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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너지와 DT와 연탄재

관료화 조직의 비스니스 혁신 전략에 대한 불편함

1. 시너지

흔히 조직 내부의 여러 사업이나 서비스들을 서로 연계시키거나 묶으면 복합적인 문제를 해결하거나 혹은 높은 수준의 가치제공이 만들어지는 시너시 효과가 생긴다. 또한 연계나 묶음과 같은 방법은 상대적으로 쉽게 추진할 수 있다는 것도 장점이다. 그래서 신사업을 구상하거비즈니스 혁신을 추진할 때 시너지 전략은 약방의 감초처럼 빠지지 않는다. 실제로 시너지 효과 효율을 넘어 창의적인 솔루션을 위한 필수 요소다. 그런데, 많은 경우 시너지 전략은 허무하게 실패로 끝나는데, 그 이유는 시너지의 본질은 고객 니즈를 충족시키기 위한 방편이라는 점을 놓치기 때문이다.

오래전 전산화(IT)가 희소하던 시절에 우리 회사의 비즈니스 모델은 일단 고객이 구체적인 요구를 가져와서 전산화를 요구하면 우리는 밤을 새워 개발하고 박수를 받는 멋진 방식이었다. 그때는 사장부터 실무자까지 모두 고객만 바라봤다. 그런데, IT가 일반화되면서 돈만 주면 누구든지 전산화 요구를 충족시켜줄 수 있는 사회가 되자 고객이 우리 회사를 벗어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제는 고객조차도 자신의 니즈를 구체화시키지 못하는 사회가 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 회사가 IT 회사로써 지속성장에 성공하기 위해서는 고객조차 알지 못하는 고객의 숨겨진 니즈에 맞춘 서비스와 솔루션을 먼저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 말하자면 시너지 이전의 단계에서 사업의 성패가 결정되는 것이다. 어쨌든 고객이 요구를 들고 찾아오지 않기 때문에 우리 스스로 뭔가를 찾아서 해야 하는 상황에서 할 수 있는 선택은 두 가지다. 하나는 고객 니즈에 더욱 깊이 빠져들어서 기어이 알아내는 것이며, 다른 하나는 그냥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을 지시자가 정하면 밤을 새워서 멋지게 만들어 내는 것이다. 그런데, 재밌는 것은 어느 방향을 선택하던 시너지 전략을 만나게 된다는 것이다.

후자의 길에서 만나는 시너지 전략은 사상누각처럼 무너진다. 사상누각이 허망한 것은 만들기 전부터 이미 사상누각임을 모두가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조직은 왜 모두가 아는 사상누각을, 그것도 시너지 전략이라는 멋진 이름으로 만드는가?

고객은 말이 없고, 지시자는 권한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고객은 애써 찾아 나서야 하고, 권한은 절제와 통제가 필요한 것이다.


2.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DT)

적어도 향후 10년은 애자일과 같은 DT가 유행이 될 것이다. 왜냐하면 이것으로 조직의 성패가 결정될 것이기 때문이다. DT에도 불구하고 실패할 수는 있어도 DT 없이 성공할 수는 없다. 그런데, DT는 시너지와 유사하게 실패한다.

고객은 유형이든 무형이든 이용하게 되는 결과물을 보고 선택을 한다. 그래서 결과물에 집중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런데 흔히 결과는 재료와 과정에 의해 결정된다는 순한 사실을 놓친다. 아마도 알고 있지만 드러내면 불편하므로 애써 무시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어쨌든 지시자가 재료와 과정을 무시한 채 DT를 추진하라고, 혹은 DT로써 혁신적이고 멋진 결과물을 만들라고 지시를 하면, 역시 사상누각이 만들어진다.

DT로 만들어지는 사상누각 또한 재료와 과정이 무시되는 순간 모두가 어떤 결과가 될지를 알면서도 지시에 따라 밤을 새워 열심히 멋진 사상누각을 만드는 허망함이 벌어지는 것이다.


3. 연탄재

실패는 왜 반복되는가? 실패 원인에서 학습하지 않기 때문이다. 결과적인 실패는 지시에 맞춰 열심히 했기 때문이다. 분명히 고객 니즈를 찾아야 한다는 것을 알지만 그럼에도 지시자에 맞취 멋진 결과물(사상누각)을 만들어내는 이유는 고객은 말이 없고, 지시자는 권한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누구나 제대로 일하고, 멋진 결과를 만들어, 고맙다는 칭찬을 듣고 싶다. 말하자면, 한 번쯤 뜨거운 사람이 되고 싶다. 그리고 그렇게 하얗게 불태우고 남은 하얀 연탄재는 함부로 발로 차지 않는다.

시너지 전략의 실패나 DT의 실패보다 더 안타까운 것은 미처 다 타지 못한 채 내버려지는 거뭇거뭇한 연탄재를 함부로 발로 차는 것을 보는 것이다.


4. 에필로그

뻘짓 이대근 선생을 거쳐 헛발 이대근 선생으로 불린다. 이 글을 읽게 되면 식은 라떼 이대근 선생으로 불릴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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