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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달희 May 05. 2017

접촉의 질감을 느끼며 ‘나’를 쓴다

접촉의 심리치료 43_손글씨를 통한 인간성 회복

손 글씨의 복권

대통령 선거가 이제 코앞으로 다가오면서 선거전이 치열하다. TV토론에서의 말솜씨를 보면서 각 후보들의 인물됨과 성격, 그리고 지도자로서의 준비됨을 가늠해볼 수 있었다. 그에 못지않게 화제가 된 것은 다른 아닌 후보들의 손 글씨 기록들이었다. 한눈에 비교되는 그 형상과 필체를 보면서 아무리 컴퓨터와 스마트폰 자판을 두드려 기록하고 커뮤니케이션하는 디지털 시대라곤 하지만 예전부터 인물을 선택하는 표준인 신언서판(身言書判)―몸(體貌) · 말씨(言辯) · 글씨(筆跡) · 판단의 네 가지를 이르는 말―을 떠올려보면 그 모든 것이 다름이 아니라 하나임을 느끼게 된다. 글씨에서 느껴지는 그 인물에 대한 잠재적인 평가가 공연한 선입관이 아님이 드러날지 아니면 선입관이 무너지게 될지 결과를 두고 볼 일이다.

아무튼 컴퓨터의 출현 이전, 그리 오래되지 않았던 그때에는 무엇인가를 기록하고 표현하고 소통하기 위해서는 손 글씨를 쓸 수밖에 없었다. 그즈음 기록으로 자신의 품위와 위치를 드러내야 하는 사람들에게는 으레 자기에게 잘 길들여진 필기구―주로 만년필―하나씩 가지고 있었다. 잉크를 채워 넣으면 마치 내 배가 불러진 듯 포만감이 느껴지던, 포동포동 살찐 모양의 만년필에 대한 아련한 추억들이 문득 떠오른다.      


키보드 자판을 두드려서 컴퓨터에 글자를 입력시키는 행위가 보편화된 디지털 전성시대인 이 시대에 아날로그로의 회귀와도 같이 손 글씨 쓰기가 다시 살아나고 있다. 하지만 손글씨가 쓰이는 대상이 되는 바탕 매체는 이제 종이뿐만 아니라 좀 더 다양해져서 스마트 폰이나 노트 패드 같은 전자매체에도 빠뜨려지지 않는 필수 애플리케이션이 되었다. 그리고 직접 손으로 쓴 아름답고 개성 있는 ‘캘리그래피(Calligraphy)’라는 글씨체는 감성을 자극하는 드라마 타이틀, 영화 포스터, 광고, 홍보물과 같이 대중과의 접점인 매체들에서도 쉽게 만날 수 있다. 손을 사용하여 글을 쓰는 행위가 이제는 종이만의 독점물이 아닌 것은 분명한 듯하다. 


펜과 붓으로 하나가 된 손이 아무것으로도 채워지지 않았던 종이 또는 다른 매체 위에 올려지면서 서로의 접촉에 화답하듯 상호작용하며 글이 채워지는 장면은 저마다 한 폭의 아름다운 예술작품이다. 잘 짜인 문장으로 생각의 실타래가 잘 풀리듯 술술 이어지면 펜을 잡은 손은 종이 위를 마치 춤을 추듯 율동적으로 움직여 간다. 단숨에 써 내려가며 내달리다가, 느린 걸음으로 걷듯 또박또박 한 자씩 써내려 간다. 위에서 아래로 옆으로, 길고 짧은 직선으로 달리고, 꺾이고, 어루만지듯 은근한 곡선으로 회전하고, 문장부호들로 장식하면서 오직 자기만의 모양새를 갖춘 글씨에 획(劃)을 긋는 행위는 오로지 자신만의 것이다.     


손 글씨의 조용한 부활, 무엇을 의미할까. 

먼저 우리가 누리고 있는 디지털 세계는 창조적 변화를 끊임없이 추구하고자 하는 인간의 요구를 담아주지 못하고 있다는 것, 그리고 인간에게는 인간의 다양한 감성을 감각적으로 표현해 냄으로써 정서적 충족감을 찾으려는 바람이 있다는 것이다. 편리함에 익숙해져 일상화된 컴퓨터 워드에는 손 글씨를 통한 인간의 정서 충족 요구를 대신할 수 없는 근원적인 결핍이 있다. 그런 까닭에 기계적인 활자 입력 행위를 벗어나고 싶다는 요구는 문명 저항운동이며 인간성 회복운동이 아닐까 생각한다.      

