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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달희 Apr 27. 2017

살맛 나는 사회의 핵심―배려

생의 심리학 289_먼저 손길 건네기

            

돌아오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부자가 되는 것도 아니지요. 물론 TV에 나오는 것도 아닙니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습니다.

조금이라도 유명해지는 것도 아니지요.

하지만 감동이 있습니다.

행복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보다 깊이 이해하게 되지요.

사랑받게 됩니다.

돈으로 살 수 없는 것을 받게 됩니다.

세상이 더 아름다워지게 됩니다.

당신의 삶은 어떤가요?

당신이 가장 바라는 것은 무엇인가요? 

   

https://www.youtube.com/watch?v=DcC8trRV3nw     


태국의 이 동영상 한편을 보면서 한 사람이 전해주는 배려의 마음과 행동이 세상을 바꿀 수 있음을 공감한다. 세상을 건강하고 아름답게 바꿀 수 있는 그 미덕, 배려는 진정으로 우리 모두가 함께하고 있는 이 세상이 아름답고 행복하기를 바라는 선한 마음으로부터 우러나오는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선한 마음이 우리 인간의 생활 속에서 실천 행동으로 옮겨질 때, 배려의 가치는 발휘되며 세상을 아름답게 바꿀 수 있도록 이끄는 긍정의 힘이 생긴다. 있는 이가 없는 이에게 베푸는 기부나 봉사활동―송년 즈음에 반짝하는, 그런 행위들을 포함해서―도 배려의 행위이다. 하지만 '배려'의 의도란 있음과 없음 이전, 마음의 본바탕에서 우러난다. 다른 이를 존중하는 마음, 세상에 공존하는 모든 존재들과 함께하며, 서로 나누고자 하는 마음―아픔과 불편함은 나눔으로 덜 수 있다는 마음―으로부터 온다.     

 

나는 타인을 얼마나 존중하며 배려하는 사람인가를 스스로에게 자문해보며 다른 사람에게 짜증을 불러일으키는 행동은 하고 있지 않은가 돌아보아야 한다. 미국 루이빌 대학교의 심리학자 마이클 커닝엄은 서로에게 짜증 나기 쉬운 이유로 이른바 ‘사회적 알레르기원’이라고 부르는 행동을 든다. 그는 감정적 폭발을 일으키는 네 가지 기본 범주의 사회적 알레르기원으로 무례한 습관, 배려 없는 행동, 거슬리는 행동, 규범을 위반하는 행동을 꼽고 있다. 여기에 걸리는 바가 없다면 다중이 이용하는 지하철로 공간이동을 해본다.     

지하철 3호선의 천사

늘 경험하고 있고, 많은 이야깃거리들이 온라인에서 화제가 되고 있듯이 지하철이란 공간은 자신의 목적지에 이르기까지 자기 아닌 타인들과 공존해야 하는 막힌 공간이므로 배려 부재, 곧 짜증 관련 스토리텔링의 양산지다. 하지만 그곳에서도 아름다운 사람들의 배려 행동은 빛나고 있었다.


이른 아침 서울 지하철 3호선 수서역에 열차가 도착하고, 문이 열렸다. 문이 열린 지하철에 줄지어 기다리던 사람들이 우르르 올라탔고 저마다 자기가 앉을자리를 찾았다. 빈자리가 있어서 무심코 앉으려고 보니까 아마도 만취 자였을 어떤 이의 아름답지 못한 흔적이 있었다. 토사물을 누군가 치웠지만 그 흔적이 여기저기 남아있어서 누구의 눈에도 거슬릴 수밖에 없었다. 반사적으로 그 자리를 외면하고 바로 맞은편 한가운데 자리에 앉았다. 다음 정거장에서 또 사람들이 올라탔지만 사람들은 나와 마찬가지로 그 자리를 흘낏 보고는 모두 다른 자리에 가서 앉았다.      


