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닥군 Nov 18. 2016

정치 드라마가 저널리즘에게 묻는다.

Take #01. <어셈블리>로 본 언론의 민낯

언론의 시선이 만들어낸 이미지

 2013년 12월, 수서 발 KTX의 민영화에 반대하며 철도노조가 파업에 돌입했다. 이에 KBS를 비롯한 지상파 3사와 종편 뉴스들은 한 목소리를 냈다. 파업 첫째 날인 2013년 12월 9일, SBS는 '철도 총파업에 지하철까지……교통 대란 우려' KBS는 '화물열차 운행 ⅓로 ‘뚝’……물류대란 오나?'라는 보도를 했다. MBC와 종편의 뉴스들 역시 마찬가지다. 각 방송사의 뉴스들은 파업 소식을 전하면서 물류대란에 초점을 맞췄다. 파업이 진행됨에 따라 안전사고의 문제, 시민의 불편을 언급했다. 파업의 쟁점이었던 코레일이 일부 노선을 민영화하고 경쟁시스템을 도입한다는 사안은 물류대란, 경제적 손실과 같은 경제 프레임에 밀려 집중적으로 다뤄지지 않았다. 이러한 보도행태는 2013년의 철도노조 파업뿐 만이라 2003년, 2008년 있었던 화물연대 총파업의 보도와 동일하다. 매번 경제손실과 시민불편을 중점적으로 보도한다.  





드라마 저널리즘: 노동자의 진짜 모습


 ‘언제가 세상은 영화가 될 것이다’ 프랑스의 철학자 질 들뢰즈의 말이다. ‘영화를 좋아하는 것은 그 영화가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을 좋아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그 시선들을 통해 세상을 바꿀 것이라고 말한다. 영화는 관객에게 사회 의제를 제시한다. <소수의견>, <카트> 등의 영화들이 지속적으로 사회적 약자, 소외계층에 대한 문제를 대중 앞에 던져 놓았다. 드라마도 마찬가지다. 영화와 드라마 모두 기본적으로 이야기다. 현실과 동 떨어진 이야기는 없다. 필연적으로 사회의 모습을 비춘다. 현실의 욕망을 등장인물 혹은 배경을 통해 표출한다. 이른바 ‘드라마 저널리즘’이 뉴스가 다가가지 못한 곳으로 나아가고 있다. 하나의 이야기로. 사실 브라운관에서 노동자를 만나는 일은 흔치 않았다. 다루어진다 하더라도 큰 비중이 없는 조연, 이야기 밖의 존재였다. 주요 소재로 다루어지더라도 수동적인 모습으로 그려졌다.   


  <개과천선>에서는 노동조합과 파업이 주요 소재로 등장한다. 하지만 변호사와 같은 조력자의 도움이 필요한 존재로 등장한다. <어셈블리>(2015)에는 이렇게 사각형의 화면 밖에 밀려나 있던 노동자를 주인공으로 삼았다. 주인공 진상필(정재영 분)은 해고노동자 출신의 국회의원이다. 국회에 입성한 뒤 법안을 발의하는 과정에서 정치논리에 휩쓸리는 등의 이야기가 진행된다. 드라마는 부당 해고로 인해 기업에 맞선 노동자의 모습을 그린다. 동시에 사회에 만연한 노동조합과 노동자의 인식도 노골적으로 드러낸다. 김규환(옥택연 분)은 경찰 공무원 면접 장에서 과격한 시위문화에 대한 질문을 받는다. 김규환과 함께 면접에 임한 다른 지원자는 “떼를 쓰면 관철된다는 잘못된 인식이 나은 비극입니다”라고 답한다. 노동자의 개인이 가진 인식의 문제로 여긴다. 이에 김규환은 “크레인? 떼를 쓰러 올라갔다고? 그래 그렇게 보이겠지…그 사람이 거기 올라간 진짜 이유는 땅바닥에서 더 이상 발 디딜 데가 없었기 때문이야”라고 말한다. 노동자들이 안고 있는 구조적인 문제를 상징적으로 표현한다. 극적인 요소와 허구도 가미되어 있다. 하지만 오늘날, 뉴스와 드라마 무엇이 더 진실에 다가갔을까?   


 빌 코바치와 톰 로젠스틸의 ‘저널리즘의 기본원칙’에서 저널리즘은 ‘일반 시민에게 충분한 정보를 제공하여, 자기 통치가 가능하도록 하는 것’으로 정의된다. 면접 장에서 ‘정답’을 또박또박 말하고 김규환의 눈초리를 받던 다른 면접자, 그가 생각하는 노동자의 이미지는 어디로부터 왔는지 궁금하다. 언론은 해고 노동자를 둘러싼 문제를 깊이 진단하지 않았다. 쉬운 접근을 통해 경제손실과 과격시위에 초점을 맞췄다. 그 결과 구조적 문제는 개인의 문제로 치환되었다.  


