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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달희 Dec 28. 2016

따스함_어머니의 흔적

생의 심리학 17_간접 접촉의 힘


춥다.  

전기장판으로 따뜻하게 덮혀진 이불속으로 들어가면서 어린 시절 어느 겨울날 장면이 떠올랐다. 흐뭇한 미소와 함께.

     

군인이셨던 아버님께서 주둔지에 계실 때면, 안방 어머니 옆 이부자리는 어린 형제들의 차지였다. 그 이불 위에서 형제들은 비비적거리며 뒹굴었다. 잠들기 전, 마치 의식과도 같이 어머니의 따스한 젖가슴을 서로 만지며 놀다 보면 이내 엄마의 하얗고 몽실몽실한 젖처럼 온몸이 말랑말랑해져서 깊은 잠에 빠지곤 했다. 하지만 아버님께서 집에 오셔서 계시는 동안은 아들은 아들끼리 딸은 딸들끼리 각각의 방으로 흩어져야 했다.    

 

그 무렵의 집들이 대부분 그랬지만, 그 집은 마루가 있고 외풍이 무척 셌다. 그리고 잠을 자기 위해서 이부자리를 펴면 잘 빨아서 풀을 먹여 다듬잇돌로 뻣뻣하게 다듬어진 하얀 옥양목 이불보의 냉기가 늘 섬뜩할 정도로 차가워서 이불속에 들어간 뒤 한참 동안은 불에 오그라든 오징어처럼, 어머니의 자궁 속의 태아처럼 웅크리고 있어야 했다. 몸의 체온으로 이불속이 어느 정도 덥혀진 뒤라야 발과 팔이 펴지곤 했다.     


그런데 어느 날인가, 어머니께서 이부자리를 펴놓으신 다음 그 이불속에 한참을 누워계시다 저를 위해 자리를 내어주셨다. 어머니께서 사랑하는 아들이 어머니 곁을 떠나 이불속에서 맞는 그 세상의 차가움을 어머니께선 온몸으로 막아주신 것이다. 어머니의 따스한 훈기가, 어머니의 향기로운 화장품 냄새가 배어있는 그 이불속에 쏙 들어가면서 그날만큼은 오징어처럼 웅크려 있지도 않고 금방 행복한 단꿈을 꾸며 잠들었던 그 겨울날이 오늘 갑자기 생각이 난다.     


오, 어머니. 


모든 접촉은 흔적을 남긴다. 그 어린 시절 내 이불속에 남아있던 어머니의 훈기(薰氣)는 영원히 내게 사랑, 배려, 그리고 보살핌을 말이 아닌 따뜻함으로 전해주고 있다. 그 따스한 체온으로 내게 전해준 접촉의 흔적은 아무래도 지금의 나를 만든, 그리고 나를 지금까지 살아내게 해 준 힘인 것 같다.


특정한 감각 체험은 그러한 감각과 연합된 개인적인 일화를 다시 떠올려준다.(Engen, 1987; Schab, 1991). 체화된 기억 속에 그 기억과 연결된 대상과의 관계가 녹아있다. 따스함과 포근함, 두려움과 분노 등 감성과 관련된 것은 ‘정서 기억’이다.


John Denver - Sunshine On My Shoulders

https://www.youtube.com/watch?v=diwuu_r6GJE&list=RDdiwuu_r6GJE#t=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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