접촉의 심리치료 32_상심증후군
마음이 아프면 몸도 아프다. 우리의 온몸을 감싸고 있는 피부 안에는 이 세상에 ‘나’로써 존재하는 단 한 사람, 그 개인의 신체적 자기 안에 심리적 자기의 공간이 있다. 그런 맥락에서 몸은 곧 마음이며, 몸을 보살펴주는 행위는 상처받은 아픈 마음을 어루만져 주는 행위와도 같다.
―이달희, 터치의 심리학 칼럼 “피부에서 마음을 느낀다”중에서
사랑이 무엇이길래
교통사고를 당하시고도 꿋꿋하게 견뎌내셨던 어머니께서 안타깝게도 세상을 떠나신 지 얼마 되지 않았다. 사랑이 가득하셨던 어머니의 별세는 한동안 우리 형제 모두에게 깊은 슬픔을 남겨주었다. 미국에서 어머니를 모시고 살면서 정이 더욱 깊었던 동생은, 어머니의 별세 이후 그리움으로 마음의 고통이 심해 오랫동안 삶의 의욕도 잃을 정도였다.
우리는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슬픔을 이야기할 때, 몹시 슬퍼서 마음이 아프다는 표현인 비통하다, 가슴이 찢어질 듯 아프다고 표현하곤 한다. 그리고 황홀한 사랑에 빠지게 되는 것과 같이 뜻밖에 너무 좋은 일을 경험할 때는 가슴이 터질 듯 기쁘다고 한다. 그처럼 우리말에 담긴 뜻과 같이 사랑에 관련된 두 가지 극단의 마음의 작용, 감정은 모두 우리 인간의 심장에 큰 영향을 미친다는 의미다.
심장 질환이 감정과도 관련이 있다는 심증은 있었으나 의학적으로 규명하기는 어려웠었다. 하지만 현대의학의 발전을 이끌어온 미국에서 1980년 전후부터 친밀함, 또는 과학자들이 입에 담기 꺼려했던 ‘사랑’에 대해서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하지만 아직까지도 사랑에 대한 연구의 성과는 그리 흡족한 수준은 아니다.
객관적으로 측정하기 어려운 주관적인 정서상태인 ‘사랑’은 생물학적으로 인간이 존재할 수 있게 해주는 필수 불가결한, 본능으로서 중요한 요소다. 미국에서 긍정심리학이 시작되면서 텍사스대학 심리학과 교수들인 토드 샤켈 포드와 데이비드 부스(Shackellford & Buss)는 진화론적인 관점에서 ‘사랑은 인간의 적응을 돕는 속성이다’라고 언급하고 있다. 인간의 ‘적응’을 돕는 속성으로서 사랑의 경험은 단순히 유전자, 호르몬, 그리고 신경전달물질의 작용만으로 설명되기 어렵다. 사랑은 인간이 갖고 있는 여러 가지 속성들의 위계(位階)로 볼 때 가장 아랫부분인 동물적 속성인 본능과 가장 윗부분인 초월적인 의미를 갖는 신성의 영역에 놓인다.
사랑이 무엇이길래 사람의 삶을 기쁨으로 만들어주어 힘을 실어주고, 사랑의 대상을 상실하거나 그 대상으로부터 버림을 받을 때에는 마음에 큰 상처를 주고, 사람의 생명에까지 영향을 미치는 것일까. 사랑은 두 사람을 연인으로 만들고, 결혼을 통해 부부의 연을 맺게 한다. ‘죽음이 우리를 갈라놓을 때까지’라고 언약하고 평생 사랑하며 해로한 부부에게 남은 바람은 한 날 한 시에 세상에 떠나는 것일까. 그렇게 동시에 사망하는 경우는 아주 드문 경우이지만, 한쪽 배우자가 사망하고 얼마 되지 않아 다른 배우자가 사망하는 경우는 우리 주변에 간혹 있다.
너무 슬프거나 기뻐도 심장은 충격받는다
배우자뿐만 아니라 자식이나 부모의 갑작스러운 사망, 사랑하는 사람과의 이별, 깊은 슬픔, 분노, 공포 같은 심리적 충격으로 ‘마음이 상해’ 일시적으로 심장발작과 비슷한 증세가 나타나는 것을 요즘 ‘상심증후군(broken heart syndrome)’이라 부르고 있다.
서울아산병원의 자료에 따르면 상심증후군 발생의 생리적 메커니즘은, 아드레날린과 비슷하지만 양이 많을 경우 심장에 독이 될 수 있는 카테콜아민(CA, catecholamine)의 과도한 분비 때문에 발생한다고 한다. 카테콜아민은 교감신경 자극 전달물질로 부신 수질-교감신경계 기능을 알 수 있게 하는 중요한 지표다. 스트레스 상황에서 교감신경이 활성화되면 카테콜아민의 분비가 증가된다. 이로 인해 심장의 펌프 능력이 크게 떨어지면서 가슴이 터질 듯한 아픔과 함께 숨쉬기조차 힘든 상황에 빠지게 된다.