 <어셈블리>는 해고 노동자와 그의 가족이 겪는 이야기를 스케치한다. 서사를 통해, 개인을 넘어 구조에 다가선다. 사건을 넘어 사회현상을 바라보고 전달한다. 언론의 미흡함을 드라마가 메우고 있다. 드라마 저널리즘이다.




왜 정치 드라마 인가 : 현실 정치 속으로


 그동안, 정치드라마의 주로 사극의 형태였다. 동시대를 표현하는 경우, 정치판을 둘러싼 뒷거래와 배신이 핵심소재였다. <어셈블리>는 이러한 요소들을 최소화했다. 국회가 돌아가는 모습을 극으로 옮겼다. 장단점을 비롯하여 관습까지도 가져왔다. 정치와 언론의 공생관계도 언급했다. 정치인에게 언론은 하나의 도구다. 인지도를 높이기 위한 수단이다. 언론에게도 마찬가지다. 기삿거리를 제공해준다. 드라마 속, 기자와 보좌관이 서로를 ‘선후배’로 칭하며 일종의 거래를 하는 모습은 이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언론의 역할은 정부와 국회를 포함한 사회 전반을 감시하고 비판하는 일이다. 정치인의 홍보팀이 아니다. 정치의 민낯인 동시에 언론의 민낯이다.   


 나아가 드라마는 국회의 본모습에 집중한다. 국회가 해야 하는 일을 조명하면서 감시한다. 여당의 국회의원으로 국회에 입성한 진상필 앞에 놓인 것은 현실 정치이다. ‘배달수법’ 입법과정이 드라마의 큰 축이다. 배달수(손병호 분)는 <어셈블리>에 등장하는 해고 노동자 중 한 명이다. 진상필은 배달수를 필두로 해고 노동자를 위한 법안을 만들기 위해 노력한다. 드라마는 입법과정을 5단계로 구분한다.  


 첫 번째 단계인 법안 발의를 시작으로 상임위원회 법안 상정, 법안 심사, 소관 상임위 의결 마지막으로 본회의 표결을 거친다. 다소 어려울 수 있는 내용을 보좌관 최인경(송윤아 분)을 통해 단계별로 차근차근 전달한다. 입법부의 역할과 입법과정을 둘러싼 갈등을 극의 요소로 삼는다. 입법 활동은 국회의원의 활동을 평가할 수 있는 주요 잣대이다. 어떠한 법안에 찬성을 하고, 반대를 했는지 또 무슨 법안을 발의했는지가 국회의원 개개인의 정치적 성격을 규명한다. 진상필의 극 중 “국회의원이요, 싸우는 사람 아니잖아요. 법 만드는 사람이잖아요.”라는 대사는 입법부 그리고 국회의원 본연의 역할이 무엇인지 되새기게 한다.   


 그렇다면 어떤 사람이 국회의원이 되어야 하는가에 대한 물음도 자연스럽게 답을 찾는다. 언론이 무엇에 관심을 가지고 이야기해야 하는가도 분명해진다. 선거철만 되면 경마저널리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평상시에는 황색 저널리즘의 유혹을 이기지 못하는 미디어에게 무엇에 초점을 맞춰야 하는가를 명백히 알려준다.



정치 혐오, 왜 정치를 외면하는가


 <어셈블리> 속 백도현(장현성 분)과 홍찬미(김서형 분)에는 공통점이 있다. 정치판에 물든 존재들이다. 그 과정에서 초심을 잃었다. 백도현은 드라마에서 진상필의 ‘배달수법과 동일한 내용을 담은 ' 패자부활법’을 꿈꾸면서 정치를 시작한 인물이다. 홍찬미의 경우 환경운동을 하던 변호사 출신이다. 비례대표로 국회에 입성했다. 그리고 둘은 같은 이유로 본래의 모습을 잃는다. 이해관계에 따라 단순하게 움직이게 됐다.   


 이들을 변하게 만든 절대적인 가치 중 하나가 바로 공천이다. 드라마는 공천권을 둘러싼 여당 내 계파 갈등을 통해 현실 정치를 풍자하고 있다. 정치판의 민낯이다. 국민당의 계파는 사무총장 백도현을 중심으로 한 친 청계와 박춘섭(박영규 분)의 반 청계로 나뉜다. 정치적 이해관계를 통해 손을 수시로 잡았다가 놓는다. 매번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모습을 보인다. 편 가르고 돌아서고 자신의 기득권을 지키려는 모습을 보인다. 또 하나 ‘지역구’다. 표를 얻기 위해서 지역구는 그들에게 ‘관리’의 대상이다. 공약 남발로 이어진다. 국회의원들은 민심 대신 표심을 얻기 위해 지역구 유지들의 말들을 물불 가리지 않고 받아들이는 모습을 보인다. 노골적인 ‘지역이기주의’에 박수를 치기도 한다.   


