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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달희 Dec 12. 2016

사랑은 따뜻함이다

접촉의 심리치료 10_체화된 기억

체감 온도와 정서 기억

엄마 생각이 났어요. 내가 아주 어렸을 때 시골집에서 저는 따뜻한 방 안에서 누워 있고 엄마는 부엌 아궁이에서 밥을 하면서 잔가지를 꺾어서 군불을 때었던 그 느낌이 생각났어요. 엄마의 보호 안에서 안전한 평화로움……그것이 세션이 끝나면서 그 이미지와 연결되어서 떠올랐어요. 오뉴월에 나뭇가지를 잘라놓으면 가을쯤 되어서 때면 이파리가 불쏘시개 역할을 하면서 금방 타오르거든요.……슬픔이 안 올라온 게 신기했어요. 엄마만 생각하면 슬픔이 막 올라왔거든요. 오늘은 슬픔이 아니라 좋은 추억으로 지나갔네요. 이전 같으면 그런 생각하면 엄마와 함께 슬픔이 올라왔는데……오늘 좋은 느낌이었네요.     


우울을 호소하던 중년 여성 내담자의 신체심리치료 세션을 마치고 난 뒤 자신의 체험을 이렇게 이야기했다. 언어적인 상담과 함께 깊은 이완과 무의식의 의식화를 위한 알아차림의 도구로 사용하는 신체심리치료의 프로그램에서 따뜻한 사랑 나눔의 손길을 체험하고 나면 대부분의 내담자에게서 나타나는 특징적인 변화가 바로 이처럼 ‘부정적 기억이 긍정적인 기억의 회상으로 대치’된다는 점이다.     


심리학자인 그렌버그(Glenberg)는 몸에 깃들어 ‘체화된 기억(embodied memory)’이란 개념을 제안했다. 체화된 기억 속에는 그 기억과 연결된 대상과의 관계가 녹아있다는 것이다. 따스함과 포근함, 두려움과 분노 등 감성과 관련된 것은 ‘정서 기억’이다. 이런 원초적인 감정과 관련된 정서 기억은 뇌의 한 중앙 깊숙한 곳, 뇌질환으로 잘 타격받지 않는 ‘편도체’에 보관되어서 사람의 전 생애 동안 유지된다. 정서 기억은 이 내담자의 사례처럼 ‘따뜻함’, ‘보살핌을 받는 손길’이란 이러한 특정한 감각 체험이 그 기억의 체험과 유사할 때 그러한 감각과 연합된 정서 기억과 연결되는 개인적인 일화를 다시 의식으로 떠올려준다.     


온도 변화는 사람들의 심리에 영향을 미친다. 최근 캐나다 토론토대학의 심리학과 첸-보 종(Zhong) 교수의 연구결과 정서 기억은 온도와 관련 있음을 보여주었다. 쾌적하고 따뜻한 날씨는 정서적인 안정감을 느끼게 하고, 기분을 더욱 좋게 하지만 뜨거운 온도는 사람을 공격적으로 만들고, 추위는 사회적으로 배척받고 있음과 같은 고립감, 외로움과 연관된다. 인간의 온기를 거부당한 사람들은 정말로 체온이 떨어진다. 


이불속에 남아있던 어머니의 따스한 훈기

어린 시절 어느 겨울날 내 체험과 정서 기억의 이야기다.     

군인이셨던 아버님께서 주둔지에 계실 때면, 안방 어머니 옆 이부자리는 어린 형제들의 차지였다. 그 이불 위에서 형제들은 비비적거리며 뒹굴었다. 잠들기 전, 마치 의식과도 같이 어머니의 따스한 젖가슴을 서로 만지며 놀다 보면 이내 엄마의 하얗고 몽실몽실한 젖처럼 온몸이 말랑말랑해져서 깊은 잠에 빠지곤 했다. 하지만 아버님께서 집에 오셔서 계시는 동안은 아들은 아들끼리 딸은 딸들끼리 각각의 방으로 흩어져야 했다.     


그 무렵의 집들이 대부분 그랬지만, 그 집은 마루가 있고 외풍이 무척 셌다. 그리고 잠을 자기 위해서 이부자리를 펴면 잘 빨아서 풀을 먹여 다듬잇돌로 뻣뻣하게 다듬어진 하얀 옥양목 이불보의 냉기가 늘 섬뜩할 정도로 차가워서 이불속에 들어간 뒤 한참 동안은 불에 오그라든 오징어처럼, 어머니의 자궁 속의 태아처럼 웅크리고 있어야 했다. 몸의 체온으로 이불속이 어느 정도 덥혀진 뒤라야 발과 팔이 펴지곤 했다.     


그런데 어느 날인가, 어머니께서 이부자리를 펴놓으신 다음 그 이불속에 한참을 누워계시다 저를 위해 자리를 내어주셨다. 어머니께서 사랑하는 아들이 어머니 곁을 떠나 이불속에서 맞는 그 세상의 차가움을 어머니께선 온몸으로 막아주신 것이다. 어머니의 따스한 훈기가, 어머니의 향기로운 화장품 냄새가 배어있는 그 이불속에 쏙 들어가면서 그날만큼은 오징어처럼 웅크려 있지도 않고 금방 행복한 단꿈을 꾸며 잠들었던 그 겨울날이 오늘 갑자기 생각이 난다.     


오, 어머니. 


"삶에 있어서 최상의 행복은 우리가 사랑받고 있다는 확신이다."

―빅토르 위고, «레미제라블» 중에서




How Where When - Pachelbel's Canon ( Cleo Laine & James Galway )

https://www.youtube.com/watch?v=bKrqadPA-Z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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