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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트 관리소장이라는 직업

by 애기타

올해로 24회 차를 맞이한 주택관리사보 1차 시험 결과가 발표되었다. 시험 접수자 2만 2,406명, 응시자 1만 8,683명, 합격자가 2,952명. 나이별로는 50대, 60대 이상이 2,112명으로 전체 71.5%를 차지했다고 한다. 그들 대부분이 전 직장에서 퇴직 후 제2의 인생을 위한 직업으로 아파트 관리소장직을 선택한 내 경우와 같은 사람들이다. 주택관리사보 자격을 취득한 지 올해로 14년, 그 햇수만큼 아파트 관리소장직을 수행하고 있다. 처음 업계에 발을 디딜 때만 하더라도 이렇게 오래 하리라곤 생각지 못했다. 이 업계에 입문 전 36년간의 사회생활을 오직 금융업 한 업종에서만 종사했기에 공동주택관리업계에 대해 아는 바도 인맥도 없었다. 또 결혼 후, 아파트에서 살았으나 아파트 관리소장이란 직업이 어떤 일을 하며, 어떤 자격이 필요한 것인지 알지 못했고 관심도 없었다. 그런 내가 또 이렇다 할 기술 자격증 하나 없이 긴 세월 자리를 유지해 올 수 있었음은 참으로 다행스러운 일이다. 아파트관리소장의 자격의 제1순위가 전기, 소방, 영선, 기계 유지관리 등 특정 기술 분야의 자격보유가 아님을 말하는 것이다.


수십 세대에서 수천 세대인 공동주택. 그곳에는 생활의 기반에 필요한 제반 시설, 설비 등 인프라(Infrastructure)가 구축되어 있으며 가스 외 분야별 필요한 사람을 두고 있다. 즉, 전력 수·변전 용량 규모에 따라 산업기능사, 기사, 특급 등의 전기 자격소지자 외 소방시설 안전관리자, 기계설비 유지관리자 등과 기계, 소방, 영선, 통신 및 관리비 부과(경리), 민원 행정(서무) 담당자 그리고 경비원, 미화원 등이 있다. 이 모든 분야가 제 기능과 역할을 다하여 아파트 주민들의 생활에 불편함이 없도록 관리하는 일이 관리소장의 주된 역할이다. 이 외에도 감독, 행정기관의 지시 및 협조 요청사항 등을 이행하고 보고한다. 또 내부 의사결정 기구인 입주자대표회의의 의결 사안의 집행 및 그 의사결정이 법률에 위반되거나 흠결이 없도록 지원하고 조율하는 일도 포함된다.


적지 않은 나이임에도 매일 출근하기에 동년배의 부러움을 받는 것도 이 직업이기에 가능한 일이다. 개인적 경험에 비추어 오십이나 육십 대에 입문한다면 평균 십 년 전후의 근무가 가능할 것으로 생각한다. 거기에 본인의 노력 여하에 따라 10년 이상의 근무도 가능한 현실적으로도 몇 안 되는 직업 중 하나이다. 가까운 동료 중 오십 중반에 입문하여 한 근무지에서만 십오 년째 근무 중이거나 또 십 년을 훌쩍 넘긴 경력자가 드물지 않다. 백세 시대를 사는 현대인에게 분명 매력적 직업인 것은 틀림없다. 얼마 전, 회사 정례 교육 참석 시 CEO의 인사말 중 한 분을 거명했다. 회사 내 최고령 현직 관리소장으로 올해 82세였다. 일반 직종이라면 불가능한 일이다.


1차 시험 합격자의 2차 시험 합격률은 절반 수준으로 녹록하지 않다. 그런 과정을 뚫고 최종 합격을 했다 하더라도 이는 입문을 위한 첫걸음에 불과하다. 주택관리사 자격을 취득했다면 아파트 관리사무소장직을 수행할 지적 능력은 검증되었으나 어떤 관리소장이 되느냐는 것은 별개의 문제다. 각자의 생각과 노력 정도에 비례하기 때문이다. 보람을 느낄 수 있고 안정된 노후가 확보된다면 성심껏 최선의 노력을 다해 볼 만한 직업인 것은 틀림없다.


가격 대비 만족도가 높으면 가성비가 좋다고 한다. 요즘은 ‘가심비’라는 표현이 회자된다. 심리적 만족도를 말한다. 관리소장에 대한 입주민의 가심비가 높다면 얼마든지 롱런이 가능하다. 주민들의 두터운 신망을 받으며 안정된 업무환경 속에서 근무하는 소위 가심비가 높은 관리소장이 많다. 그들도 애초 그런 기반이 조성되어 있는 곳에 부임한 것은 아니다. 그런 곳이면 나에게 기회나 차례가 오지 않는다. 어쩌면 지금 당신이 근무 중이거나, 부임하는 아파트의 근무환경보다 더 나을 게 없는 곳에서 부단한 노력과 정성으로 이뤄낸 것이다. 표준화, 정형화된 근무환경이란 어디에도 없다. 설혹 오늘 최상의 관리 운영 체계가 확립된 곳이라도 내일 어떻게 변할지 알 수 없는 것이 공동주택 관리 현장의 현실이다. 이런 현상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며 앞으로도 지속되고 또 반복될 것이다. 개인적 경험으로 안정된 관리 운영 체계가 정착되고 입주자대표회의와 더할 나위 없는 상호 협력적인 관계를 유지하며 8년을 근무했던 곳도 그 구성원이 바뀌자 부임 당시 혼돈의 시절로 되돌아갔다. 오랜 세월 공들여 세운 탑이 무너지는 데 그리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그런 선순환과 악순환이 반복되는 곳이 공동주택 관리 현장인 것이다.


‘단지는 소장이 만들어가는 것이다.’ 평소 배울 것이 많고 어려움이 있는 경우 조언을 구하는 동료 소장의 명쾌한 지론이다. 백번 공감한다. 어쨌든 이 모든 것은 입문 후의 일이기에 우선 업계 입문의 벽을 넘어야 한다. 입문 후, 초심을 유지하고 규정과 절차를 준수하며 정성을 기울인다면 분명 입주민의 두터운 신망 속에 인정받는 관리소장으로 자리매김하고 롱런할 수 있는 것이 아파트 관리소장이라는 직업이다. 반환점을 돌았으니 얼마 남지 않은 결승점까지 잘 완주하여 업계 입문의 꿈을 꼭 이루시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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