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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달희 May 05. 2017

마음, 텅 비어있습니까?

접촉의 심리치료 44_빈 가슴을 사랑으로 채워라

주관적인 공허감

세상이 녹색으로 가득 채워지고 있는 신록의 계절이 왔음에도 불구하고 마음에는 찬바람이 텅 빈 마음을 헤집고 다닌다는 사람들을 만나곤 한다. 이들은 얼굴에서 표정을 잃고 있으며 몸은 움츠러들어 있다.   

   

“공허함을 느껴요. 허전함이라고 할까. 가슴이 텅 빈 것 같은. 외로운 건 아닌 데 말이에요. 외로움과는 분명히 달라요.”     


삶에서 희망을 찾지 못해 무기력하고 자기 내면의 어떠한 정서와 만남을 거부하고 있는 내담자는 이런 말을 한다. 이런 말을 조심스럽게 하는 그이에게선 ‘누군가 옆에 있어도 나는 외롭다’는 어떤 시의 한 구절에서와 같은 황량함이 느껴진다. 공허감(空虛感)이란 말의 뜻은 ‘텅 빈 듯 허전한 느낌’이다. 이것은 마음이 머물고 있는 가슴이 실제로 비어 있는 게 아니라 단지 채워지지 않은 것 같은 느낌이다. 무엇인가로 채워져 있어야 할 마음이 채워져 있지 않다는 것이다. 이것은 객관적으로 계측할 수 없는 상태이므로 주관적인 경험이고 심리 내적인 체험이다.     

이러한 느낌은 가까이 지냈던 '분명한 어떤 대상'의 상실 경험 이후나 죽음을 앞둔 이가 생을 돌아보면서 직면하게 되는 감성적 우울과 허망함과는 다르다. 가슴이 텅 빈 것만 같은 이런 공허감은 남들은 알 수 없는 지극히 개인의 주관적인 체험 영역에 속하니까 다른 사람들은 알 수 없다. 마치 진공상태와 같이 허허로움을 느끼게 되는 이러한 공허감은 혼자 있음의 여유로운 마음에서 느끼는 한가로움 또는 명상수행에서 궁극에 만나게 되는 공(空)의 상태와 내용으로 보면 비슷한 듯하다. 하지만 질적인 면에서는 서로 다른 양쪽 극단에 속해있는 전혀 다른 마음의 상태이다.      


상담과 심리치료 장면에서 신경증과 정신증의 경계에 있으면서 현실 적응에 어려움을 겪는 ‘경계선 성격 장애’라는 특정 영역으로 묶이는 내담자들에게서 드러나는 공통된 호소가 바로 이 ‘주관적인 공허감’이다. 자신의 삶에서 고통스럽고 혼란스러운 체험들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내담자는 일관되게 말하고 있는 이 공허감의 배경에는 무엇이 있기에 그럴까.      


미국의 정신과 의사 해밀턴(Gregory Hamilton)은 정신분석의 맥락을 잇고 있는 대상관계 이론을 바탕으로 주관적인 공허감을 만성적으로 느끼는 상태는 ‘좋은 자기’와 ‘좋은 대상’을 떠올릴 수 없는 경향성과 관련 있다며 이렇게 말한다.     

 

대부분의 사람은 혼자 있거나 혹은 혼자서 어떤 것을 성취하기를 즐길 수 있고, 버려졌다고 느끼지 않는다. 그리고 마치 자기 안에 자신을 돌보아 주는 대상을 갖고 있는 것처럼 자신 안에서 경험한다. 하지만 경계선 장애를 가진 사람들은 혼자라고 느껴질 때 그들과 함께하면서 그들의 고립감을 어루만져줄 내적 대상이 없다. 혼자 있으면 그들은 누군가 자신을 위해 함께한 적이 있다는 사실을 전혀 기억하지 못한다. 혼자 있는 것을 견디지 못하는 경향을 유발하는 요인은 이런 대상이 되는 사람의 이미지가 안정적이며 영구적으로 정신 안에 자리 잡게 되는 ‘대상 항상성’이 없다는 것이다. 좋은 대상의 역할은 자신이 가치 있는 존재임을 상기시켜주는 것이다     


공허함을 느낀다는 것은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자기 안의 내적인 자원이 고갈되었다’고 느끼는 것이다. 따라서 자기 밖에서 함께 살아갈 수 있도록 서로 돕는, 좋은 공생적 어머니(또는 동반자)를 찾으려는 욕구를 늘 갖고 있다. 그들은 자기 밖에서 자기에게 따뜻한 사랑과 관심을 공급해줄 대상을 찾는다. 이런 문제의 1차적인 원인은 생애 초기의 어린 시절, 모성적 사랑과 관심, 위로의 결핍, 그리고 부모가 일관된 방식으로 자신을 인정해주고 조절해주지 못했던 보살핌의 결여와 관련되어 있다.  

    

<미움받을 용기>라는 자신의 책이 최근 뒤늦게 베스트셀러가 되면서 관심을 모았던 개인심리학의 창시자 알프레드 아들러(Alfred Adler)는 ‘부모가 적절히 공감하고 위안을 주고 인정해줄 수 없으면 유아는 이러한 기능을 내면화할 기회를 갖지 못한다. 그 결과 이들은 자신에게 귀를 기울이고, 자신을 위로해 주고, 자신의 복잡한 긍정적 감정과 부정적 감정을 조절하는 것을 배우지 못한다’고 언급한 것을 보면 그러한 배경에 대해서 이해할 수 있다.     

