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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달희 Dec 05. 2016

인연_학림다방에 대한 노스텔지어

없어진 단골집 '비를 긋다'를 생각하며

#1. 젊은 시절, 스무살 무렵의 내 정신적 방랑의 고향 동숭동을 그리워 한다.

심리학을 공부하면서 독일 유학을 준비하고 있을 때, 전혜린은 내 유학생활의 벤치마킹 대상이었었다. 그의 베스트셀러 에세이집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를 읽고 그의 흔적과 자취를 따라 다니기도 했다. 동숭동의 <학림다방>도 그중 하나였다. 오래되어 삐걱거리는 소리가 나는 좁다란 나무 계단을 따라 2층으로 올라가면 조그만 나무 탁자 몇개가 있는 허름한 다방 공간에는 늘 클래식 음악이 흐르고 그 음악에 심취한 예술가, 대학생, 그리고 룸펜 또는 아나키스트들이 여기저기 앉아 커피 한 잔을 놓고 담배만 죽이고 있었다. 그리고 세로로 긴 창문에는 나무 덧문이 양옆으로 펼쳐졌고, 그 사이로 차들이 오가는 동숭동 거리가 풍경화처럼 자리 잡았다. 어느 여름 한낮 햇볕 뜨겁던 그 날, 소나기가 아주 세차게 내렸다. 나는 그때 그 빗줄기를 바라보면서 세상은 참 아름답고 또 행복하다는 생각을 아주 잠깐 했었다.

경복궁 담길 은행나무길이 내려다 보이던 그 카페. 이달희 사진


몇년 전, 경복궁 옆에 사무실이 있었다. 술집이 주된 출입처이었던 나는 딱히 까페를 드나들 일이 없어서 그냥 지나치기도 했던 곳을 자주 가게 되었었다. 아니 분명히 말하자면 '가끔'이다. 그건 순전히 소나기 내리던 그때 그 동숭동 학림다방에 대한 노스텔지어(nostalghia)와 목마를 타고 떠난 숙녀에 대한 데쟈뷰를 좇아가는 것일지도 모를 일이다.


어둡고 좁다란 나무 계단, 나무 창틀로 보이는 경복궁 돌담 옆 한적한 거리, 아메리카노 원두커피의 은은한 커피향. 그런 내 옛 기억들을 떠올리게 만드는 곳이 바로 이 까페였다. 그 이름은 <비를 긋다>. 이 말은 '처마 밑에서 비가 그치기를 기다리다'라는 뜻. 물론 더 가까이 다른 까페도 있었으나 정서상 맞지 않고 담배연기의 배출이 안되어 질식하거나 간접흡연의 피해에 심각하게 노출되기 쉬운 좋은 곳이라 다신 안간다.


아무튼 이곳에 가면 무조건 이층으로 올라갔다. 그 느낌이 좋았고 조용해서 좋았다. 또한 무엇보다 커피값이 싸다는 것은 큰 장점중 하나였다. 이천오백원.


주인 아주머니도 튀지 않는 모습이라 편안했다. 꽤 낯이 익어선지 아는 체해주는 그이에게 더 반가운 마음이 들었다. 그날도 그랬다.


"비 오는 날 오려고 하는데 시간이 잘 안맞아요."

"그러게요. 비 오는 날 창 밖 모습이 참 좋은데."


창밖으로 보이는 은행나무 잎들이 노랗게 물들어가는, 가을이 깊어가는, 그런 날 가을비 내리는 날 비를 긋기 위해 또 들러야지 생각했었다. 혼자라도 괜찮을 듯했다. 누군가 나를 찾아와 내가 이끄는 이곳에 혹시라도 함께 가게 된다면, 그이는 아마도 나와 공감하고 있는 '절친'이란 아주 특별한 의미가 부여되고 있음을 슬며시 알아주기를 하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얼마 전 경복궁 옆을 지나가면서 보니 '비를 긋다'가 사라지고 음식점이 되었더군.또 최근에 지나다보니 또 다른 곳으로 바뀌었다. 아무튼 내 생애 소중한 인연이던 단골 찻집 하나가 기억으로만 남겨졌다.

이달희 사진.


#2.오래된, 아주 오래된 추억의 끈을 계속 놓치지 않으려고 하는 노력인지도 모르겠다.

우연히 동숭동에서 오래된 친구와 만났다. 

밥을 먹으려고 괜찮은 집을 찾으려고 구석구석 다니다 '술집은 많은데 점심 맛있게 먹을 만 한 집은 안보이는데' 하고 근처 한정식 집에 가서 신통찮은 점심을 먹고나왔다. 어디 가서 커피 한잔하고 가자, 오랫만에 학림에 한번 가보자. 친구와 이구동성이었다. 추억의 학림다방은, 그때 그 자리에 여전히 있었다. 이쪽에는 오감도인가 하는 집이 있었는데, 저쪽은 뭐가 있었고, 하며 옛일들을 회상하며 그 낡은 계단-아마도 그대로인듯-을 따라 올라갔다. 

학림다방. 이달희 사진


옛날 그 나무창틀 세 개가, 넓은 통유리창 옆에 나란히 자리를 잡아 그 때 그 다방임을 알려주는 신분증 역할을 하고 있었다. 아, 이 들창문. 그래도 예전 그 느낌은 아니야.   


가운데에는 1956년에 만들어진 이 학림다방이 2006년 50주년 행사를 가졌다는 포스터가 3년이 지난 지금까지 붙어있었다. 3년 전 그 연말에는 무슨 일이 있었길래 내가 못왔지 생각하며 물끄러미 그리운 이름들을 바라보다.   


늘 앉던 창가, 길 건너 샘터사가 보이던 그 자리에 앉아 보통 커피를 시키다. 마주 보이는 카운터 뒤에 낡은 LP판들이 눈에 들어왔다. 음악신청받아요, 우리가 한창 드나들던 그 시절 이후에 출생했지 싶은, 젊은 아가씨에게 물었다. 네, 클래식이라면요, 했다. 


나는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 콘체르토를, 친구는 나부코에 나오는 노예들의 합창을 적어 신청곡 쪽지를 주었다. 아, 이 곡은 이장호 감독, 아마 장미희가 주연이었던가. 겨울여자에 나왔었지? 그래, 맞아. 배우들 목소리를 성우가 더빙하던 그때였잖아. 하하하. 

학림다방. 이달희 사진

좁은 공간에 더 많은 손님을 받으려고 하는 것인지, 옛날 음침한 닭장식 카페분위기를 내려고 했던지 구석은 이렇게 복층이 되어있더군. 클래식 음악다방이라는 것을 말하고 싶어, 난간에는 낯익은 지휘자들의 얼굴들이 걸려있고. 젊은 손님들은 다락방같은 위층으로 올라갔고, 우리처럼 추억을 찾아온 이들은 창가를 선호하는가 보다. 


음악이 나오는동안 한참 아무 말없이 비 내리는 창밖의 대학로 거리를 바라보다. 커피맛이 좋아 1000원을 더주고 리필. 테이블은 칠이 벗겨져 나무 바탕색이 그대로 드러나있었다. 

학림다방 계단. 이달희 사진

학림은 삐걱이는 나무계단, 들창문틀, 클래식 음악, 그 분위기를 그대로 이어가려곤 하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때가 아니고, 나도 그때의 내가 아니기 때문이었을까. 그냥 추억 속의 학림은 그저 내 마음에만 간직하고 있을 걸 하는 생각도 들었다.


이달희

이달희신체심리치료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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