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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기관은 왜 혁신에 실패하는가

01-공공기관 혁신의 본질 ㅡ 가치제공(Value Proposition)

조직의 입장에서 보면 공공기관은 지속성장이, 적어도 생존은 보장된 것처럼 보인다. 직원 또한 급여와 복지와 고용의 안정성 측면에서 혜택을 누린다. 흔히 공공기관을 신의 직장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시장과 고객의 관점에서 가치제공은 어떤가? 시대의 변화에 무감각하고 고객의 요구에 외면하는, 말하자면 저급한 가치를 제공하면서 독과점에 의존하면서 생존하는 골칫덩어리 혹은 계륵과 같은 좀비기업인가? 반드시 그렇다고 볼 수는 없다. 그렇다면 왜 공공기관은 "스스로" 혁신을 해야 하는가? 그리고, 왜 매번 실패하는가? 공공기관 혁신의 본질에 대해 가치제공의 관점에서 살펴보자.

사기업은 시장에서 고객으로부터 가치제공이 선택될 때 생존과 지속성장이 보장된다. 말하자면, 항상 상대적 비교를 통해 경쟁우위에 대해 검증을 받는다. 만약 독점으로 인해 공정한 경쟁에 장애가 있으면 정부에서 적극적으로 개입하여 공정거래의 여건을 조성한다. 결국 사기업에서 가치제공의 절대적 수준은 무의미하다. 아무리 우수한 가치제공이라도 상대적 경쟁 열위의 상황이라면 고객에 의해 시장에서 퇴출된다. 이러한 상황에서 혁신은 퇴출을 피하기 위한 몸부림이다. 

공공기관은 사기업과 반대다. 오히려 정부에서 규제를 만들어 독점을 보장해준다. 이유는 시장의 실패를 극복하기 위해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상대적 비교 대상이 없는 공기업의 가치제공은 아무리 저급한 수준이어도 최소한의 가치만 있다면 규제의 도움으로 시장에서 존립할 수 있다. 말하자면, 공기업의 경우 생존을 위한 혁신은 불필요하다. 그렇다면, 공공기관 혁신의 본질은 무엇인가? 많은 사람은 이것에 대해 고민하지 않는다. 그래서 공공기관의 혁신은 시작부터 실패하게 된다.

부언한다면, 공공기관 혁신의 본질을 가치제공의 측면에서 접근한다면 다음과 같은 결론으로 전개될 것이다.

"경쟁 가능한 산업이면 규제를 제거해서 경쟁에 노출시키고, 경쟁이 불가능하거나 혹은 무의미한 산업이라면 대체비용을 구해서 그 기준에 부합하는 가치제공을 요구(결국 "비용"에 대한 통제가 된다)한다." 이러한 혁신 방법은 결과적으로 외부적인 규제나 통제의 영역이지 조직 내부적인 혁신이 아니다. 말하자면, 외형적으로는 사기업과 동일한 혁신을 요구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본질적으로는 혁신이라고 할 수 없다. 무엇보다 이것은 시장 실패를 극복하기 위한 조치로써 공공기관을 설립한 것과 근본적인 모순이 된다.

그렇다면 공공기관에게는 사기업과 동일한 내부적인 혁신(진정한 의미의 혁신)을 요구할 수 없는가?

우리가 공공기관에 대해 혁신이 필요하다고, 말하자면 방만과 적폐가 쌓였다고 말하는 근거는 무엇인가? 공공기관의 임직원이 누리는 혜택에 비해 가치제공의 수준이 낮다는 의미일까? 솔직히 말하면 가치제공의 수준과 무관하다. 단지 과도한 급여와 복지를 향유하고 있다는 그 상황만으로 방만과 적폐라고 말한다. 그렇다면 과도한 급여와 복지란 어떤 기준에서 그렇단 말인가? 일하는 행태에 비해 과도하다는 뜻이다. 결국 방만과 적폐의 의미는 "일하는 행태"에 대한 것이다. 그렇다면 혁신의 방식 또한 내부적 혁신이어야 한다. 다만, 경쟁 속에서 살아남아야 하는 사기업과 다른 공공기관에게 내부적인 혁신을 요구할 수 있는 수단이 무엇인지가 문제다.

결론적으로 공공기관에게 요구되는 혁신이란 일하는 행태에 대한 혁신을 말하며, 결국 내부적인 혁신을 지향해야 한다. 말하자면, 공공기관에게 외부적인 혁신 방법을 적용하는 것은 본질적으로 혁신이라고 할 수 없으며, 공공기관의 설립 목적과도 배치된다.

물론 공공기관에 대한 외부적인 혁신 요구가 무의미한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진정한 의미의 혁신이라고 하기에는 한계가 있기 때문에 내부적인 혁신으로 나아가야 한다. 그것이 공공기관의 방만과 적폐를 바라보는 사회의 요구에 부응하는 길이다. 

공공기관이 최초 설립 목적에 부응하는 역할을 수행하는 경영을 "공공기관 1.0"이라면, 이후 방만과 적폐에 대한 외부적인 혁신 요구에 대응하는 경영을 "공공기관 2.0"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외부적인 혁신을 넘어서서 내부적인 혁신을 지향하는 경영을 한다면 그것은 "공공기관 3.0"이라고 할 수 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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