접촉의 심리치료 61_모성 박탈
두 번째 연구는 이데올로기의 소용돌이가 끝나던, 지금으로부터 30여 년 전에 급작스럽게 이루어지게 된 놀라운 사건으로 사전에 연구가 준비되지 않은 채 던져졌다.
북한의 김일성을 롤 모델로 삼아 1967년부터 22년 동안 공산주의 국가 루마니아를 지배했던 독재자 차우세스쿠(Nicolae Ceausescu)는 인구를 늘리기 위해 피임과 낙태를 금지시켰다. 모든 여성에게 4명의 아이를 낳게 하고, 이를 어기면 특별 세금을 내야 했다. 그런 사정으로 루마니아 여성들은 원치 않는 임신을 했고, 10만 명 이상의 아이들이 그렇게 태어났다.
빈곤한 가정에서 여러 명의 아이를 키우는 것이 매우 어려웠기 때문에 많은 부모들이 ‘요람’이라는 이름의 대형 고아원 앞에 자녀를 버렸다. 고아원마다 보모 한 사람당 평균 20~30명 이상의 아이들이 할당되었으니 아이들은 음식을 배급받는 것 외에 별다른 보살핌을 받지 못했다.
1990년 차우세스쿠 정권이 무너지면서 고아원의 문이 열리자, 그 안에 있던 아이들의 생활상이 공개되었다. 아이들은 몸을 앞뒤로 흔들거나, 자신의 머리를 벽에 쿵쿵 박거나, 이상하게 얼굴을 찡그리거나, 새로운 사람이 다가가는 것을 전혀 눈치 채지 못하거나 슬픔에 잠긴 눈을 그저 커다랗게 뜬 채 낯선 사람들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아이들은 주위 사람들과 어울리는 데에서 기쁨이나 즐거움을 느끼지 못했고 야단을 맞거나 욕을 먹어도 별로 개의치 않았고 그저 무관심했다. 이 아이들이 굶주리거나 얻어맞거나 고문이나 강간을 당한 것도 아니었고 그저 아무도 이 아이들을 사랑해주거나 안아주지 않았을 뿐이다. 이 아이들은 어디에서도 감정을 느끼거나 다른 사람들 속에서 자신을 인식하는 방법을 배우지 못했다.
차우세스쿠는 이런 고아들의 특성을 알고 자신의 잔악하고 무자비한 비밀경찰요원들을 이처럼 감정이 박탈된 고아 출신들로 채워졌다고 한다.
“이 어린이들은 전혀 보살핌을 받지 못하고 있었다. 그들은 인간 창고에 갇혀 있었다”라고 이 보도사진을 찍어서 퓰리쳐상을 받은 사진기자 윌리암 스나이더는 말했다.
뇌영상 촬영 검사 결과 아이들은 변연계를 비롯한 두뇌 발달에 심각한 손상을 입었다. 오랫동안 고아원에 지낸 아이들은 뇌의 크기도 더 작았고, 성장한 후에도 기억과 언어를 담당하는 측두엽이 제대로 발달되지 않았다.
이런 연구결과를 받아들이면서 심리학계에선 부모와 자식 간의 접촉과 애착 사이의 연결을 이해하고 인정하기 시작했고, 현대 발달심리학의 핵심이론 중 하나이면서 개인의 심리사회적 적응과 깊은 관련이 있다는 점에서 아주 중요한 ‘애착’ 이론이 세워지게 된다.
아기는 누군가의 보살핌을 받을 수 있도록 인간 유전 프로그램 중 한 요소인 특별한 시스템을 가지고 태어나는데 그것이 바로 영국의 심리학자 존 보울비 John Bowlby가 이름 붙인 ‘애착 행동 시스템’이다. 사랑하고 아껴서 단념할 수가 없음, 또는 그런 마음을 일컫는 ‘애착(愛着; attachment)’이란 아기와 아기를 돌보는 사람, 즉 아기와 엄마 사이에 형성되는 친밀한 정서적 유대감을 말한다.
보울비는 모자간의 긴밀한 유대 bonding는 살아남기 위한 원시적인 충동들의 감소 결과일 뿐만 아니라 ‘최초의 대상에 매달리면서’ 연합되는 친밀한 관계를 위한 욕구 때문에 일어난다고 결론지었다. 보울비의 관찰 결과, 아이가 부모와 떨어져서 장기간 입원하거나 시설에서 지낼 경우 정신적으로 피폐해지는데 그러한 외상성의 분리와 상실에 대해 아동이 보인 최초의 반응은 ‘항의’였고, 그 뒤 ‘절망’으로 이어졌으며, 마침내 ‘거리두기’였다.
사랑의 대상이자 절대적인 의존의 대상인 어머니와의 분리와 상실로 겪게 되는 소모적인 증상은 르네 스피츠에 의해 ‘의존성 우울 anaclitic depression’이라고 불리게 되었다.
3개월 이상 어머니의 보살핌을 받지 못하는, 모성 박탈로 인한 의존성 우울증의 증상으로는 정서적 위축과 불안으로 지속적인 울음, 크게 소리 내어 울기, 퇴행, 흐느끼기, 후에 접촉 장애와 정서적 무감동 Apathy 상태, 무관심, 식사 거부, 수면장애, 체중감소 등이 있다. 스피츠 선구적인 연구는 적절한 모성 돌봄이 건강한 신체 발달과 심리 발달에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 사실을 증명하였다. 그는 시설 증후군 hospitalism과 의존성 우울증을 구분하였는데, 시설 증후군은 전적인 정서 결핍에 의해 야기되는데 반해 의존성 우울증은 이전에 형성되었던 정상적인 어머니-아동 애착이 와해되고 아동이 애정을 박탈당함으로써 야기되는 것으로 보았다.
Cover image : 윌리암 스나이더 사진_루마니아 고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