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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달희 Jan 27. 2017

피부에서 마음을 느낀다

접촉의 심리치료 31_피부 자아

말로 하는 소통을 너머

곧 우리나라의 새로운 대통령을 선출할 대선이 치러질 것이다. 대선이든 총선이든 선거철이 되면 입후보자들은 어김없이 유권자들을 찾아 한 표를 호소하는 마음으로 열심히 고개를 숙이고 손을 잡는다. 하지만 겉과 속마음이 다른 정치인들이 손을 내밀어 잡으면 이내 ‘이건 공적 인사치레로서의 영혼 없는 접촉이군’하고 느껴지며 빨리 손을 빼고 싶을 정도로 그 느낌은 ‘건조’하다. 하지만 마찬가지로 피부와 피부가 닿는 접촉이라는 것은 다를 바 없다고 하더라도 사랑하는 사람과 처음 마주 잡은 그 손길의 느낌은 가슴을 두근거리게 한다. 그뿐이랴 심장이 두근거려 얼굴을 발그스름하게 만들며, 눈동자의 동공이 크게 벌어지게 만드는 정서적 흥분상태로 만들어버린다. 지극히 사적인, 이러한 접촉은 마음이 아니라 몸의 변화까지도 금방 나타나게 만든다. 피부와 피부가 단지 맞닿는 신체적인 접촉에서 도대체 무슨 작용이 일어나길래 느낌이 이리도 다른 것일까. 

 

얼마 전에 여성 참가자의 자살이라는 비극적인 사고로 안타깝게도 폐지된, 싱글즈들을 위한 짝 맺어주기 프로그램인 ‘짝’을 즐겨봤다. 그 프로그램을 보면서 정말 예측하기 어려운 것이 사람 마음이구나 하는 생각을 많이 했었다. 그들, 선남선녀들 사이에는 정말 미묘한 감정 교류가 있어서 그들의 관계는 반전에 반전을 거듭한다.

몇 ‘호’라고 불리는 한 여성 출연자는 자신에게 적극적인 남자와 소극적인 남자 사이에서 고민을 하다가, 모든 이들의 예상을 뒤엎고 소극적인 남자를 선택한다. 그 여성의 대답은 이러했다. 

   

“해변에서 춤을 출 기회가 있었는데, 손과 어깨를 잡는 순간, ‘아, 이 사람이다’라는 느낌이 오더라구요.”     


누군가의 손길이 내 몸의 가장 바깥 경계 거죽인 피부에 와 닿는 순간 그 감각체험은 아주 짧은 순간이지만 모든 정보를 종합해서 내 마음에서 느낌이 일어나게 한다. 말로 옮겨지는 어떠한 정보는 판단이라는 사고 과정을 거치지만 이러한 신체적인 접촉 신호는 즉각적으로 반응하게 한다. 


근육을 포함하는 피부는 정서와 건강상태에 따라서 끊임없이 변화된 모습을 보여준다. 흥분하면 떨리거나 실룩거리고, 정신적 충격을 받으면 마비가 되며, 수치심을 느끼면 붉어지고, 겁에 질리면 창백해진다. 혼자 있을 때보다 타인과 함께 있을 때 더욱 반응은 민감해진다. 그렇다면 감정이 접촉이란 행위를 통해서 왜 나타날까. 그리고 정서적 기억과는 어떤 관계인가.    

  

촉각과 피부의 관계

프랑스의 정신분석가인 디디 앙지외(Didier Anzieu)는 그의 저서 <피부 자아(Le Moi-peau)>에서 전체로서의 자기를 가리키며 ‘자아(自我)는 피부이다’라고 말하고 있다. 즉 피부는 서로 다른 구조의 조직들이 밀접하게 서로 연결되어 ‘나’라고 할 수 있는 물질적 형체로 이 세상에 존재하는 자기를 전체적으로 지탱해주고 있다. 그리고 외부의 자극을 막아주는 방패 역할을 함으로써 생물학적인 자기를 존재하게 해주고 있다. 피부를 통해 우리 인간은 혼란스럽고 위협적인 자극들로부터 피부 안에 존재하는 나의 내부 환경에 균형을 유지하게 된다. 그 나라고 하는 자기의 경계를 통해 누군가가 내 피부를 만지는 것을 느끼고, 내가 누군가의 피부를 만짐으로써 ‘자아’가 탄생한다는 것이다. 


여기서 ‘피부’는 피부 그 자체를 특정해서 가리키기도 하지만 전체로서의 자기를 가리키는 은유로서 그 의미는 확장된다. 피부는 나 자신에게 쾌감을 느끼게 하고, 자기의 존재를 유지할 수 있도록 분비 작용을 하며, 외부의 위협적인 자극에 방어와 공격 작용을 하고, 나라고 하는 자기와 동일시하여 현실 검증과 의사소통 작용을 한다. 피부가 갖는 그러한 몇 가지 작용들을 떠올려 보면 접촉이 어떻게 개인마다 다르게 느낌을 불러 일으키는지 그 의미를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피부에서 느껴지는 감각은 이 세상에 ‘나’로써 존재하는 단 한 사람, 그 개인의 일시적이고도 전체적인 감정의 기초가 된다. 그리고 그 개인에게 신체적 자기를 둘러싸고 있는 피부란 최초의 ‘심리적 공간’이라는 점에 우리는 주목해야 한다.     


