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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달희 Dec 07. 2016

고정관념, 편견, 그리고 차별

생의 심리학 09_모든 스테레오타입은 오류다

그래, 당신은 그런 유형이니까

우리의 인간관계를 살펴보면, 특정한 집단, 아니면 특정한 개인에 대해서 잘 모르면서도 아주 사소한 신상정보나 첫인상, 또는 작은 접촉 사건의 정보를 기초로 내 나름의 잣대를 들이대어서 이미 어떤 유형이라고 규정지어 범주화하여 분류해두었음을 알 수 있다.    


나를 먼저 돌아보면, 내 스스로 남들에게 별로 편안한 인물인 것같지는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게 불편함을 주는 인물이 내게 다가오는 것을 몹시 경계하고 그런 인물들이 내 뜰 안에 들어오지 못하도록 스스로 방어벽을 쌓아둔다. 사진가 K가 그런 인물중 한 사람이었다. 같은 회사에서 함께 일을 하면서 그와 일을 할 때면 왠지 마음 속에 가시가 솟는 것만 같았다. 그 뒤로 계속 기피인물중에 한 명이었던 이가 그 K였다. 굳이 그렇지 않아도 될 법도 한데 몇 가지 장면들이 내 자존심을 건드렸기 때문이다. 돌아보면 전부 내 핸디캡, 열등감-지금 생각하면 조금 늦은 나이에 사회생활을 시작했다는 것 말고는 문제될 것이 아무 것도 없는데- 으로부터 비롯된 나의 문제들이었지 그 이의 문제는 아니었다. 그 뒤 그 회사를 그만두고 정말 우연히 같은 아파트에 살게 되면서 우리는 서로의 내면, 즉 진면목을 보게 되었다. 그리곤 내 삶의 인간관계 목록에서 가장 상위 오래된 친구 영역에 그 이가 자리잡게 되었다.


내가 그 이의 참된 모습을 그대로 바라 보지 못하고 있으면서도 내 스스로 헛된 모습의 '고정관념'을 갖게 되었던 것이다. 한 인간에 대해 스스로 설정한 고정관념의 틀을 깨고 새로운 프레임의 인지체계를 수용하는 데에는 정말 오랜 시간이 걸렸다.


선택적으로 지각하는 도식적 정보처리

이처럼 고정관념의 인지체계를 대인인지의 과정에서 누구나 갖고 있기 마련이다. 그것은 우리 인간의 인지능력에는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의 주의를 끄는 특정한 자극 정보들만을 선택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이를 선택적 지각능력이라고 한다. 또한 다른 사람에 대한 정보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도 않는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기존의 지식체계 또는 신념에 근거해서 그 대상을 받아들이게 되므로 어떤 정보는 왜곡하고, 빠진 것은 나름대로 채워넣기도 한다. 이렇게 대인지각 과정에서 다른 사람에 대한 정보를 처리하는 데 영향을 미치는 구조화된 기존의 지식체계를 '도식(圖式, schema)'이라고 한다. 이러한 도식은 다른 사람에 대한 잡다한 정보를 신속하고도 경제적으로 처리하도록 도와주기 때문에 중요하다. 주어진 정보를 세밀하게 고려하지 못하고, 잘못된 해석이나 부정확한 기대 또는 고정된 양식의 반응을 하도록 유도할 수도 있다는 것이 우리 인간의 도식적 정보처리의 단점이다.


사람도식(person schema)에서 특정집단의 사람에 대해 가지고 있는 도식을 심리학에서는 '고정관념(stereotype)'이라고 한다. 이를 다른 말로는 한정된 문화 공간에서 그 공간을 이루고 있는 많은 구성원들이 공유하고 있는 유형화된 사회적 관념 또는 형상을 의미하며, 흔히 매우 단순화되고 일반화된 기호로서 특정 집단이나 사람들을 사회적으로 구분짓는 것을 말한다. 또한 '전형성'이란 의미로 기성영화에 자주 출현하는 동안 관객에게 익숙해진 등장인물의 유형. 거만하고 완고한 행정관리, 카리스마적인 독재자, 현실에 어둡고 깡마른 학자, 아름답고 유순한 여주인공 등 고정되고 상투적인 형태로 나타난다.


