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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달희 May 01. 2017

자연은 접촉의 축제

생의 심리학 29_공존을 위한 인류의 선택

    

임신 말기의 임부들은 죽음과 파괴를 주제로 한 꿈을 꾸는 경우가 많다.
이처럼 분만은 산모와 아기의 생명에 잠재적 위협을 주는 사건이다.
실제로 생명이 위태롭거나 몹시 고통스럽지 않더라도, 출산은 죽음에 대한 강한 공포와 결부되기 쉽다.
임사체험자들은 어떤 터널이나 깔때기 모양의
통로를 지나 빛 속으로 들어갔다는 이야기를 자주 하는데,
이는 탄생의 과정과 대단히 비슷한 체험으로 보인다.
―스타니슬라브 그로프, <코스믹 게임(Cosmic game)>중에서     

자궁, 생명의 원천이며 평화의 원형

우리 인간은 엄마의 자궁에서 태어나 인간의 삶을 살다가 인간의 삶이 끝나면 대자연의 자궁, 존재의 근원으로 다시 돌아간다. 그래서 우리는 죽음을 맞은 사람의 임종을 두고 ‘돌아가셨다’라고 표현한다. 이러한 표현의 의미는, 배움으로부터 학습되었거나 종교적 해석을 넘어선 인간의 원초적 체험으로부터의 알아차림이다.


미국의 정신의학자 스타니슬라브 그로프(Stanislav grof)는 확장된 인간의 존재함에 대해서 연구하는 심리학의 새로운 흐름인 트랜스퍼스널(Transpersonal) 심리학의 창시자 중 한 사람이다. 그는 인간의 삶에서 탄생과 성(性), 그리고 죽음은 인간으로서 자아를 초월할 수 있는 중요한 통로라고 말한다. 인간이 생애주기의 어디에 머물고 있는가 하는 존재함의 장(場)과 차원에서 이 세 시점은 출발점과 정점, 종점으로 정말 극적으로 다르다. 하지만 위에 언급한 것처럼 서로 유사한 체험의 맥락과 경로를 갖고 있어서 우리 인간이 본래 왔던 그곳, 대자연 또는 존재의 근원으로서 우주와의 재 합일을 위한 독특한 기회를 체험한다. 그런 의미에서 사람의 생애에서 탄생과 죽음은 서로 맞닿아 있다고 보고 있다.     

 

하나의 생명으로 잉태된 이후 우리 인간은 엄마의 자궁 안에서 부드럽고 따뜻한 양수에 떠있으면서 엄마의 규칙적인 호흡과 심장 박동 소리, 엄마와 하나로 연결된 탯줄을 통해 영양을 나누고, 엄마의 자궁벽이 전해주는 마치 포옹과도 같은 가장 친밀한 접촉을 통해 ‘온전한 보살핌’을 받는다. 태아에게 자궁 안은 우주이며 스스로 체험할 수 있는 온 세상이다. 경쟁자 없이 오롯이 자신에게만 초점 맞춰진 그 체험은 인간이 체험할 수 있는 가장 안전한 보호와 극진한 사랑, 완전한 평화, 그 자체이다. 그래서 인간이 일상에서 삶의 어려움을 겪게 되는 장면마다 찾고자 하는 쉴 곳은 그와 닮은 ‘안온한’ 보금자리이며, 방전된 에너지를 재충전하는 자세는 ‘그 안’에서 했던 ‘그 자세’ 바로 그것이다.

레오나르도 다빈치, 자궁 안의 태아 드로잉

엄마의 자궁 안에서 느꼈던 평화로움은 예정되었던 것이긴 하지만 인간의 생애를 통틀어 가장 큰 외상 경험, 탄생이라는 행위로 인해 깨어지고 만다. 자궁경관이 열리고 태아는 엄마의 좁고 긴 산도를 고통스럽게 빠져나와 세상의 밝은 빛을 보고 첫 호흡을 하며, 마침내 탯줄이 잘림으로써 해부학적으로 독립된 인간 개체로 탄생된다. 이것이 엄마에게는 한 생명을 자기 안에서 잉태하여 세상에 내어놓는 출산 행위다.


