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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달희 Dec 12. 2016

몸에서 속마음을 만나다

접촉의 심리치료 13_마음의 매듭 풀기

뇌는 싫더라도 몸의 소리를 들어야 하는 청중이다.
-Antonio Damasio     


느낌은 몸에 대한 마음의 해석이다

심리학 연구논문에서 요즘 많이 등장하고 있는 인물이 미국의 신경과학자 안토니오 다마시오다. 그는 ‘데카르트의 오류(Descates' Error)'란 제목의 자신의 저서에서 떼려야 뗄 수 없는 마음과 몸의 연관성을 지지하는 신경생리학적인 증거를 정리했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느낌은 기본적으로 몸 상태에 대한 마음의 해석이고, 이성이 진정으로 합리적이려면 몸에서 나오는 감정적인 신호에 기반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인지과학자들인 레이크옵과 존슨Lakeoff & Johnson은 ‘몸의 철학’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몸에 기반을 둔 마음 상태에서는 내적으로 든든한 느낌이 들고, 우리의 행동은 내면의 지시를 받는다. 우리는 신체적 감각과 감정에 접근할 수 있고, 이것은 우리를 심리적으로 풍성하게 해 주는 유용한 접근이다. 이 상태에서는 우리는 우리가 느끼는 방식 뿐만 아니라 생각하는 방식이 ‘살아있는 사람의 몸에서 비롯되고, 그것에 의해 형성되고 의미가 부여된다’는 느낌을 받는다.”


마음의 문제로 몸이 불편한 내담자는 정신분석가 빌헬름 라이히의 말처럼 몸이 느슨하게 이완되면 몸에 매듭이 풀리지 않은 채 남아있던 정서적 기억들이 무의식에서 의식으로 떠오르면서 다시 체험하게 된다는 가설과 같았던 이론은 이제 신경생리학의 명확한 근거제시로 더욱 단단해졌다. 인간에게 있어서 인지적인 상태의 이런 변화를 보면서 인지심리학자인 아더 글렌버그 Arthur Glenberg는 몸에 깃든 기억이란 뜻인 ‘체화된 기억embodied memory’ 개념을 제안하면서 터치의 심리학은 바야흐로 과학의 품 안에서 제대로 빛을 발하고 있다.      


몸 안의 마음정서기억

엎드려누워서 허리부분을 만져주실 때 온몸으로 통증이 쫙 퍼진다는 느낌이 있었어요. 그 안쪽에 억압된 것들이 눌리면서 풍선처럼 바람이 빠진다고 해야 할까 퍼졌다라고 해야 할까요. 뭉쳐졌던 것들이 해체되면서 증발된다는 느낌이지요. 억압된 분노였던 것 같아요. 대상은 여러 개가 있어서 그 분노와 연결되었던 사람들과 사건들이 생각났어요. 굉장히 강렬했었어요.    

 

명상수련을 오랫동안 해왔다는 이 내담자는 신체심리치료의 첫 세션에서 허리라는 부위에서 자신의 몸에서 나타나는 상태의 변화와 움직임을 잘 알아차리고 그것을 말로 옮겨주었다. 이러한 ‘몸으로부터의 소리 또는 메시지’는 내 안의 무의식에서 분열되고 위축되어 있던 자아로부터 온다. 그것은 몸의 특정부위에서 느껴지는 통증이나 불편함, 만성적인 건강의 문제, 얼굴표정, 목소리, 몸의 형태, 습관화된 자세와 동작, 중독성 습관, 특정한 긴장자세를 취하는 동안 일어나는 부정적 정서―두려움, 분노, 슬픔, 긴장감 등―의 변화 또는 특별한 감각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이런 우리 ‘몸 안의 마음’, 그 체화된 기억 속에서 기억과 연결된 대상과의 관계가 녹아있고, 어떠한 상황의 느낌과 감성을 되살려주는 기억을 ‘정서 기억’이라고 한다. 이는 감각기관으로부터 전달받은 감각정보를 짧은동안 저장하는 감각기억과 구분된다. 이런 원초적인 감정과 관련된 정서 기억은 뇌의 한 중앙 깊숙한 곳, 뇌질환으로 잘 타격받지 않는 ‘편도체amygdala’―뇌의 변연계(limbic system)에 속하는 구조의 일부로서 동기, 학습, 감정과 관련된 정보를 처리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에 보관된다. 


정서기억은 또한 시간이 흐를수록 대뇌 피질 곳곳에 흩어져 파묻히기도 한다. 이 때문에 우리의 기억중에서도 쉽게 지워지지 않고 가장 오랫동안 끈질기게 남아있는 기억이 바로 정서 기억이다. 우리 인간에게는 어느 누구에게도 시간이 아무리 흘러간다고 하더라도 쉽게 지워지지 않는 그런 기억들이 있다. 사랑했던 연인이나 부모님에 대한 사무치는 그리움, 용서할 수 없는 자에 대한 분노 등등. 그렇지만 공평하게도 정서 기억 덕에 우리 뇌의 어딘가에는 친밀함을 나누었던 어떤 대상과 자신에게 자신감, 용기, 그리고 힘을 더해줄 수 있는 긍정적인 기억정보들도 있다.


알고 있지만 생각하려고 하지 않아서, 의식 위에 쉽사리 떠오르지 않았던 암묵적暗默的 기억들은 그렇게 자신의 몸의 어느 부분과의 접촉이란 기회를 통해 문득 떠오를 수 있다. 인식의 세계에서 억압되어 암묵적 기억들로 저장되어 있던, 내가 아직 어린아이였을 때 그대로의 미숙했지만 충격적이었고 고통스러웠던 감성과 느낌들을 지금 여기에서 다시 꺼내 바라보고, 말로 그것을 드러낼 수 있을 때, 그때 거기에서의 정서를 다시 체험 할 수 있다. 이제 성인이 된 지금 여기에서 내가 그 기억의 사건을 떠올려 관찰자가 되어 다시 바라 보고 느끼고 체험하게 되는 것이다. 그것을 심리치료에서는 그때와 지금의 나와 그 사건은 같지 않고 다르다는 것을 알아차리는, ‘탈脫동일시’라고 하는 체험은 바로 그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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