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시대, '쓸모'보다는 '매력'

by 이 구름



예전에는 좋아하는 일보다 잘하는 일을 직업으로 삼아야 한다고 믿었다.
능력과 효율이 중시되는 사회에서, 남들의 ‘필요’를 얼마나 잘 충족시키느냐에 따라

내 쓰임이 결정되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제 그 '필요'조차도
AI와 로봇이 훨씬 더 빠르고 정확하게 채워주는 세상이 되었다.


최근에 본 서울대 미래연구소의 ‘2090년 사회 계급 전망’이라는 글이 생각날수록 서늘해진다.



2090년,
1계급은 애플, 테슬라, 엔비디아 같은 기술을 ‘소유’한 기업의 오너들,
2계급은 인기 정치인, 연예인과 같은 스타
3계급은 사회 전반의 일자리를 대체할 AI.
그리고 나머지는,
AI와 로봇조차 투입할 가치가 없는 단순 노동만을 수행하게 되는
‘프레카리아트’ 계급이 된다는 것이다.
(프레카리아트: precariat는 저임금, 저숙련 노동에 시달리는 불안정 노동 무산계급을 뜻하는 신조어.)


물론 2090년까지는 아직 50년이나 남았지만,
그간의 세월 동안 산업화 이후로 가장 큰 변화를 사회가 겪게 될 것 같다.


ChatGPT 등장 이후,
AI의 발전을 실감하게 되었고
그 이후로는 매분기 아니, 매달 실생활에서 기술의 발전을 느끼고 있다.


나중에 대다수의 회사는 그 기업의 소유자,
그리고 디렉터급 몇몇을 빼놓고서는
지금처럼 많은 인력을 운용할 필요가 있을까?


궁극적으로는, 회사가 사라질 수도 있다.


그래서 오히려 ‘내’가 더 중요한 시대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면, 과거에는 남들의 needs가 중요하고
내가 그 needs에 맞는 능력을 키워서 맞추는 게 필요했다.


*조직이 필요로 하는 부분이 되는 것이 가장 안전한 류의 직업이었다



‘성적’이나 ‘자격증’으로 능력을 증명할 수 있는 다른 무언가가 있어야 했다.

그런데 지금은 다수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분야는
AI가 오히려 더 쉽게 자리 잡을 수 있다.
더 많은 자본이 빠른 시일 내에 투입될 테니까.


지금은 그래서,
남들이 ‘필요’하다고 느끼는 것이 아니라
‘매력’을 느끼는 것이 더 중요하다.


인간성과 개성을 느끼고
“저 사람, 궁금하다”
“저 사람이 하는 일을 보고 싶다”
라고 느끼게 하는 힘.
그것은 오히려 자기가 좋아하는 분야를 파고들 때 더 잘 드러나는 강점이라고 생각한다.


꼭 잘해야 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너무 단시간에, 너무 완벽한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능력에
사람들은 점점 더 재미를 느끼지 못하게 될 것이다.
그런 것들은 너무 ‘쉽게’ 느껴지니까.


오히려 어설픔, 좌절, 실수, 게으름을
온전히 드러내면서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아가는 모습에서
더 큰 매력을 느끼게 될 것이다.


과거에 많은 어른들이 말했다.
“좋아하는 거 말고, 잘하는 거를 해라.”
지금도 그게 진실일까?


지금의 플랫폼은 다양하고 넓어졌다.
개인이 무자본으로 1인 방송국(유튜브)을 만들고,
잡지(브런치)를 발행할 수도 있는 시대다.


/회계/ /변호/ /의료/ /무역/ /광고/ 등등…
사람들이 ‘쓸모 있다’고 정해둔 카테고리의 일만이
더 이상 ‘먹고 사는 방법’이 아닐 수도 있다.


오히려, 나만의 카테고리를 만들어서
“내가 이걸 좋아하는지는 몰랐는데,
이 사람이 하는 걸 보니까 나도 좋아하게 됐어”
하는 사람들을 많이 만들어야
살아남을 수 있는 시대가 아닐까?


본래의 나가
정말로 좋아하고,
내 인생의 많은 시간을 쓰고 싶어 했던 일은 뭐였을까.


나는 원래 어떤 모양의 사람이었을까.


나는,
그 질문에서부터
나의 새로운 일을 시작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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