 불안했다. 찍은 문제의 답을 몇 번으로 했는지도 가물거렸고 애매한 것은 틀린 것으로 하여 나온 점수로 합격선은 넘었으나 그래도 모를 일이다. 과목당 한 문제 정도 더 틀린다면 합격 경계선의 점수였기에 장담할 형편이 아니었다. 후일 최종 점수가 70점 중반으로 확인되었으나 그때 심정으론 합격을 자신할 수 없었다.


1차 시험을 치른 한 달 후에 맞이할 2차 시험 두 과목을 하루 쉰 다음날부터 시험 대비에 올-인하였다. 주택관리실무와 주택 법령 과목이었다. 1차 시험의 전철을 밟지 않기 위해 학원 강의 수강과 인터넷 강의 복습에 매진하였다. 2차 시험은 예상보다 문제가 너무 쉽게 출제되어 이런 수준의 시험을 위해 그토록 처절하게 준비하였는가 하는 심정이 들 정도로 평이하여 허탈감이 들었다. 최종 평균 점수가 75점이었다. 나름대로 최선을 다한 결과였다. 몇 달 후 관할 시청에 가서 주택관리사보 수첩을 건네받아 집으로 오는 동안 몇 번이나 수첩을 들여다보며 지나온 과정을 반추하였다.


▣ 절실함의 끝은 어디인가.

퇴직 후 2년간의 시행착오를 거쳐 도전한 6개월의 나의 주택관리사 자격 취득 과정은 여러 곡절도 있었으나 해피엔딩이었다. 이후 취업하기까지의 과정은 이보다 훨씬 더한 어려움이 기다리고 있었으나 자격 취득을 위한 도전과 과정은 그 나름대로 처절하고 절실한 노력의 산물이었다는 생각에는 지금도 변함이 없다.

그땐 그만큼 절실했었다. 그런 절실함이 관리소장으로 직무를 수행함에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가장 튼실한 밑천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그리고 그 밑천을 기반으로 또 다른 내일을 위해 다시 시작하리라. 이 현란하고 지루한 100세 시대에 아직 젊지 아니한가! 이제 60 초반이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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