상심증후군은 ‘타코츠보 심근증(Takotsubo cardiomyopathy)’이라고도 불린다. 1990년 일본에서 지진 피해자들에게서 처음 발견되었는데, 좌심실이 수축해 좌심실 위쪽이 부풀어 오른 모양이 일본에서 쓰는 낙지나 문어를 잡는 항아리인 ‘타코츠보(たこつぼ [蛸壷])’와 비슷하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미국 하버드대학과 위스콘신-매디슨대학의 공동연구팀은 9년간 미국의 결혼한 노부부 27만 3189쌍을 대상으로 배우자의 죽음이 남은 이들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해 조사한 내용을 2008년에 발표했다. 그 결과 남성의 경우 아내와 사별한 뒤 뒤이어 사망하게 될 확률이 18%나 증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여성의 경우에는 이러한 확률이 16% 정도 높아졌다.
배우자의 죽음은 사망 원인을 불문하고 남은 배우자의 건강에 상당히 위협적인 영향을 미치게 되며 어떠한 원인에서라도 사망할 확률이 높아진다. 특히 배우자를 잃은 깊은 상실감과 이로 인한 외로움, 우울감, 스트레스 등 '상심증후군'으로 인해 사망 위험이 커진다고 연구팀은 설명했다. 아울러 갑작스러운 사고나 응급상황 또는 병이 생겨 사망할 확률 역시 높아진다고 덧붙였다.
반면, 너무 기쁘고 행복한 사건도 이러한 증상을 유발할 수 있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2016년 3월, 사이언스 데일리의 보도에 따르면 스위스 취리히 대학병원 심장전문의 엘레나 가드리(Jelena Ghadri) 박사가 9개국의 25개 협력 의료기관에서 치료를 받은 ‘상심증후군' 환자 1천750명의 자료를 조사 분석한 결과 이 같은 사실이 밝혀졌다고 한다.
전체 환자 중 485명은 심리적 충격이 결정적인 요인이었으나, 20명(4%)은 생일잔치, 아들 결혼식, 손자 출생, 자신이 응원하는 럭비 팀의 승리, 50년 만의 친구 만남, 카지노에서 잭팟 당첨 등 기쁘고 즐거운 사건으로 발생한 환자로 밝혀졌다. 가드리 박사는 이런 경우를 ‘상심증후군’과 구분할 필요가 있어 '행복 심장증후군'(happy heart syndrome)이란 이름을 붙였다. '상심증후군'과 '행복 심장증후군' 모두 환자의 95%가 여성이었고, 평균 연령은 '상심증후군' 환자가 65세, '행복 심장증후군' 환자는 71세였다. 이 연구결과는 유럽 심장 저널(European Heart Journal) 2016년 3월 2일 자에 실렸다.
이러한 최근의 연구결과들을 보면 가슴이 찢어질 듯 비통한 마음이 되게 하는 슬픈 사건이든 너무 기뻐 가슴이 터질 것같이 즐거운 사건이든 그로 인한 심리적 충격은 스트레스 유발성 심근증을 유발하는 감정적 경로가 된다는 것은 명확한 것 같다.
미국의 심리학자 제임스 린치(James Lynch)는 외로움과 사회적인 고립이 인간의 건강에 미치는 연구의 선구자로 정신신체장애(psychosomatic disorder) 전문가다. 그는 자신의 책 <외로움의 의학적 결과 : 상처받은 마음(The Broken Heart: The Medical Consequences of Loneliness)>을 통해 이러한 상심증후군의 위협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해주고 있다.
그의 연구결과에 따르면 상심증후군의 환자들에게 사랑을 체험할 수 있는 따뜻한 접촉은 이들의 치유에 아주 긍정적인 효과가 있음을 보여주었다고 한다. 급성 심장질환 때문에 심박동이 빠르고 불규칙한 환자는 물론, 집중치료실에 있는 혼수상태의 환자까지 간호사가 손을 잡은 채 다정하게 말을 거는 것만으로도 상태가 안정되었다. 상처받은 마음을 가지고 고립된 채 외롭게 살아가는 사람들은 건강에 위험할 수 있다면서 그는 ‘사랑에 빠져라’라고 그들에게 처방한다. 신체심리치료를 하는 필자는 상심한 내담자들이 신체적인 접촉을 통해 사랑받고 있다는 느낌과 서로 연결되어 있음을 알아차리는 체험을 하면서 회복되었던 사례들을 근거로 이렇게 바꾸어 말한다.
“사랑을 잃어 아픈 마음을 따뜻한 사랑의 손길로 어루만져라. 몸은 바로 마음이다.”
세상 떠난 아내 그리워 10시간만에 따라 죽은 남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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