접촉의 심리치료 62_접촉 박탈, 터치의 심리학 출발
인간은 접촉 없이 살아갈 수 없다.
접촉을 하고자 하는 욕구가 충족되지 않을 때,
비정상적인 행동이 결과로 나타날 것이다.
―미국의 문화인류학자 애쉴리 몬태규
1799년, 프랑스 아베롱 Aveyron에서 늑대처럼 숲 속을 뛰어다니던 인간을 닮은 생명체가 포획되었다. 그가 바로 ‘늑대 소년’이란 영화의 소재가 되기도 했던 아베롱의 야생아 빅토르였다. 11세가 되어서 인간 사회로 돌아온 빅토르는 야생에서 인간과의 접촉이 전혀 없이 자랐다. 의사였던 장 이따르 Jean Marc-Gaspard Itard는 그에게 이름을 붙여주었다. 그리고 환경 때문에 인간성을 상실하였다고 보고 생활환경을 보통 상태로 돌려 적당한 훈련과 교육을 하면 인간성을 되돌릴 수 있다고 생각했다.
이따르는 늑대처럼 맨 몸으로 바닥에서 자고, 씻을 줄도 모르고, 썩은 음식을 먹던 빅토르를 인간의 삶으로 돌아올 수 있도록 변화시키려고 애를 썼다. 언어의 사용은 물론 인간으로서의 감각과 정신활동을 불러올 수 있도록 노력을 했지만 결국 빅토르는 인간의 언어도 익히지 못한 채 40세로 생을 마감했다.
이 빅토르의 사례를 두고 발달심리학에서는 인간의 발달과정에서 ‘결정적인 시기’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생애 초기의 제한된 특정 시기에 특정 행동을 학습할 수 있는 적절한 환경 자극이 주어지지 않으면, 시기를 놓쳐 학습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처럼 보살핌의 손길이 없어서는 안 될 생애 초기에 접촉의 필요성은 절대적이다. 이를 뒷받침할 수 있는, 윤리적인 문제가 개입될 수 있어서 좀처럼 하기 어려운, 인간 집단에서 ‘접촉 박탈’ 경험이 주는 위협적인 결과를 연구할 수 있었던 기회가 두 차례 있었다.
그 첫 번째는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던 해인 1945년에 정신분석가이자 정신과 의사였던 르네 스피츠 René Spitz가 발표한, 시설에서 키워진 어린이들의 ‘접촉 박탈’에 대한 연구결과다. 그는 여성 재소자가 보모 역할을 하는 감옥 아동보호시설과 버려진 아이들을 모아놓은 일반 고아원 두 곳에서 아기들이 얼마나 잘 지내는지를 비교했다. 두 곳 아이들에게는 충분한 음식과 의복을 제공되었고, 주변 환경도 위생적으로 청결하게 유지했다. 차이가 있었다면 일반 고아원 아이들은 의료 서비스와 생활환경에서 좀 더 혜택을 누렸지만 누군가 만져주는 손길은 받지 못했다는 점이었다.
비교 결과 일반 고아원 아이들은 3분의 1 가량의 아이들이 생애 첫 해를 넘기지 못하고 죽어갔고, 남은 아이들도 신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발달이 부진했다. 많은 고아들이 의학적인 이유도 명확하지 않은 채 시름시름 앓다가 죽어갔던 까닭이 돌보아줄 보모의 수가 턱없이 부족했다는 데 있다는 것이 명확했다. 그저 침대에 눕힌 채 아기에게 제공하는 충분한 음식과 적절한 생활환경만으로는 아기의 신체 성장, 정서 및 인지 발달에 충분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한 시설의 아이들을 보살필 인력을 늘려서 아이들을 안아주고, 말을 걸어주면서 돌보아주니까 시설의 유아 사망률이 급감했고, 아이들에게선 발육부전이나 정신지체에 의한 손상이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