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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달희 Jan 22. 2017

추억 속의 크리스탈

Once upon a time in America

잡지 기자생활을 하면서 그때나 지금이나 최고의 드라마 작가 아무개 선생 원고 담당을 무려 6년이나 했다는 전대미문의 경력이 내게는 있다. 외형적으로 그건 굉장히 까탈스럽기로 유명한 그분에게 한치의 거부감도 허락하지 않는, 젠틀한 매너(조금 오버한 듯)뿐만 아니라 무척 호감을 줄 수도 있는 스타일이기 때문이라는 단순한 이유 때문이었을 것이고, 내면을 들여다보면 다른 기자들이 그분 소설 담당을 기피했다(까칠한 그분이 무척 두려웠던 모양)는 점도 있었을 것이다. 

 

그런저런 이유로 오랜 시간을 그분과 접촉했으므로 그분의 인간적인 면모에 대해서 누구보다 잘 아는 사람 중의 한 사람이 되지 않았을까 생각도 한다. 컴퓨터도 없었고, 팩스도 안 쓰는 그분의 원고를 받으려고 마감 때면 그분 댁을 찾는 것이 나의 중요한 임무. 서울의 한 산 중턱에 자리 잡은 그분의 남향집에는 넓은 통유리를 통해 거실 깊숙이 햇살이 들어오곤 했다. 테이블에는 묵직한 크리스탈 장식이 하나 있어서 그 햇살을 아주 영롱하게 분산시켜 온 집안을 무지갯빛으로 아름답게 채색해주곤 했다. 그 빛깔들 사이로 헤비 스모커인 그분의 담배연기가 아주 멋스럽게 느껴졌었다. 

 

그 때문이었는지 마감을 끝내곤 신촌의 내 단골 카페를 찾아 크리스탈 잔에 언더락으로 키핑 해놓은 양주 꺼내 한잔하면서 끊었던 담배도 유혹에 못 이기는 척하며 마담의 담배 한 개비 꺼내 피워물곤 했었지. 

 

크리스탈은 그래서 내 추억 속의 아름다운 풍경 하나가 떠오르게 만들어주는 핵심 정서들과 직접 연결된 의미 단어이기도 하다.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메리카'에서 먼지 가득한 어두운 창고 안에 뽀얗게 햇살 한 줄기가 청춘들에게 빛의 세례를 주고 있는 듯한 그런 풍경 안에 '아마폴라'가 흐른다. 춤추는 천사와 같은 소녀를 틈새로 바라보며 로맨틱한 상상을 하던 소년의 모습이 바로 그때 나이기도 하다. 


그땐 세상이 참 아름다웠다. 마치 크리스탈처럼.   

Once upon a time in my lif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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