텅 빈 마음, 텅 빈 충만

그 내담자의 말을 들으며 언제나 한결같지 않은 것이 사람의 마음이 아닌가 생각했다. 그래서 불교에서는 세 가지 속성―‘무상(無常)ㆍ고(苦)ㆍ무아(無我)’―을 통해 존재에 대한 이해를 돕고 있다. 조건적으로 발생하고 조건적으로 소멸하기 때문에, 내 마음대로 되지 않아서, ‘나’라고 할 만한 실체가 없다는 것이다.    

  

인생무상(人生無常)이란 말은 필자를 포함해서 고통과 역경의 시간들이었지만 희열도 함께 했던 경험들을, 삶의 지난날들을 통해 쌓아온 이들에게는 바로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이고 그 안에서 보람과 의미도 떠올리게 한다. 하지만 지금 여기에서 존재함 자체에 혼란을 경험하고 있는 사람에게는 잘 전달되지 않는다는 것이 문제이다.      

생각과 행동의 유연함을 가지고 있는 건강한 사람이 느끼는 텅 빈 마음의 체험은 어떠한 것인가. 자신의 삶에 있어서 생의 과제이기도 한 무엇인가를 수행해내기 위해 긴장하며 몰입하여 성취한 다음에도 한 순간, 이전에는 맛보지 못했던 느슨함 속에서 더 이상 달려갈 곳을 느끼지 못하고 있을 때 텅 빈 것 같은 마음을 우리는 잠시 체험하기도 한다. 그리고 명상 수행 중에서 나를 둘러싸고 있던 ‘나’의 경계가 엷어지면서 나와 너 그리고 우리가 하나가 되는, 자아 확장 체험에서도 텅 빈 ‘공(空)’의 상태를 체험하기도 한다.     

 

따라서 그러한 텅 빈 ‘공(空)’의 공간 안에는 아무것도 없는 황량함이 아니라 존재하는 모든 것들과의 연결을 통해 모든 관계들로 채워져 있는 ‘텅 빈 충만’이라는 역설적인 장(場)이 펼쳐진다. 집착의 마음이 없으니 소유와 상실, 미움과 아픔도 없고, 오로지 사랑과 생의 에너지로 가득한다. 지금-여기, 생의 현실 속에서 마음의 텅 빔, 공허감을 호소하는 이의 손을 잡고 함께 가야 할 치유의 목표는 바로 이곳, ‘텅 빈 충만’으로의 변화이다.     


내 안의 채워지지 않은 빈 공간

영국의 소아과 의사이면서 정신분석가였던 도널드 위니캇(Donald Winnicott)은 아이는 엄마와의 피부 접촉을 통해서 자기가 아닌 외부가 있다는 것을 비로소 느낀다고 했다. 아이가 자기 밖에서 최초로 경험한 관계는 당연히 낯설지만 충분히 좋은 엄마(good enough mother)는 아이의 요구에 적절한 접촉을 해주고 잘 조율해주면서 낯선 환경에 잘 적응할 수 있게 해준다. 그렇지 못할 경우, 아이에게 새로 체험하는 바깥세상은 계속 낯설기만 하고, 적응할 수 없는 두려운 세계로 머물게 된다.  

    

사랑을 담은 엄마의 손길과 안아주는 엄마의 따뜻한 가슴과 충분히 접촉하면서 ‘세상은 안전하다’는 것을 체험하지 못한 아이는 어른이 되어서도 버림받지 않을까 두려워 관계를 맺지 못하고, 정신적인 ‘허기감(虛飢感)’ 때문에 늘 가슴이 텅 빈 것만 같다. 접촉으로 확인되지 않았고, 접촉의 결핍으로 채워지지 않았던 사랑의 욕구는 늘 무엇인가 부족하다고 느끼게 만든다.  

    

가슴속의 이 빈 공간을 채울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생애 초기에 애착 대상과의 관계에서 잘 풀리지 않았던 문제의 매듭을 풀 수 있는 실마리는 주양육자였던 어머니가 쥐고 있다. 관계에서 상처받은 사람의 치유는 사람과 사람의 관계와 접촉을 통해 이루어진다. 말로 상처받았으면 말로 치료될 수 있고, 잘못된 접촉 체험으로 상처받았으면 바른 접촉을 다시 체험함으로써 체험은 긍정적인 인지체계 안에서 재구성될 수 있다.     


우리 아이가 생애 초기에 어머니로부터 안정된 애착을 체험 못했다고 평생 그 상처를 끌어안고 고통받으며 살게 해서는 안 된다. 그것은 부모로서 마땅히 해야 할 의무이며 책임이다. 너무 늦지 않은 때에 채워지지 않은 빈 가슴을 채워줄 수 있기를 바란다.     


그러저러한 사정이 있어서 그때는 어쩔 수 없이 우리 아이에게 부모의 사랑이 부족했을 것이라고 생각된다면 오늘부터 해보라. 사랑의 접촉은 손잡기와 안아주기로부터 시작한다. 따뜻한 사랑을 전하는 손길의 접촉을 내가 부모로부터 받지 못했으니 자식들에게 줄줄 모른다면 이제라도 접촉을 통한 심리치료의 전문가를 찾아야 한다.     

당신은 지금, 마음이 텅 비어 있습니까, 아니면 무엇으로 충만합니까?


https://somaticpsychotherapy.modoo.a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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