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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솜 PD Aug 30. 2021

02. 방향을 잃지 않기



요즘들어 유독 피곤했다. 그날 했던 일을 인스타에 정리하며 짤막하게 이런 코멘트도 달았었다.



23일

-오늘따라 진짜 피곤하다. 그동안 사는 게 즐겁다며 이것저것 하고 다니던 게 전생 같을 정도로. 그냥 이런 날이 있나보다. 


25일

-계속 뭔가를 읽고 써서 그런가 너무 피곤하다. 저번주까지만 해도 모든 게 신났었는데 갑자기 재미 없기도 하고. 이것저것 생각하고 벌려놓은 게 많아서 그런가. 꿈은 높은데 내가 달성한 건 별 거 없어보여서 그런가. 재밌지 않은 일들을 가려내야 하나.



지치고 피곤하다는 생각이 들면서 번아웃인가? 싶었지만 나는 에너지가 고갈 될 정도로 그렇게 열심히 살지 않았다. 새로운 곳에 가면 모든 게 다 신기하고, 즐겁고, 좋았었는데 며칠 만에 그런 감각을 잃은 게 이해되지 않았다. 정신이 꽤 바쁘기는 했다. 머릿속에는 그날 해야할 일, 앞으로 해야할 일이 가득 찼고 새로 시작할 것들에 대한 아이디어를 끊임없이 수정했다. 나는 하루에 4시간정도를 본업에 투자한다. 여태까지 남은 시간에는 다른 일을 했다. 주로 뭔가를 배우고 연습했으며 이 시간동안 쌓아왔던 걸 지금 더 발전시키고 결과물을 내려 하고있다. 어쨌든 하고싶은 걸 하면서 여유롭게 시간을 보냈었고 배우는 모든 것들이 내게는 '놀이'에 가까웠기 때문에 전혀 힘들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하지만 요즘은? 아침에 일어나면 책을 읽고 정리하고, 글을 쓰는데 정신을 차려보면 2~3시간 정도가 지나있다. 꽤나 몰입해서 그런지 에너지를 다 쏟은 듯 피곤하다. 쉬기도 할 겸 점심을 먹고 집에 있으면 쳐지게 되니 카페로 나간다. 이때도 꼭 카메라를 챙겨가서 무언가를 찍고 간단하게 기록하고 어떻게 콘텐츠로 만들까 궁리한다. 이후에도 비슷하다. 유튜브나 퍼블리에서 관심 있는 콘텐츠를 찾아보고, 기록하고, 영상 편집도 좀 하고, 일을 하고... 마지막까지 남은 에너지를 쥐어 짜는 느낌이다. 좋아하는 활동을 하고 있는데도 지친다. 베타콘텐츠를 만들어서 작게라도 일단 시도하는 게 좋다는 조언에 따라서, 이것저것 해보지만 성에 안 찬다. 뭐든 완벽하게 해내고 싶은 나에게 가볍게 만들어낸 결과물은 부끄럽기만 하다. 그냥 뭘 해도 안되는 것 같았다. 어차피 안 될 건데 무슨 의미가 있나 싶었고, 그렇게 기다리던 외주를 두 건이나 받았는데도 '신기하네' 정도의 감상이었다. 회사가 없으면 안 되는줄 알던 내가 독립적으로도 일을 할 수 있구나, 내 능력을 찾아주는 사람이 있구나, 하고 깨달은 기회인데도 말이다. 내가 지금 노력하는 방향, 그러니까 내 이야기를 글로 쓴다거나, 영상을 만든다거나 하는 일이었으면 좀 더 나았을까. 모르겠다.


또 하나의 고민거리는 인스타그램이었다. 인스타그램을 시작한 이유는 세 가지였다.


