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로만 들어온 ChatGPT, AI다. 그런데 이 녀석들이 불쑥 관리소를 찾아왔다. 이렇게 찾아오리라곤 생각지 못했기에 막상 마주하고 보니 기분이 묘했다.
이틀 전, 주차등록에 대한 입주민의 민원이 있었다. 거주지가 다른 언니 명의의 차량을 자신이 타기로 했다며 주차등록을 요구했다. 사정이 이러저러한데 주차등록을 할 수 있는지 묻는 게 아니라 입주민이 타는 차량이니 당연히 등록할 수 있는 것 아니냐는 논조였다. 주차 관리 규정상 입주민 차량으로 제한되고 자동차등록증 주소지가 아파트이어야 하며 회사 차량은 재직증명서가 있어야 한다고 안내했다. 입주민이 타는 차량이면 등록을 해줘야 하는 것이지 그런 규정은 불합리하다며, 동거 여부를 떠나 주차등록을 해 주는 아파트도 있다고 했다. 주차 관리 규정에 따라야 하므로 관리소에서 임의로 처리할 수 없으며 원한다면 입주자대표회의에 안건으로 상정할 테니 본인의 주장과 요구사항을 서면으로 제출해달라 했다. 그 이틀 후 접수되었다.
문서의 구성과 격을 갖춘 A4 한 장 반 분량에 법조문을 인용하고 기한 내 답변을 요구한 것 등으로 보아 소비자 보호 또는 민원 처리 업무와 관련이 있는 기관이나 부서에 근무자인 듯했다. 답신의 격과 내용도 이런 점을 고려하여 답신해야겠다는 생각에 찬찬히 다시 읽었다. 법조문을 인용한 부분에 눈길이 머물렀다. 민원인이 인용한 법은 아파트관리소장에게 친숙한 법이다. 민원 답변 기일에 관한 조항이나 법조문을 본 기억이 없어 관련 법령을 다시 살펴보았으나 없었다. 법조문을 잘못 인용하지는 않았을 텐데 하며 하위 법규까지 살펴보았으나 민원 답변 기일에 관한 조항은 없음을 확인했다. 처리 기일과 관련한 것은 오직 관리 규약 개정 신고 시 관할 지자체장의 수리 기한에 관한 것이었다. 과장에게 한번 보라고 했다. 컴퓨터에 관한 지식과 실력이 나 보다 월등한 과장이다. 문서를 살펴본 과장이 아무래도 이건 AI가 작성한 것 같다고 했다. 문서 작성 기준, 명령어, 답변 범위 등이 명료하지 않아 AI가 유사 내용을 짜깁기한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AI가 민원을 제출했다는 얘기를 듣는 순간 머리가 멍해졌다.
십여 년 전, 바둑 천재라는 이세돌 국수(國手)가 AI 알파고와 바둑을 두는 장면이 생중계되어 세계적인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그때 그 바둑 대국(對局)을 보며 ‘언젠가는 AI와 함께 살아가는 세상이 오겠구나’라고 생각했었다. 그때의 생각이 막상 현실에서 맞이했다는 사실에 그런 느낌이 든 것이다. 과장이 한마디 보탰다. AI가 작성한 민원이니 답변서도 AI로 만들면 어떻겠냐고. 또 한 번 머리가 띵했다. AI 민원에 AI가 답한다.
함무라비 법전에 ‘눈에는 눈, 이에는 이’, 정치판에서는 ‘이슈는 이슈로 덮는다’ 했다. 호기심 반, 기대 반으로 그래보라고 했다. 과장이 컴퓨터 자판을 두드렸다. AI가 작성한 민원 내용을 입력하고 답변 작성 기준으로 상대가 대학을 졸업한 삼사십 대 여성으로 법률적 상식이 있는 직장인으로 설정하고 이에 걸맞은 법률적 표현과 정중한 문체로 답변서를 작성하라고 했다. 잠시 후 AI가 작성한 답변서를 보며 다시 놀랐다. A4용지 두 장 분량이었다. 주문의 요지와 제시 기준이 구체적인 때문인지 답변 내용도 만족스러웠다. 민원인이 겪는 불편함에 대한 위로와 함께 민원인의 주장에도 일리가 있는 점을 인정하고, 절차상 차기 입주자대표회의에 상정하여 그 결과가 나올 때까지 다소 시간이 걸려야 함에 대한 양해를 구했다. 거기에 회의 결과가 나오는 즉시 알려드리겠다는 요지의 답변과 인사말까지 답변서 기승전결 어디에도 흠잡을 데가 없었다. 이대로 보내라 했다.
‘세상 참’이다. 신문을 펼치면 AI 관련 기사가 하루도 빠지는 날이 없는 요즘이다. 이미 생활 속에 침투해 있는 AI다. 로봇이 주문받은 음식을 배달하는 일, 자동 발권기, 키오스크 이용이 일반화된 지 이미 오래다. 알고 보면 편리하나 급속한 기술문명의 변화를 기다렸다는 듯 받아들이는 ‘얼리 어답터’(Early Adopter)가 아니기에 기존의 익숙함이 편하고 친근한 아날로그 세대다. 편지를 써본 지가 까마득하며 전화번호와 노랫말을 예전처럼 외우지 못한다. 내비게이션과 같은 새로운 기술문명에 의지하며 편리한 삶을 누리는 대신 인간 고유의 성정마저 앗아가 버리는 게 아닌지 하는 괜한 두려움에 거부감을 가진 꼰대 세대다. 하지만 어쩌랴. 그게 문명의 발전이고 외면할 수 없는 시대의 흐름이요, 그 속에 내가 존재함을. 생전 처음으로 AI 민원을 접하다 보니 오만가지 상념이 떠올랐다.
아날로그 시대에 태어나 디지털 시대에 한평생을 살다 AI, 즉 인공지능 시대에 진입했다. 다음 세상은 어떤 세상일까? 우리 아이들은 어떤 세상에서 살아갈까? 인간이 AI를 만들고 지배하고 있으나, AI가 인간을 지배하는 시대가 곧 도래함을 예견하는 목소리가 크다. 깊은 사유 끝에 얻게 되는 깨달음과 수많은 시행착오를 통하여 얻게 되는 해답이 이제 한순간에 얻을 수 있는 그런 시대가 되었다. 이 인공지능 시대 다음은 또 어떤 세상이 기다리고 있을까? AI 민원 한 건이 던진 파문이 생각보다 크고 그 답을 찾기가 쉽지 않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