한 생명의 이 위대한 생물학적 탄생의 단계마다 당사자인 태아는 강렬한 감정과 신체적인 감각을 체험한다. 스타니 슬라브 그로프는 이런 탄생과정에서 겪어야 하는 여러 가지 체험들이 태아의 무의식에 깊게 새겨지고, 이후 당사자의 인생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고 언급하고 있다. 이런 체험 양상들을 주산기 기본 모형(basic perinatal matrices; BPMs)이라고 부른다. 탄생 과정에서의 체험에 대한 무의식적인 기억은 언어가 형성되기 이전의 체험이라 말로 표현하기 어렵다. 한 개체의 생존과 즉각적으로 연결될 수 있는 그 체험들에 대한 감각적인 느낌과 반응들은 즉각적으로 몸에 깃들어지고, 유소년기의 중요한 감정적 체험들에 의해 점점 더 확고하게 자기 것으로 강화된다. 또한 자기가 누구인가에 대한 자기감과 자기를 둘러싸고 있는 여러 차원의 환경과 연결되어 형성되는 구체적인 세계관을 만들어낸다. 그리고 일상생활에서의 생각과 습관과 태도, 타인과의 관계 형성과 행동에 깊은 영향을 끼쳐서 한 개인의 삶에서 감정적 ․ 정신신체적 장애가 생겨나는 원인으로 작용한다.      


전 생애에 영향을 미치는 탄생 체험

유소년 기와 그 이후의 삶에서 소화되지 못한 신체적, 감정적 고통의 기억들을 충분히 체험하게 해주는 구체적인 치료법들을 통해, 우리는 무의식을 정화할 수 있다. 우리는 그런 기억들을 긍정적인 체험과 연계함으로써, 일상을 불안정하고 불만족스럽게 했던 옛 정신적 충격들의 왜곡된 영향력에서 해방된다. 이와 마찬가지로, 미국의 트랜스퍼스널 심리학자인 크리스토퍼 바흐(Christopher Bache)는 주산기 체험이 인류의 과거 충격들을 치유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는 듯 보인다고 말한다.


깊은 명상, 그리고 그로프 자신이 환각제인 LSD를 대신하기 위해 발견했던 과호흡을 통한 비일상적인 상태의 체험과도 같이 전체로서의 자기를 관찰할 수 있게 되는 상태에서 이런 무의식 속의 기억들을 떠올리고 충분히 체험할 수 있다. 깊은 내적 탐구가 우리를 탄생의 순간으로 데려갈 때, 우리는 감정-신체 감각-상징적 이미지가 조합된 특수한 체험들이 분만의 단계에서 일어난다는 사실을 발견한다.      


엄마의 품과 같이 지극한 보살핌의 체험을 받는 신체적인 접근이 개입되는, 필자의 신체심리치료 장면에서 내담자들은 자궁에서의 배냇짓과 같은 입놀림이나 손과 발의 몸짓이 나타나면서 우주에 둥둥 떠있는 것과 같았다는 체험들을 보고하고 있다. 이러한 체험들은 일상에서의 모든 위협적인 상황과 긴장으로부터 완전히 차단되어 안전함을 느낄 때 나타나는 반응으로 내담자의 상태를 긍정적으로 급진전시켜주게 된다.


한 개인을 삶의 현실에서 안전 기지로서 엄마의 자궁으로 되돌아가 평온함을 재 체험하게 만들어주는 행위는 무엇일까. 그것은 영국의 동물행동학자인 데스몬드 모리스가 언급했듯이 태아가 자궁을 떠난 후 자궁의 포옹을 대신하는 대체물은 어머니의 팔에 의한 포옹이다. 이런 의미에서 우리 인간이 구현할 수 있는 가장 이상적인 포옹 방법은 어머니가 아기의 신체 표면을 가능한 한 많이 자신의 몸에 닿게 해서 숨소리와 심장박동을 느낄 수 있도록 꼭 껴안듯이 감싸주는 것이다. 우리 인간은 그 순간, 잃어버렸다고 생각하던 온전한 보살핌의 접촉을 다시 느끼면서 평화로운 마음에 머물 수 있게 된다.  