그 자리의 왼쪽 자리에 한 여자가 앉았다. 또 한 정거장이 지났다. 똑같은 풍경이 연출되었다. 사람들이 올라탔지만 사람들은 나와 마찬가지로 그 자리를 흘낏 보고는 모두 다른 자리에 가서 앉았다. 다들 외면하고 지나간 그 자리를 그 여자가 계속 물끄러미 쳐다보더니 가방을 열고 무언가를 꺼내 들었다. 작은 화장품 샘플병을 먼저 꺼냈고, 휴지 봉투를 뒤이어서 꺼냈다. 그리곤 휴지를 꺼내 화장품을 꾹꾹 적시더니 그 옆자리의 흔적들을 향해 손을 뻗어 그 휴지로 꼼꼼히 하나씩 정성껏 닦아내기 시작했다.  

    

바닥의 흔적을 닦아낸 뒤, 등받이의 흔적들도 어김없이 그녀의 손에 의해 깨끗하게 닦여졌다. 그 흔적으로 비어있던 두 자리를 자신이 닦아줌으로써 힘들게 서서 갈 두 사람의 피곤한 몸을 쉬게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그런 그이의 이타심이 느껴졌다. 사진을 찍을까 하다가 멈췄다. 어떠한 보상이나 누군가의 칭찬을 바라는 의도가 전혀 없는 순수한 이타심의 발현이었을 그녀의 선행을 멈추게 하거나 그녀가 불편한 마음을 느끼게 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마음속으로 탄성을 울리며 작은 감동을 느끼며 그저 가만히 바라보았다. 순간 몇 해 전 인터넷에서 자기가 데리고 나온 개의 변도 치우지 않아서 이름 붙여진 '개똥녀', 땅콩 껍질을 지하철 바닥에 태연하게 버린 후 정차할 역에 도착하자 땅콩 껍질과 봉지를 그대로 두고 나 몰라라 지하철을 내려버리는 ‘땅콩남’이 떠올랐다. 저런 착한 행동을 보여준 저 아름다운 여인을 아무래도 '천사'라고 불러주어야 한다는 생각을 했다. 오랜 시간 공들여 닦는 동안 께름칙한 흔적들이 덕지덕지 남아있던 그 자리는 어느새 깨끗해졌다. 그리고 그녀는 휴지를 뭉쳐 자신이 들고 있는 봉투에 담았다.      


나의 손길이 세상을 아름답게 만든다

다음 정거장에 도착했다. 또 사람들이 우르르 올라탔다. 그 사람들 중 두 사람이 그 빈자리를 발견하고 반가운 듯 털썩 앉았다. 맞은편 자리에서 지금까지의 선행 장면을 그대로 지켜보았던 나는 그 천사녀의 얼굴을 다시 꼼꼼히 바라보았다. 한 사람의 진정한 아름다움이란 외형에서 평가될 수 있는 것, 그 이상이라는 것을 그 천사녀를 바라보면서 느꼈다. 30대 초반쯤 되었을까, 수수한 모양새의 그녀 얼굴을 빛나게 했던 맑은 미소가 내 마음을 환하게 만들어주었다.      


나와 눈이라도 마주쳤으면 가벼운 눈인사를 해주었을 것이었지만 그녀는 가만히 눈을 내려 가방을 들고 있는 자신의 손을 바라보고만 있었다. 그리고 두 정거장쯤 지나 교대역에서 살그머니 자리에서 일어나 내렸다. 나는 마음속으로 그녀에게 힘찬 박수를 보내주었고, 꼭 안아주었다. 그날 지하철 3호선에는 ‘천사'가 있었다.      


이 세상을 아름답게 하는 이런 건강 천사들이 많아지길 기원한다. 우리가 염원하는 건강 사회를 위해선 이런 배려와 존중의 사회적 접촉 미담들이 일상의 장면이 되어야 한다. 그러한 배려의 실천은 바로 나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나의 배려 행위로부터 건강 사회를 향한 접촉의 첫걸음이 내디뎌졌다면, 이제 그 실현은 이미 절반은 이루어진 것이다.     


지금 고통받고 있는 누군가에게, 세상의 아름답지 않은 모습에 내가 먼저 손길을 내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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