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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달희 Dec 12. 2016

헝클어진 마음, 밑그림 다시 그리기

접촉의 심리치료 14_응축된 경험의 체계

비슷한 정서 체험의 기억들은 묶음으로 떠오른다

다리같이 아팠던 곳에 손이 닿을 때에는 옛날에 안 좋았던 때, 고통받았던 그런 일들이 왔다 갔다 하는 것 같았어요. 이상하게 생각을 안 해야 한다고 생각했던, 별로 생각하고 싶지 않은 그런 생각들이 나는 거예요. 그걸 의식적으로 제가 생각한 것들이 아닌데 그런 느낌들이 있구요. 그 모습을 바라보면서 마음이 아팠어요. 아픈데 옛날처럼 그런 고통의 아픔이 아니라 내가 지나면서 그 당시에 내가 잘하지 못했던, 현명하게 하지 못했던 약간의 회한이라고 할까 그런 묘한 느낌들이 있었어요.     


치료 세션의 종결을 앞두고 신체심리치료의 이 내담자는 자신의 과거 부정적인 체험들의 묶음을 관찰자가 되어 바라보며 현재의 자기는 스스로 과거의 미해결 과제들을 끌어안으면서 통합하고 있다. 이처럼 접촉에 의해 일어나는, 특별한 치료적인 상태의 변화는 심리치료의 흐름에서 새로운 움직임인 트랜스퍼스널transpersonal 심리치료에서도 볼 수 있는 것으로 같은 맥락으로 해석된다. 


미국의 정신과 의사이자 트랜스퍼스널 심리치료의 선구자인 스타니슬라브 그로프 Stanislav Glof는 잠재된 정서의 의식화 체험에서 억압되었던 기억들이 무의식으로부터 떠오르게 될 때에는 그 기억들이 비슷한 감정, 이미지, 신체 감각 등 특정한 성질을 갖는 동질의 체험이나 감정을 중심으로 이른바 포도송이와 같은 덩어리의 묶음으로 떠오른다는 것이다. 그로프는 이 개념을 ‘응축된 경험의 체계(COEX System : System of Condensed Experience)'라고 부르는데 이러한 감정의 핵이 완전한 재 체험을 통해 의식화된다면, 그 치료적 효과는 매우 근원적이라고 보고하고 있다. 이러한 정신역동적 체험은 보통 치료 세션의 시작과 종결의 시기에 일어난다.


우리는 삶의 다양한 시기를 거치면서 맞닥뜨렸던 정서 기억들을 무의식 속에 쌓아놓는다. 그 정서 기억들은 서로 공유하는 정서들끼리 또는 신체적 감각의 속성에 있어서 서로 닮은 것들끼리 모이게 된다. 비슷한 성질의 감정 체험들은 시공간의 제한을 넘어서 하나로 모여져 마치 한 묶음의 덩어리로 기억되며, 치유의 장면에서는 그 덩어리가 의식으로 유유상종, 끼리끼리 모이듯 꼬리를 물고 떠올라 온다. 하나의 정서적 경험이 뭉칠까 말까를 결정하는 것은 경험의 강도와 정서적 관련성에 달려 있다. 이러한 정서 기억들의 응축된 경험 체계는 자신과 타인, 그리고 세상을 지각하고 느끼는 방식에 영향을 미친다. 그것은 정서적, 정신신체적 증상, 타인과의 인간관계에 있어서의 어려움, 비합리적인 사고와 행동 뒤에 숨어있는 역동적인 힘이 바로 그것이다.  

 

헝클어진 삶의 밑그림을 다시 선명하게 그리려면

이런 정서 기억의 특성 때문에 우리 몸의 어떤 부분을 만지면 그 부분에 연결되어 있는 특정한 정서 체험의 기억이 되살아나곤 하고, 그것은 풀리지 않던 마음의 미해결 과제의 실타래를 풀 수 있는 실마리와 같다. 


자신의 몸의 감각에 의식의 초점을 맞출 수 있는, 느낌이 살아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그런 감각의 여운을 떠올릴 수 있는 체험들이 있다. 몸에 깃든 마음이 간직하고 있는 수많은 스토리텔링들을 펼쳐놓는다면 아마도 모두 큰 감동의 다큐멘터리들일 것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역설적으로 정말 아무것도 아닐 수도 있다. 나의 어렵고 힘든 삶을 견디게 해 준 내면의 힘은 의외로 잔잔한 긍정의 회상들, 더운 여름날 시원하게 등물을 끼얹어주던 어머니의 손길, 맛있는 반찬 하나를 더 얹어 주시던 그 어머니의 손길, 잘했다라고 등을 두드려주시던 아버지의 손길과 같이 나를 미소 짓게 만들어 주는 느낌, 그 여운으로부터 나온다. 그러한 여운은, 어떤 대상과의 접촉 체험이 음식을 먹고 난 뒤에 느낌으로 남은 뒷맛처럼, 입자인 우리 몸에 특정한 파동으로 깃든 기억이다.      


손을 만져주시는데 손을 그냥 꼭 잡고 있고 싶다. 손이 참 예민하고, 섬세하구나. 몸의 곳곳에서 느껴지는 게 다르네 생각이 들면서 몸의 곳곳마다 각각의 자기 마음이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손에는 손의 마음, 다리에는 다리의 마음……그런데 강렬한 느낌이 올 때는 내 마음에까지 연결되는 느낌이 들어요.     


몸의 구석구석, 몸의 모든 세포에는 저마다의 마음이 깃들어 있는 것 같다는 이 내담자의 이야기는 내 마음으로도 진정성이 전해졌다. 이처럼 우리 몸의 에너지 체계가 평형상태를 되찾고, 순환이 막혔던 곳이 풀려 소통되게 되면 몸과 마음, 의식과 무의식의 통합을 자연스럽게 이루게 되며, 신체 작업을 통해 치료자와 내담자 사이에는 접촉을 통한 공감의 소통이 이루어지게 된다. 긍정적인 몸의 상태를 통해 끌어올려진 긍정적 감정은, 부정적 정서적 기억들이 체화되어 만들어진 삶의 모든 헝클어진 밑그림을 다시 선명하게 그릴 수 있게 해준다.  


우리가 살아왔고, 앞으로도 오래오래 살아가야 할 우리 모두의 세상이 아름답고, 우리 모두가 진정으로 행복할 수 있기를 바란다. 그런 세상을 만드는 것은, 사랑 나눔의 잔잔한 물결인 마음의 파동을 피부와 피부, 그리고 마음과 마음의 접촉을 통해 나누어주는 사람들이다. 그것은 어느 몇 사람의 위인이나 특정한 어느 누구가 아닌, 이 세상을 함께 살아가야 할 너와 나, 그리고 우리 모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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