모든 스테레오타입은 오류다

stereotype의 어원을 살펴보면, 그리스어에서 온 어근 tereo는 ‘olid (굳은)’의 의미를 지니고 있다. 이 용어는 미국의 저널리스트 월터 리프먼(Walter Lippmann)이 그의 대표적인 저서 《여론》(Public Opinion, 1922)에서 사용하였다. 그는 판에 박힌 듯 찍어낸다는 의미에서 인쇄용어인 '스테레오타입'을 빌어 왔다. 인쇄에서 스테레오타입이란 같은 텍스트를 반복해서 찍어낼 때 사용되는 금속 조판을 의미한다. 


이처럼 인쇄용어였던 이 말은 이제는 사회심리학에서 발전되어 인지 가정, 태도와 편견 연구에서 중심적 위치를 차지하게 됐다. 


위의 책에서 리프먼은 스테레오 타입을 “대개의 경우, 우리는 먼저 보고 나서 정의를 내리는 것이 아니라 먼저 정의를 내리고 나서 본다. 외계(外界)의 어떤 방도도 없고 떠들썩한 혼란 속에서 우리는 문화가 이미 정의를 내린 것을 선택하고 문화가 유형화한 그대로 그 선택된 것을 지각하게 된다”라고 정의하고 있다.


리프먼이 말한 대로 심리학자들은 모든 스테레오타입이 사고의 오류라고 가정했다. 20세기 중반 미국의 사회심리학자 고든 올포트도 "과장된 신념은 범주와 관련된다"고 선언했다. 따라서 편견은 그러한 오류의 결과로서 표현되는 사고와 감정으로, 차별은 편견을 가짐으로써 개인적, 정치적으로 취하게 되는 행동으로 각각 정의될 수 있었다.


올포트는 완전히 허위에 불과한 스테레오타입도 있고 '일면적 진실'을 기반으로 하는 스테레오타입도 있지만, 어쨌든 모든 스테레오타입은 오류라고 말했다. 이러한 해석은 미국의 세속 신학의 일부로 자리잡았다. 이제 많은 사람들은 스테레오타입이 이중으로 잘못된 것, 즉 '진실'의 반대말이자 '정의'의 반대말로 믿는다. 1990년대 후반까지 일부 사회심리학자들은 스테레오타입이 가능한 한 생각을 덜 하려는 인간의 타고난 욕구의 결과라는 가정을 고수했다. 어떤 학자는 "스테레오타입은 게으름뱅이의 가장 친한 친구"라고 말하기도 했다.  


인류 역사발전의 여러 갈래 맥락들의 모든 흐름 위에서 내려졌던 수많은 잘못된 판단과 선택, 그 독선의 오류들을 들춰본다. 그때마다 인간의 이 간편주의 사고과정의 한 단편인 고정관념이 진리와 정의의 가면을 쓰고 차별과 편견의 형태로 얼마나 잔혹하게 많이 개입되었을까, 얼마나 많은 무고한 희생자들을 양산해왔던가 생각해본다. 아니 지금 이 시점에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 모두의 일상적인 인간관계의 정보처리에 적용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면 정말 소름 끼칠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런 희생을 딛고 우리 인류의 진보가 있어왔다는 것을 깨달으며 우리 인류가 평화롭고, 행복하기 위해선 나부터 먼저 차별과 편견, 선입견의 고정관념으로부터의 자유로워져야 한다는 생각이다. 외형적인 것에 가치체계의 우선순위를 부여하고, 판단의 기준점으로 삼고 있는 요즘 세태가 우려스럽기만 하다.  


"보이는 것만이 진실은 아니다."   

miserere mei Deus. 주여 저희를 가엾이 여기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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