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에게 뾰족한 재능이 있다
아직 이름 붙여지지 않은

by 이 구름


대도서관 책의 서문에 그런 이야기가 있었다.

방송국의 피디시험에 통과하지 않아도, 신춘문예에 당선하지 않아도 좋다는 것. 어릴 적부터 엄마 화장대 앞에서 립스틱을 바르던 사람의 재능도, 연필을 기가 맊히게 깎는 어떤 이의 재주도 유튜브의 세상에서는 얼마든지 펼쳐보일 수 있다는 내용이었다.


좋아서 자꾸 하다보니까, 별거 아닌데 알고보니 뾰족해진 것. 내게는 무엇이 있을까 떠올려봤다. SNS에 뭘 올리기가 어려웠던게 나 스스로를 뭐든지 ‘애매하게 한다‘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작년에 영어학원에서 어떤 남자분과 대화를 나눴는데, 그 분이 이런 이야기를 했다.


- 이렇게 그냥 말씀하시는 걸 찍어도 너무 재밌을 것 같은데요, 지금 당장 유튜브를 해봐요

- 혹시 잘하는 게 너무 많아서, 고르지 못하시는 거 아니에요?


학창시절을 떠올리면, 뭐든지 뭘 애매하게 잘했던 것 같다. 초등학교 때는 글짓기 상, 그림 그리기 상을 받을 때 빠지지 않는 어린이었는데 중학생, 고등학생이 되면서 깨닫게 된 것이다. 나와 같은 문예부에 있던 친구는, 전국 청소년 문학상에서 항상 대상을 수상했고 난 뭘 봐야지만 그릴 수 있는데, 정말 재능있는 친구들은 머릿 속에서 사진 아카이브라도 갖고 있는 것처럼 보지 않고도 완벽하게 그려냈다.특히, 나는 명암은 봐도 늘 잘 모르겠는데, 그 친구는 그걸 너무 자연스럽게 표현했다. 우리 사이의 거리는 ’취미‘로 즐기는 사람과 ’직업‘으로 삼아도 되는 재능 딱 그정도로 멀어보였다.


그런 내가 잘하는게 너무 많다니. 애매한 건 너무 많이 갖고 있지, 라고 생각했는데 아직 남들이 정해준 ’카테고리‘중에 뭐라고 딱 정할 수 없어서 그렇지 나에게 분명 확실한 재능이 있다는 걸 ‘퇴사‘라는 발등에 불이 떨어진 후 생각하게 되었다.


[글] [그림] [회계] [연기] [수학] 등등

이렇게 정해진 카테고리 안이 아니라 새로운 카테고리를 만든다면,

나에게도 뾰족한 재능이 있다.


[생각의 서랍]만들기.



사진의 아카이브를 갖고 있었던 그 친구나, 촘촘한 글의 구성력과 표현력을 갖고 있던 그 친구처럼

누가 봐도 확실한 재능은 아니지만,

내가 먼저 이름 붙여본다면, [생각의 서랍]만들기다.


어렸을 때, 엄마가 많이 싸웠다. 기억의 기억을 편집해서 증거를 내밀고, 내가 왜 옳은가를 설명하고 감정의 원인이 너에게 있다고 설득하는 싸움. 처음에는 모조건 혼나는 입장이었는데 사춘기를 겪으면서 엄마가 내게 했던 그대로 엄마에게 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싸움 후에 후회하고 ‘엄마는 왜 그랬을까’ 하며, 또 엄마 입장에서 그 이유를 생각해보게 됐다.


당시에 그건 단지 고난이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그 때부터 내 생각의 습관이 생긴거 같다. 모든 일의 이유가 있다고 생각하는 것. 나 나름대로 그 이유를 잘 정리한 다음, 더이상 내 마음을 어지럽히지 않도록 ‘생각의 서랍’에 넣어두었다. 처음에는 내 감정에 영향을 준 것들을 그렇게 했는데 나중에는 좋은 책, 좋은 말, 나를 깨닫게 했던 어떤 상황들도 생각의 서랍에 넣어두기 시작했고, 그게 광고회사에서 크리에이터로 일하는 내내 나에게 좋은 자산이 되어주었다.


이 [생각의 서랍] 이라는 재능을, 나는 어떻게 발휘하면 좋을까.

나는 앞으로 어떻게 꺼내어 펼쳐볼 수 있을까.

다음 글에서는 그래서, 내가 시작한 작은 프로젝트에 대해 설명해보려고 한다


#생각의서랍 #애매한재능 #자기이해 #퇴사후의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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