Eugene Lee. Calligraphy 손글씨


인간 정신은 디지털에 종속되지 않는다

세계적인 IT업체가 몰려있다는 미국 실리콘밸리 지역 학교에서는 디지털 전자기기의 사용을 최소화하고 있다고 한다. ‘전자매체는 단기간에 배울 수 있기 때문에 굳이 어려서부터 접할 필요가 없다. 아이들이 지금 배워야 할 것은 아날로그적인 일기와 쓰기이다’라고 그 지역 교육자들은 말한다. 그리고 2014년 미국 플로리다 국제 대학 연구진이 유치원 어린이 천 명을 4년간 추적관찰 결과 손으로 글씨를 쓴 학생들이 읽는 법을 배우는 속도가 더 빨랐으며 정보를 더 오래 유지한 것으로 나타났다고 발표했다. 이런 연구결과를 바탕으로 두뇌 발달과 학습효과를 높이기 위해 손 글씨 쓰기의 필요성이 부각되면서 미국 8개 주는 손 글씨 교육을 초등학교 교과 과정에 반드시 포함시키도록 의무화했고 이런 추세는 더 확산되고 있다고 한다.      


손으로 글쓰기는 사람의 생각이란 정신작용과 손의 율동이라는 몸의 작용이 하나로 어우러진, 인간만이 할 수 있는 대표적인 문화행동이다. 손으로 글을 쓰면서 매체 위에서 점을 찍고 획을 그을 때마다 생각과 손의 율동은 하나의 접점에서 서로 접촉하며 하나로 이어진다. 이를 통해서 손으로 쓰인 글에는 생명의 숨결이 불어넣어져 인간다움이란 정체성이 부여된다. 그래서 손으로 쓴 글씨에는 글을 쓰는 사람의 마음 상태가 온전하게 담긴다. <오감 재생>이란 책을 낸 일본인 야마시타 유미(山下裕美)는 ‘쓰는 이의 감각을 담아 쓴 필법이, 읽는 이의 신체 감각을 자극하는 기호로서의 문자’인 손 글씨에서 ‘질감’을 이야기한다.      


손 글씨는 손과 두뇌와 마음이 함께 움직여 기억력과 창의력을 높여준다. 종이 위에 손 글씨를 쓰는 소리와 바르게 글을 쓰려고 정성을 들이는 손의 감각은 마음을 평온하게 해준다. 그리고 글쓰기와 관련된 전체 장면을 연상시켜주는 맥락을 제공해주면서 기억을 자극하고, 글을 쓰면서 문장을 곱씹을 때 마음속 감성을 불러일으키며, 대뇌활동을 활발하게 해준다. 몸을 직접 움직이면서 체험하는 감각적인 행위를 통해 인성을 계발한다. 단어와 문장, 글 전체 속에서 만나게 되는 통찰을 통해 나와 내 주변을 변화시킬 수 있는 지식을 쌓는다. 따라서 손 글씨 쓰기는 아이들에게는 학습능력을 향상시켜주는 도구이며, 결코 잊어서는 안 될 중요한 지적 훈련이다.   

  

다른 맥락의 이야기이지만 얼마 전 한 일간지에 ‘손 글씨를 통해 절망에 빠진 중환자에게 삶에 대한 희망을 주었다’란 기사가 실려 눈길이 갔고 읽으면서 흐뭇한 마음이 들었다.      


A 씨(76)는 지난 1월 폐렴으로 가톨릭 관동대 국제 성모병원에 입원했다. 심장의 관상동맥도 90% 이상 막혀 있다는 진단을 받았다. A 씨는 관상동맥 우회로 이식술을 받은 뒤 중환자실로 옮겨졌다. 난청인 A 씨를 위해 의료진은 메모지를 통해 필담으로 의사소통을 시작했다. 우울감에 빠져든 환자를 위해 박하나 간호사는 메모지에 '울지 마세요' '용기를 내세요'와 같은 희망의 메시지를 적어 보여주기 시작했다. 이후 일반 병실로 옮긴 뒤에도 A 씨를 위해 의료진은 화이트보드를 준비해 적극적으로 의사소통을 했고, A 씨는 상태가 호전돼 퇴원했다. A 씨는 "'용기 내세요' '살 수 있어요' 한마디 한마디가 감명 깊었다"며 "이에 용기를 얻고 억지로 밥을 삼키며 살기 위해 발버둥 쳤다"라고 퇴원하기 전 편지를 통해 감사의 마음을 전했다. 
―매일경제신문, 4월 28일 자     


마음속에, 쓰는 이의 지금-여기에서의 상태를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손 글씨로 쓰인 쪽지나 편지를 받아보았던 기억을 간직하고 계신 분들은 아마도 공감할 수 있을 것이다. 요즘 느낌과 문법을 무시하고 이모티콘으로 화려하게 장식된 문자 메시지보다 손 글씨로 정성껏 써 내려간 편지 한 장이 사람의 마음을 얼마나 감동시켜 움직이는지 말이다. 


문서작업을 할 때 컴퓨터로 타이핑을 하는 것이 보편화된 요즘, ‘손 글씨’는 쓰기의 주체인 개인을 상징적으로 대변하고, 손 글씨로 쓴 문서 말미의 개인 서명은 본인임에 대한 신원확인과 문서에 대한 신뢰라는 ‘중요함’의 의미부여를 하고 있다. 손 글씨의 조용한 부활을 바라보면서 인간 정신은 결코 디지털에 종속되지 않을 것이란 확신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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