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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달희 Dec 05. 2016

인연_열차집

삶의 역사


꽤나 세차게 내리던 비 때문이었을까. 해묵은 추억의 영상들이 '열차집'이란 세 글자의 단어와 연결되어 영화처럼 이어졌다. 

내가 피맛골 열차집을 단골로 다니기 시작한 것은 1976년 여름의 일이니 참 오래된 단골인 셈이다. 광화문통 아이들이라 불리던 재수생의 길을 걷고 있었던 그때. 지금의 열차집 사장님도 그해부터 열차집을 시작했다고 하니까 나의 성인으로서의 역사와 함께하는 열차집이라 그 인연은 아무래도 남다르지 않을까 싶다. 

청진동 구석에 있던 학원 수업을 마치고 광화문 거리에서 맞닥뜨린 그 여름 한낮의 뜨거운 태양은 그렇지 않아도 어둡고 음습했던 우울의 늪 속에서 허우적거려야만 했던 나를 더욱 깊이 깊숙이 빠져들게 했다. 

없어지기 전의 피맛골 광화문쪽 입구에 있던 빈대떡 전문 열차집 풍경. 출처 : 레오 오빠님 블로그

태양의 광기는 마치 내 목을 조일 듯 위협적으로 다가왔다. 햇볕을 피해 빌딩 숲 속이 만든 그늘의 터널을 따라 축 늘어진 어깨로 무거운 가방을 들고 무교동을 지나 광교로 접어들었다. 누군가 지나가는 버스의 열린 창문 사이로 얼굴을 내밀며 내 이름을 불렀다. 


고개를 돌렸다. 고등학교 동창생 L군. 도시의 거리를 스쳐지나가며 발견한 나와 뜻밖의 만남이 너무나 반가웠던 그 친구는 달리는 버스를 세웠고 뛰어 내려 몸을 던지다시피 내게 달려왔다. 대학생이던 L과 대학생이 아니었던 나는 서로 껴안았지만 그동안의 세월이 만들어놓은 거리를 좁혀줄 그 무엇이, 그 여름의 타는 목마름을 채워줄 무엇인가가 필요했다. 


여유롭지 못했던 그 시절, 지나가며 보아두었던 그 빈대떡집 열차집을 나는 떠올렸고, 우리는 그 집에서 타는 목마름으로 삶의 고통과 시절의 아픔과 청춘의 그늘을 이야기했다. 

열차집과의 인연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그 뒤로 27년의 세월동안 기름에 절은 벽, 등받이 없는 나무 줄의자에 앉아 미닫이 유리문을 통해 바라보였던 수많은 사람들처럼 나는 내 생의 수많은 인연들을 만나고 떠나보냈다. 피맛골 열차집을 플랫폼 삼아 떠나보낸 열차집 빈대떡 동지들이 그립다. 


열차집은 오래 전 피맛골이 빌딩 타운으로 바뀌면서 조계사쪽으로 이전했는데 값도 많이 오르고 옛날같은 골목통의 친근한 분위기가 아니라 거의 가지 않고 있다.

열차집 빈대떡. 이달희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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