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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달희 Jan 22. 2017

내가 사랑한 자유인, 조르바

생의 심리학 20_그것으로부터의 자유

초인(超人)이자 자유인이었던 사람, 그리스인 알렉시스 조르바(Zorba the Greek). 나는 이 자유인을 1970년대 문학잡지 <문학사상>에서 처음 만났다. 매달 조르바와 만나는 기쁨에 이 잡지와 인연이 깊어졌었다. 그리고 나는 이 ‘자유’를 찾기 위해서 그리고 ‘자유인’이 되기 위해서 심리학과 철학과 종교의 언저리를, 그리고 심신 탐구의 방편들과 수많은 술집들을 기웃거렸었다.

 

그가 말했다.

“서른다섯에 못 여문 대가리라면 여물긴 텄군.”


아직 채 서른다섯이 되지 않았던 나는 ‘오, 아직 여물기 위한 시간은 남았는 걸’하면서 그와 닮기를 바랬다. 그러기 위해 낮에는 책에 빠져서, 그리고 밤에는 술독에 빠져 친구들과 어줍잖은 생의 담론들을 나누기도 했고, 나의 삶에 주어진 모든 것들의 맛을 조금씩 보면서 세상을 알아갔다. 내 젊은 날의 그 낮과 밤들은 그렇게 지나갔다. 그리고 어느 날 사랑하는 이로부터 고려원에서 책으로 묶어져 나온 이 소설을 선물 받아 조르바는 내게 더욱 친숙한 친구이자 소중한 애장품이 되었다.   



<그리스인 조르바>, 그후 이 책은 앤서니 퀸 주연으로 영화화되기도 했지만 나는 책의 감동이 오히려 퇴색되지 않을까 싶어 영화를 보지 않았던 기억이 있다. 이 책의 지은이인 그리스의 소설가이자 시인 니코스 카잔차키스(Nikos Kazantzkis, 1885~1957)는 그의 다른 책 <영혼의 자서전>에서 이렇게 썼다.

  

‘내 삶에서 가장 큰 은혜를 베 푼 것들은 여행과 꿈이었다, 죽었거나 살았거나 내 투쟁에 도움이 된 사람은 극히 드물다, 하지만 내 영혼에 가장 깊은 자취를 남긴 사람들의 이름을 대라면 나는 아마 호메로스와 부처와 니체와 베르그송과 조르바를 꼽으리라. 호메로스는 기운을 되찾게 하는 광채로 우주 전체를 비추는, 태양처럼 평화롭고 찬란하게 빛나는 눈이었으며, 부처는 세상 사람들이 빠졌다가 구원을 받는 한없이 새까만 눈이었다, 베르그송은 젊은 시절에 해답을 못 얻어 나를 괴롭히던 철학의 온갖 문제들로부터 나를 해방시켜 주었으며 니체는 새로운 고뇌로 나를 살찌게 했고 불운과 괴로움과 불확실성을 자부심으로 바꾸도록 가르쳤으며, 조르바는 삶을 사랑하고 죽음을 두려워하지 말라고 가르쳤다. 조르바, 나는 조르바 앞에서 보다 더 수치를 느꼈던 적은 없었다.’

  

카잔차키스는 이 책에서 주인공이자 관찰자-이지적이고 냉소적인 문명인이면서, 고독한. 바로 나와 같았던-의 눈으로 이상적인 인간 조르바(실존인물 게오르게 조르바의 모델이다)를 그렸다. 

  

‘조르바는 내가 오랫동안 찾아다녔으나 만날 수 없었던 바로 그 사람이었다. 그는 살아있는 가슴과 커다랗고 푸짐한 언어를 쏟아내는 입과 위대한 야성의 영혼을 가진 사나이, 아직 모태(母胎)인 대지에서 탯줄이 떨어지지 않은 사나이였다. 언어, 예술, 사랑, 순수성, 정열의 의미는 이 노동자가 지껄인 가장 단순한 인간의 말로 내게 분명히 전해져 왔다.’  

  

카잔차키스는 크레타섬에 묻히면서 자신의 묘비명을 이렇게 썼다.

  

Δεν ελπίζω τίποτε. Δεν φοβʊμαι τίποτε. 

Είμαι λεύτερος

나는 아무것도 원치 않는다. 나는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나는 자유.

  

다시 들춰본 이 책 <그리스인 조르바>에서 줄곧 이어지는 조르바와 ‘나’(작가)의 담론들은 동서고금 막론하고 무수한 석학들이 일평생을 바쳐왔던, 결코 가볍지 않은 주제들을 담고 있다. 그는 인류가 이루어 놓은 수많은 고차원의 개념들을 다룬다. 이성, 자아, 도덕, 정의 등등 이러한 무거운 주제들에 대해서 그가 내리는 짤막한 결론들은, 간단하고 명쾌하다. 


‘자유’

 

나는 지금, 인간의 온전하게 건강한 삶이란 무엇이며 어떠한가를 이야기하고 또 그렇게 존재함에 이를 수 있도록 촉진하는 행위, 즉 촉진자이기도 하다. 그러한 맥락에서, 생의 한가운데 있지 못했던 판단하고 분석하며 살고 있는 이성적인 존재, '지식인이었던 관찰자'는 차마 하지 못했으나 자신의 삶의 참된 주인공이었던 조르바가 해낼 수 있었던 것은 무엇이었던가를 바라본다. 


인류의 역사가 시작된 이후 마음의 문제로 전개되는 몸과 인간 개체의 삶 전체의 고통을 치유하기 위해 심리치료의 수많은 기법들이 새롭게 탄생되면서 끊임없이 진화해 오고 있다. 하지만 마음의 병, 마음의 아픔을 견뎌내지 못하는 사람들은 줄지 않고 오히려 늘고만 있다. 우리 사회의 모든 변화가 빨라지면서 사람들이 요구하는 변화의 속도도 빨라졌다. 그와 함께 보다 강력한 것을 찾으며 지루한 것을 못견뎌 한다. 그렇지만 우리는 알아야 한다. 진리로 향한 길은 오직 한 길이란 것을. 


모든 시대의 개인과 사회가 온전하게 건강함을 지속적으로 유지하며 행복에 이를 수 있는 방법을 찾겠다며 내놓은 모든 메소드의 핵심은 따지고보면 바로 이런 것임을 조르바는 가르쳐주고 있다. 

  

그것은 바로, 지금 여기에 드러나는 내 마음에 대한 알아차림.
그리고 그것으로부터의 자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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