1. 내가 그날그날 한 일을 기록해서 이후에 돌아봤을 때 '그래, 나 이렇게 열심히 했었지. 지금은 안 하더라도 그땐 이걸 정말 좋아했었지.' 라고 말 할 수 있는 것

2. 매일밤 아무것도 한 게 없다는 자책으로 잠들기 보다는 그날 한 일을 조금이라도 되새기며 내게 용기를 주는 것

3. 기록해야 한다는 의무감에 조금이라도 더 열심히 사는 것


그런데 점점 엉뚱한 생각이 비집고 들어오기 시작했다. 


이렇게 운영한다고 해서 셀프브랜딩이 되나?

이 기록을 보고 누군가 나를 찾아줄까?

다른 사람들이 나를 팔로우 할까?


기준이 밖으로 옮겨갔다. 이는 단순히 sns에 국한되는 이야기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내 삶과 내가 하는 일의 기준이 밖에 찍혔다는 뜻이다. 박웅현은 <여덟 단어>에서 '기준점이 안에 찍히면 자존이 자라고 밖에 찍히면 눈치가 자랍니다.' 와 비슷한 말을 했다. 강신주는 <강신주의 다상담>에서 '눈치를 보다간 주인으로서의 삶을 살지 못한다' 했다.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나는 남의 눈치를 보기보다는 내가 하는 일들이 정말 나의 '성장'을 위한 건지 '나 이렇게 열심히 하고 있으니 누가 좀 봐주고 일도 주세요.'라고 밖에대고 외치는 건지 헷갈리기 시작했다.


역시나 이런 고민에 잠긴 채로 눈을 뜬 아침. 차분히 일기를 써내려가며 내가 가는 방향성을 점검했다. 원인을 알 수 없는 피로감이 어디서 오는 것인지도. 위에 적은 말들은 그때 깨달은 거다. 이전까지는 마냥 지친다는 생각 뿐이었다. 그리고 습관적으로 책을 집어들었다. 아침에 일어나서 읽고 쓰는 일은 익숙하다. 특히 독서는 별다른 의욕이 없어도 조금이라도 하려 한다. 그게 참 다행이었다. 펼쳐든 책에서 딱 맞는 해답을 얻었으니까. 최근 아주 잘 읽고있는 <인디펜던트 워커> 라는 인터뷰집이었고, 내게 답을 준 건 프로젝트 썸원을 운영하시는 '윤성원'님의 인터뷰다.




-조금 더 구체적으로 생각하고 있는 해결 방법과 단계들이 있지만, 실제로 검증하기 전까지는 솔루션이라고 말할 순 없을 것 같다. 아름답고 낭만적인 솔루션이 있는 것도 좋지만, 그보다는 시장에서 최대한 많은 시도를 해보고, 기록으로 남기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다른 회사로 이직하는 사이 한 달 정도 쉬는 기간이 있었다. 평소에 뉴스레터에 관심이 있어서 '한 달 동안 한번 운영해 볼까'라는 생각으로 특별한 준비 없이 시작했다. 처음에는 폰트를 바꿀 줄도 몰랐다. 매일 뉴스레터를 발행하면서 방법을 익혔다. 계획하기보다는 일단 시작하고 필요하다고 생각하면 보완하는 방식이다. 가급적 가볍게 시작하자는 주의다. 


-나 자신에게 시행착오를 겪을 시간을 주는 것이 중요하다. 혼자 일하니까 남에게 피해를 주는 것도 아니지 않나.


-좁거나 넓게보다는 '가볍게'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가볍게 시도해 보고, 거기서 배운 게 있다면, 그걸 적용하기 위해 또 다른 시도를 해보는 거다. 거기서 또 뭔가를 깨달으면 다시 시도해 보고, 그러다 보면 시도하기 전과는 다른 환경이 만들어진다고 믿는다.


-사람들은 보통 좋은것, 내가 잘하는 것 위주로 공유한다. 정제된 것도 좋지만 나는 시행착오를 겪는 모습도 있는 그대로 보여 주려고 한다. 나는 잘 모르겠다, 도와달라는 얘기도 많이 한다.