 드라마는 이러한 태도와 행동을 ‘정치공학’이라는 말로 명명한다. 야당의 원내수석부대표로 등장하는 조웅규(최진호 분)이 상징적이다. 철새라는 비아냥거림을 들으면서까지 소속 정당까지 옮긴다. 소신도 같이 움직인다. 이러한 드라마 속 현실을 꼭 닮은 정치판의 모습에 시청자들은 다시 한번 정치에 좌절한다. 진상필은 이상적이다. 정치 본연의 의미를 가장 제대로 정의하는 인물이다. 대중이 바라는 정치 그리고 정치인의 모습이다. 우리가 바라는 이상은 현실과 딱 맞아떨어지지 않는다. 맞지 않아 삐져나온 조각에 스포트라이트는 집중된다.   


 진상필과 초심을 되찾기 전의 백도현은 다를까? 진상필과 조웅규는 다를까? 답은 ‘그렇지 않다’다. 드라마 밖 시청자의 가슴을 두들기던 진상필의 연설은 드라마 속 뉴스에서 우스갯거리로 보도된다. 현실도 그렇다. 우리가 미디어를 통해 마주하는 정치는 진상필과 백도현도 진상필과 조웅규를 걸러내지 않는다. 밤 9시, 전파를 통해 안방에 남는 것은 잔뜩 지른 고성과 정치혐오뿐이다. 맥락을 잃고 사건만 남는다.




왜 우리에겐 진상필이 없을까?


 <어셈블리>는 곳곳에서 진상필의 연설에 의지한다. 연설 내용을 통해 많은 것을 전달한다. “국민이 국민의 의무를 다했을 때는 국가가 의무이고 국민이 권리다”라는 마지막 회 연설은 많은 시청자의 마음 가까이에 다가갔다. 당연한 가치가 가슴을 울렸다. 진상필의 정치가 ‘진짜 정치’ 임을 알고 있다.  


 그렇다면 현실에서 진상필은 어떤 정치인일까? 국회의원 후보, 진상필은 노동자 출신의 비주류의 정치인 이다. 당신이 살고 있는 아파트 재건축 문제는 그의 관심사가 아니다 . 대신 지역구 내 소외계층들을 위해 일할 것이다. 물론 그전에 각종 매체가 매일 듣던 어휘들로 진상필에게 덧칠하는 붉은색도 지켜봐야 한다. 진상필은 드라마 속처럼 여전히 이상적인 정치인의 모습일까? 이상과 현실의 괴리에 진상필의 ‘진짜 정치’는 갈 길을 잃는다.  


 아니면 진상필이라는 이름을 알지도 못할 것이다. 지금도 국회에는 진상필과 같은 인물들이 있다. 매일 자신의 일을 열심히 수행하는 국회의원들이 있다. 하지만 언론은 그들의 주목하지 않는다. 드라마 속에서 진상필이 ‘배달수법’을 알리는 기자회견을 연다. 하지만 기자들은 한숨을 내쉰다. 진상필이 이야기하는 것은 탈당도 폭로도 아니기 때문이다. 국회의원으로 ‘일’이다. 기삿거리가 되지 않는다. 정치 혐오로 위장한 기득권 유지가 정작 어디에 머물고 있는지 스스로 돌이켜봐야 한다.    





국민이 보고 있습니다


 <어셈블리>에 빈번하게 등장하는 장면 중 하나는 기자회견 장면이다. 홍찬미의 경우 기자회견마다 “국민이 보고 있습니다”라는 문구를 사용한다. 그녀의 말처럼 국민들은 정치적 활동에 적극 관심을 가지고 있다. 지면, 영상뉴스 등을 카카오톡과 같은 메신저 그리고 소셜 미디어 상에서 다양한 형태로 공유한다.  

 중요한 것은 기사의 질이다. 대중은 일방적으로 쏟아지는 정보를 무분별하게 퍼 나르지 않는다. 관심 있는 사안에 대해 의사를 표현하고 지지하는 대상을 팔로잉하는 형태로 나타난다. 몇몇 기사들은 ‘공유하기’, ‘좋아요’ 등의 방식으로 회자된다. 이러한 방식으로 온라인 공론장을 활성화시킨다.


 결국, 좋은 기사는 어떻게든 독자를 찾아간다. 일반 시민들은 기사를 읽고 참고한다. 정보를 바탕으로 생활공간에서 적극적으로 정치적 활동한다. 주요한 의사 결정에 참여한다. 여러 가지 정책에 대해 자세히 알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된다. 이를 통해 민주주의를 실현한다. 바로 숙의민주주의다. 이러한 환경에서 언론이 해야 할 일은 분명하다. 저널리즘의 기본원칙을 지키는 것이다. 정치도 언론도 국민이 지켜보고 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