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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달희 Oct 15. 2017

나를 살리는 용서_ 종기로부터 '살림'을 생각한다

접촉의 심리치료 52_온전함에 다가가는 따뜻한 사랑


우리 몸에 종기가 생겼는데 어떻게 하면 좋을까.

모낭이 세균에 감염이 되어 노란 고름이 잡히면 모낭염이라고 하는데, 모낭염이 심해지고 커져서 결절이 생긴 것을 종기라고 한다. 당뇨나 비만과 같은 몸의 병증이나 상태인 경우, 그리고 불결한 위생 상태, 만성 포도알균 보균자, 면역 결핍 질환자에서 더 잘 생긴다. 큰 종기의 경우에는 발열이나 오한, 몸살과 같은 전신 증상이 동반될 수도 있다.

 

종기를 처치하려면 우선 종기 부위를 열어 그 종기낭 안의 고름 덩어리를 빼내야만 한다. 하지만 종기가 완전히 곪아서 물렁물렁해지기 전에 고름을 짜내려 하면 염증이 악화될 수 있고, 항생제를 너무 일찍 복용하면 화농이 지연되어 치료 기간이 길어질 수 있으므로 주의한다. 그렇게 하고 그 부위에 감염이 되어 덧나지 않게 소독을 해주고 나면 곧 통증은 사라지고 새로운 조직이 생겨난다. 혹시 흔적이 남더라도 더 이상 고통은 없다. 그리고 종기로 겪은 고통의 체험은 다시 종기가 솟지 않도록 자신의 생활방식을 돌아보고 대비를 하게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우리 마음에 파도처럼 끊임없이 일렁이는 감정도 마찬가지이다.

풀리지 않아 응어리진 채 우리 몸과 마음에서 웅크리고 있는 감정 덩어리는 마치 종기와 마찬가지로 점점 더 깊은 마음 속으로 곪아 들어가게 된다. 그 감정의 울타리는 더 두터워져서 쉽게 타협하지 않고 집착은 커져만 가고 다른 부정적인 감정들을 일어나게 하고 몸의 건강한 순환에 장애요인이 된다. 이런 감정을 적절한 때에 안전한 방법으로 쏟아내지 않으면 억압된 감정은 우리 몸과 마음의 에너지를 고갈시키고 고통의 원인이 된다. 내 마음에는 해결되지 않은 채 남아있는 감정 덩어리가 무엇이 있는가.

 

내 마음에서 일어난 감정들중에 종기처럼 깊어가며 우리 몸과 마음에 고통을 주는 것은 어떤 것이 있는가.

분노와 원망이 그것이다. 그 감정을 일으킨 대상이 명확하든 명확하지 않든 분노와 원망의 감정을 소멸시켜줄 수 있는 유일한 도구는 용서다. 하지만 용서한다는 선언, 그 자체 만으로는 아무런 변화를 일으키지 못한다. 나의 내면으로부터 이제는 진정으로 용서가 필요하다는 외침이 나올만큼 고통스러운 경험을 철저히 느껴야한다. 그 절절한 아픔이 내 안에서 농익어야 한다. 용서는 우리에게 아무 일도 없었다라며 덮어두고 넘어가라는 뜻이 아니기 때문이다. 용서의 진정한 의미는 분노와 원망을 내가 겪어야 했던 고통과 그 아픔의 시간들을 인정하지만 나의 삶에 해로운 영향을 끼치는 파괴적인 경험을 더 이상 인정하지 않겠다는 뜻이다. 용서만이 나를 살린다. 따라서 궁극적으로 용서는 자신을 위해 선택한 행위가 되어야 한다.

 

이처럼 우리 내면에 고집스럽게 자리 잡고 있는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과 결과를 치유라고 한다면 진정한 치유는 몸의 상처부위만을 치료하거나 겉으로만 다독거려주는데 그쳐선 안된다. 우리 내면의 근원으로부터 들려오는 소리에 귀 기울이게 하여 나 자신을 생의 에너지장으로 스스로 보듬고, 집착이 아니라 버림으로써 죽임이 아니라 살림의 장으로 나아가게 해주어야 한다.


 그러한 의식 전환을 통해 삶의 다른 차원으로 옮겨가는 변화의 순간에는 같은 채널에서 맞닿는 접점이 필요하다. 그 접점의 한쪽에는 분명 지금-여기에 있는 내가 있다. 그 맞은편에는 그때 거기에서의 내가 있다. 나의 내면에서 나의 취약함을 바라보고, 듣고 싶지 않은 내 내면의 소리와 직면해야 한다. 그런 접촉의 기회를 갖는 데에는, 그래서 변화를 스스로 선택하는 데에는 참된 용기와 그 아픔을 견디다 주저앉거나 쓰러져도 안전하게 보듬어주고 잡아줄 진정한 삶의 동반자인 가슴 따뜻한 치유자의 존재가 필요하다. 따뜻한 사랑의 접촉을 통해 온전함에 다가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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