   

자연으로 돌아가자

몇 차례 큰 전쟁을 거치면서 우리 인류의 의학기술과 약물 수준은 비약적인 발전을 거듭하고 있고, 임신과 출산과정에서도 많은 변화가 생겼다. 가정에서 우리 조상들로부터 이어져 내려오던 전통적인 방식으로 자연분만을 하는 산모의 모습은 요즘 거의 찾기 어려울 정도로 줄었다. 산모들은 이제 출산을 위해 안락한 자기 집 대신 병원을 찾아간다. 새로운 생명을 맞는 출산과 생애 초기의 아기 돌봄 과정은 우리가 가족과 이웃 공동체들의 환영을 받으며 치렀던 ‘접촉의 축제’가 아니라, 산모와 태아를 빨리 분리시키기 위해 ‘아기를 밖으로 빼내는’ 일종의 의학적인 처치가 되지 않았나 생각된다.


그런 처치를 통해 잘 알고 있는 바와 같이 그동안 신생아들의 생명을 위협하던 병균으로부터 감염과 신체적으로 타고난 문제요인들로부터 벗어날 수 있게 되었다. 덕분에 새로 탄생하는 아기들의 생존율은 부쩍 높아졌다. 하지만 기계적인 도구와 약물의 도움을 받으며 인위적으로 출산하게 되는 병원에서의 분만 현장은 여성들에게는 두려움의 대상이 되어버렸다고 생각된다. 우리나라 산부인과 의사인 한 분은 “병원에서 사용하던 많은 장비를 쓸 수 없는 환경에서 출산에 대해 가장 큰 두려움을 갖는 사람은 산모가 아니라 바로 산부인과 의사라는 사실을 깨달았다.”라고 말한다.


우리나라에서 출산율이 급격하게 낮아지고 있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다. 인위적인 출산의 이점도 분명 있지만 그러한 출산 경험은 아이들이 예전에는 없었거나 드물었던 이상상태, 예를 들면 자폐증, 아토피, 반사회적인 행동, 자살 등의 체험을 하게 한다는 연구결과들이 있다.


아이를 제 몫을 하는 건강한 사회인으로 기능할 수 있도록 성장시키는 일이 너무 힘에 버겁다는 소리가 나오고 있는 요즘이다. 이러한 때에 인공적인 분만을 도입했던 서구사회로부터 자연출산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고, 임신과 출산에서부터 자연으로 돌아가자는 목소리가 다시 나오고 있는 요즘이다.


출산의 주체를 산모와 아기에게 돌려주어야 한다는 정신을 다시 살려낸 이는 현대 자연주의 출산의 스승이라고 불리는 프랑스 산부인과 의사 미셸 오당(Michael Odent)이다. 수중분만법을 시작한 미셸 오당은 그의 책 《세상에서 가장 편안하고 자연스러운 출산》에서 출산에서 의사의 역할을 최소화하고 출산을 다시 산모와 아기에게 돌려주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의 자유주의 분만법의 메시지는 한 마디로 ‘여성이 아기를 낳도록 놓아두고 산모가 원하는 대로,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게 하라’는 것.   

  

“자연스러운 출산은, 아이의 탄생을 넘어 가정의 회복과
인류애의 궁극적인 완성이다.”     


병원 분만의 사회적인 분위기에서 1930년대부터 문제를 제기한 최초의 의사로 자연주의 출산의 아버지라 불리는 그랜틀리 딕 리드(Grantley Dick-Read) 박사의 말이다. 자연분만이란 용어도 그의 저서 ‘자연분만(1933)’에서 나왔다. 우리나라에서도 산모의 힘으로 아이를 낳고 자연스럽게 분리되는 접촉 지향의 자연주의 출산에 대해서 관심이 높아졌다. 분명 새로운 시대를 반영하는 희망적인 모습이 아닐 수 없다.    

 

삶의 매 순간, 모든 장면에서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최선의 길은 무위자연(無爲自然)이다. 즉 인간의 의도가 담긴 인위적인 개입을 줄이고 따뜻한 손길로 서로 접촉하며 보살피고 어울리며 협력하는 것이 우리가 함께 공존해야 할 인류와 이 파란 별 지구를 오래도록 살릴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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