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마스 선물

by 애기타

하늘엔 영광, 땅에는 평화. 크리스마스다. 며칠 남지 않은 을사년, 예전 같은 들뜬 연말 분위기는 아니지만 온 가족이 모여 즐거운 시간을 나누는 성탄절이다. 그러나 우리 가족에겐 슬픈 크리스마스다. 한 달 전 교통사고로 사위를 잃었기에 아직 그 슬픔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참으로 다정다감했고 살가웠던 사위, 딸과 외손녀에겐 세상 최고의 남편이자 아빠였다. 그런 남편, 아빠가 없는 크리스마스를 맞는 딸과 손녀가 있어 가슴 아픈 크리스마스다.

큰아들 같았던 사위였다. 딸과 결혼 후 다니던 직장을 사직하고 부친의 사업을 도우며 시장 개척, 상담, 주거래처를 관리하며 잦은 미팅과 해외 출장으로 늘 바쁘게 살아온 사위다. 고액 계약을 성사시킨 후, 거래처 관계자와 저녁 식사를 마치고 택시를 잡으려다 사고를 당한 것이다.


그날, 딸의 흐느끼는 전화를 받고 하늘이 무너지는 심정으로 병원에 달려갔다. 아직 온기가 남은 사위 얼굴을 어루만지는 그 순간에도 이게 현실이라고 믿고 싶지 않았다. 사위의 짧은 삶이 애통함을 넘어 원통했다. 그렇게 사위를 떠나보낸 지 한 달만의 크리스마스다. 산타의 존재를 반신반의하는 손녀다. 지난해까지도 크리스마스 아침, 일어나자마자 산타 할아버지 왔었냐고 묻는 손녀에게 준비해 둔 선물을 건네주면 그렇게 좋아했다는 손녀다. 아빠와 함께 외식도 하고 산타 선물을 받았던 기억이 생생한 크리스마스다. 아빠 없는 크리스마스를 처음 맞이하는 손녀의 마음은 어떨까? 장례를 치른 후, 손녀에게 말했다. ‘아빠가 하늘나라에 갔어도 아빠는 항상 네 곁에 있으며 너를 지켜주고 있어. 아빠가 널 얼마나 사랑하는지 알잖아.’ 그렇게나마 아빠가 곁에 있어 주길 바라는 손녀는 대답 대신 고개만 끄덕였다.


크리스마스 이틀 전, 아들, 며느리와 함께 딸의 집에서 저녁을 했다. 딸이 시댁 식구들과 스키장을 다녀온 날이었다. 스키장에서 가족 대화방에 올린 사진에는 딸과 손녀의 옆자리가 비어 있었다. 사진 아래 딸이 적은 한 줄 메모. ‘오빠도 함께 있어요.’ 언제 어디서든 늘 함께 있어 주길 바라고 또 그렇게 믿고 싶은 딸의 마음이 담긴 사진을 보며 목울대까지 차오른 울음과 씨름해야 했다.


크리스마스날 딸은 손녀를 데리고 시댁으로 갔다. 엄마와 함께 저녁을 먹고 난 손녀가 할아버지, 할머니가 집으로 왔으면 좋겠다고 한다기에 한달음에 달려갔다. 먼저 도착한 거실에는 손녀가 엄마와 함께 만든 크리스마스 트리에 꼬마전구만 깜박이고 있었다. 이웃의 손녀 친구 엄마가 산타 선물인 양 트리 아래 두고 간 선물상자가 있으니 모른 척하라는 딸의 얘기에 들고 간 선물 상자는 현관에 두었다.

잠시 후 귀가한 손녀에게 산타 할아버지가 네 선물을 할아버지 집주소로 잘못 보내 가져왔다며 선물 상자를 건네주었다. 며칠 전 독일에 있는 누님이 보내온 것이었다. 크리스마스트리 아래의 선물 상자를 뒤늦게 본 손녀가 ‘이건 뭐야?’ ‘산타할아버지 선물이야?’ 하며 포장을 뜯었다. 손녀가 갖고 싶어 했던 이어 팟과 케이스, 동화책이었다. 입이 함박만 해진 손녀가 소리를 질렀다. ‘내가 갖고 싶어 한 걸 어떻게 알았지’ 하며 입을 다물 줄 몰랐다.


잠시 후, 크리스마스트리에 뭔가가 붙어 있는 것을 발견한 손녀가 저게 뭐야 하는 표정으로 다가갔다. 이어 비명과 함께 ‘엄마! 일루 와 봐. 아빠야. 아빠가 정말 같이 있었네. 정말 아빠가 왔었어.’라고 울먹이며 외쳤다. 비명 같은 소리에 놀라 달려온 딸은 사진을 보자마자 손녀를 부둥켜안고 울었다. ‘엄마, 아빠가 있었어. 그날 우리 옆에 아빠가 왔었어!’ 지난 한 달간 얼마나 아빠가 보고 싶었을까. 제 딴에는 참고 있던 아빠에 대한 그리움이 아빠가 함께 있는 사진을 보자 울음으로 터져 나온 것이다. 그날 딸이 ‘이 자리는 아빠 자리야. 아빠는 언제나 우리 곁에 있는 거야’ 하며 손녀 옆 자리를 비워둔 채 찍은 사진이었다. 딸도 그 사진이 붙어 있는 줄 몰랐고 나도 몰랐다. 딸의 가족사진에는 언제나 세 사람이었다.


그 아픈 일이 있은 후 처음으로 찍은 엄마와 딸, 두 사람만의 가족사진이었다. 사진을 찍으며 늘 함께했던 남편과 아빠 생각이 오죽했을까. 그래서 옆자리를 비워둔 채 찍은 사진이었다. 그런데 거기에 그립고 그리운 남편, 아빠가 있었다. 순간 그동안 참고 참아왔던 그리움이 한꺼번에 터진 것이다. 손녀를 끌어안고 엉엉 우는 딸, 손녀와 함께 울었다. 얼마나 그립고 보고 싶은 얼굴이었던가! ‘그래 울어라. 실컷 울어라. 아빠 많이 보고 싶었지. 할아버지도 많이 보고 싶어. 할아버지가 얘기했잖아. 아빠가 하늘나라에 갔어도 항상 너랑 함께 있다고. 그러니 너도 아빠가 항상 네 곁에 있다고 생각하고 씩씩하게 지내야 해.’ 눈물범벅의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는 손녀를 꼭 끌어안고 토닥여 주는 일 말고는 내가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열한 살 손녀도 그렇게라도 아빠가 곁에 있다고 믿고 싶은 마음인 것을 알기에 더욱 애처로웠다.


다음날, 아들에게 전화했다. ‘어쩌면 그렇게 깜쪽 같으냐? 합성한 흔적이 전혀 없더구나. 네 덕분에 한바탕 눈물바다가 되긴 했으나 누나랑 서윤이에게 더없는 크리스마스 선물이었다. 수고했다.’ 단톡방에 딸이 올린 사진을 아들이 사위 사진을 합성해 크리스마스트리에 걸어둔 것이었다.

그래 이렇게 서로 보듬으며 살아가자. 그게 가족이 아니냐. 비록 눈물의 크리스마스였으나 가족애를 확인하고 그 눈물 덕분에 힘을 낼 수 있을 것 같다. 손녀에게 말하리라. ‘서윤아, 지난번에 봤지. 네가 어디에서 무엇을 하던 아빠가 항상 네 곁에 있고 널 지켜보고 있잖니. 그러니 너도 씩씩하게 자라야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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