이처럼 피부를 통해 전달되는 접촉에 대한 감각적인 느낌은 제 각각의 사람마다, 그때 마주하는 상황이 어떠한가에 따라 달라진다. 접촉의 장면에선 그 대상과 유사한 인물과의 관계, 아니면 그러한 접촉의 체험이 주는 정서적 기억과 연관된 감정이 드러난다. 그래서 접촉이 이루어지는 두 대상 사이의 접촉 경계인 피부의 장(場)에선 마음속 마음, 즉 진심이 담긴 감각적인 또는 정서적인 ‘소통이 이루어진다’고 본다. 이것은 매우 신뢰도가 높은, 중요한 커뮤니케이션의 근거가 된다. 따라서 이를 한 마디로 정리하자면 ‘피부는 우리의 정서를 비추어주는 거울’이라고 할 수 있다.      


의사소통에서 터치의 기능

남성끼리 대화를 나눌 때는 볼 수 없는 장면들이 여성끼리 대화를 나누는 모습에서 나타난다. 서로 말로 소통을 하면서도 다양한 신체접촉을 한다. 손을 잡고, 웃으며 상대방을 때리기도 하고, 꼬집고, 어루만지고, 옷에 묻은 머리카락이나 보풀을 떼어주고, 그리고 팔짱을 끼고 걷는다. 


이처럼 의사소통 과정에 개입하는 신체적인 접촉은 어떤 역할을 할까. 그에 대해서 미국의 리처드 포터와 래리 샘오바르(Porter & Samovar) 등의 연구에 따르면 다음과 같이 세 가지로 정리가 된다.     


1. 감정을 일깨워준다
신체접촉을 통한 상호작용은 흔히 숨겨진 감정이나 느낌을 불러일으키고 자신과 상대방에 대한 새로운 이해심을 갖게 한다.     

2. 신호의 기능을 한다
의사소통의 시작과 끝맺음에 필연적인 요소인 인사 행위는 대부분 문화에서 악수나 껴안음과 같은 신체접촉과 결부되어 있다. 이런 인사 행위 외에도 서로 얼싸안으면서 축하를 한다든가 자신에게 관심을 돌리기 위한 신호로 팔이나 어깨를 만지는 행위도 접촉을 통해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다.      

3. 의사소통을 주고받는 기능을 한다
사람의 피부는 단순한 감성 기관만이 아니라 최초의 의사소통 기관이다. 부모와 어린아이와의 의사소통은 신체접촉을 통해 이루어지고 메시지의 의미도 전달한다. 접촉 메시지는 친밀함 또는 적의를 표현하는 등의 정보를 제공한다.      


따뜻한 보살핌의 손길을 체험하면서 이루어지는 신체 접촉을 중심으로 이루지는 약손명상테라피를 기반으로 하는 신체심리치료 장면에선 접촉의 접점인 피부에서 많은 느낌들에 대한 알아차림이 일어난다. 피부에 피부가 맞닿는 접촉 현상을 통해 피부 안의 전체로서 자기, 자아는 무의식에 저장된 감정적 기억들을 회상할 수 있도록 의식으로 떠올리면서 정서적 반응을 나타내게 만든다. 


신체심리치료 세션에서 내담자들은 접촉 체험으로부터 진정으로 공감받고 보살핌을 받고 있다는 느낌을 몸으로부터 알아차리면서 마음이 움직이고 ‘감정’이 올라와 눈물을 흘리고 깊은 한숨을 내쉬는 등의 신체 반응을 보이곤 한다. 그런 모습을 바라보면서 한 존재의 삶에서 격려받지 못했던 ‘애씀’, 풀지 못하고 억누르며 살았던 ‘분노’, 그리고 깊은 슬픔과 수많은 아픔의 이야깃거리들에 마음이 시려지곤 한다.


우리의 온 몸을 감싸고 있는 피부 안에는 이 세상에 ‘나’로써 존재하는 단 한 사람, 그 개인의 신체적 자기 안에 심리적 자기의 공간이 있다. 그런 맥락에서 몸은 곧 마음이며, 몸을 보살펴주는 행위는 상처받은 아픈 마음을 어루만져 주는 행위와도 같다. 따라서 온전하게 건강한  삶을 향한 근원 치유 메소드인 신체심리치료는 몸을 통해 '마음속의 마음'에 다가가는 신성의식이다.   


이달희신체심리치료센터

http://somaticpsychotherapy.modoo.a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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