-첫째, 좋아하거나 시도해 보고 싶은 일이 있으면 뭐든 가볍게 시도한다. 둘째, 그걸 소셜 미디어를 통해 알린다.


-개인적으로 퍼스널 브랜딩보다는 퍼스널 그로스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과거의 나보다 성장하거나 발전한 부분이 있다면 그게 곧 브랜딩이 아닐까. 어떤 사람인지도 중요하지만, 어떻게 달라지고 있는지도 중요하다.달라진 것을 성장이라고 불러야 할지, 변화라고 불러야 할지는 모르겠지만 1년 전에 비해 달라져 있다면 사람들의 시선도 달라질 수밖에 없다.


-성장하려면 무언가를 끊임없이 시도해야 한다. 안해봤던 걸 해보고, 발전하기 위해 시행착오를 겪어야한다. 시행착오를 극복해 내면 그만큼 성장하는 거다. 나 역 마찬가지다.




너무 많이 발췌한 것 같지만 줄이고 줄인 게 이거다. 밑줄을 긋고 필사한 내용은 훨씬 많다. 썸원님의 말 한 마디 한 마디가 주옥 같지만, 요약하자면 이렇다.


1. 일단 작고 가볍게 시도해야한다.

2. 남에게 피해를 주는 것도 아니고, 부끄러움만 감수하면 되니 괜찮다.

3. 그리고 이 부끄러움은 다른 일을 해나가는 동력이 된다.

4. 이런 과정이 반복되며 성장한다.


책을 읽고 깨달았다. 그동안은 '작은 것부터 시작하라.'는 말이 이것저것 재고 따지지 말고 일단 첫발걸음부터 떼라는 뜻이라 생각했다. 정말 작은 걸 시작하면서도 의문이었다. 이 다음에 하기 싫어지면 어떡하지? 그 작은 게 나는 너무 부끄러운데? 이게 끝까지 이어지리라는 보장이 있나? 그 다음에는 뭘 어떻게 해야하는데? 큰 게 남았잖아. 


내가 베타콘텐츠를 만들면서 괴로워했던 이유가 여기에 있었다. 왜 해야하는지 몰랐다. 하지만 정말 감사하게도! 썸원님의 인터뷰가 나도 몰랐던 내 답답함과 궁금증을 해소해주었다. 남에게 피해를 주는 것도 아니니 일단 시작해도 괜찮다고. 뒷따라오는 부끄러움은 당연한 거라고. 부끄러워야 그걸 고쳐나가면서 나는 성장할 수 있다고. '브랜딩' 보다는 '그로스'에 초점을 맞추라고. 지금 내 상황에 딱 필요했던 조언이었다. 폰트를 바꾸는 방법도 몰랐는데 일단 뉴스레터를 보내기 시작했다는 썸원님의 경험담이 참 커다란 용기가 되었다. 얼마전 역마케팅 소셜 모임에서 썸원님의 뉴스레터를 추천받아서 더 그런지도 모르겠다.긴 시간도 아니고 그냥 한 달동안 해보자, 하고 시작했던 레터가 이제는 누군가 좋아하는 분이니 읽어보라며 추천해주는 글이 되었구나. 


사실 나도 언젠가는 뉴스레터를 발행하고 싶은 마음이 있었지만, 방법을 찾는 것부터 막막했고 '누가 내 뉴스레터를 구독하겠어.' 하는 마음이 컸다. 하지만 이제는 일단 한 명에게라도 뉴스레터를 보내야 경험이 남고, 그것을 기록할 수 있고, 그러면 또 누군가 찾아오고... 하는 순환이 시작된다는 걸 안다. 목표가 생겼다.


1. 뉴스레터 만들기. 발송은 못하더라도 일단 만들고, 사람을 모으기. 식단 계정도 좀 더 열심히 운영하기.

2. 프로필 사진 찍기 (하는 일이 늘어나면서 오직 나만이 작성할 수 있는 포트폴리오의 윤곽이 보이기 시작했다. 이때 써먹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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