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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달희 Feb 01. 2017

요나 콤플렉스
-최초의 불안과 공허감

접촉의 심리치료 33_공허감

하나님의 명령으로 '큰 물고기'는 요나를 삼켰고
그는 3일 밤낮을 고기 뱃속에 있었다.
고기 뱃속에서 그가 구원을 위한 기도를 올리자
물고기는 그를 ‘땅으로 뱉어 내었다’.
-성경 요나서 2장      


둘이었으나 하나였던 그곳

“생각하는 것도 공허하고, 밥 먹고 사는 것도 공허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끊임없는 공허감을 호소하던 한 내담자는 신체심리치료 작업을 할 때 두 발을 모아 끌어안고 흔들거리면서 마치 다시 어머니의 자궁 안으로 들어가 태내 아이가 된 듯한 행동을 보이곤 했다.  


공허감은 주관적 체험이다. 공허하게 느끼면서 다른 사람과의 관계는 상실되었다는 느낌을 지닌다. 그이에게 삶은 더 이상 이치에 맞는 것 같지 않고, 미래에는 행복도 희망도 없고, 추구하고 동경하고 열망할 것이 아무것도 없다. 그리고 더 이상 아무도 사랑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아무도 자신을 사랑할 가치가 없다고 느낀다. 눈보라가 몰아치는 추운 광야에 홀로 서있는 듯했던 그이의 외로움에 가까웠던 공허감은 따뜻한 사랑의 접촉행위를 통해 조금씩 녹아갔다. 지금 여기에 나라는 존재는 가장 외롭다는 것을 드러내었던 이 내담자 자기 위안 행동은 바로 자기의 생명을 온전하게 보듬어주었던 그곳 엄마의 자궁으로 되돌아가고 싶다는 본능적 행위였다. 


지극한 사랑을 온전하게 체험하면서 느낀 곳, 어머니의 자궁은 우리 인간에게 마치 고향과도 같은 곳이다. 인간으로서 우리 모두가 간직하고 있는, 사랑의 근원이면서 마르지 않는 에너지의 샘물과도 같은. 엄마와 나, 둘이었으나 아직은 분리되지 않은 채 하나로 융합되어 있던, 생애 초기 경험은 인간이 왜 접촉을 그리워하는지에 대한 유일한 해답이다. 


피부와 피부가, 몸과 몸이 사랑이란 이름으로 접촉하고 있는 동안, 삶에 지친 우리 몸과 마음은 잠시나마 우리가 온 곳이며 또 우리가 언젠가는 돌아가야 할 영원한 안식이 있는 그곳에서 머물다 온다. 둘이었으나 하나였던 그곳으로 말이다.  


어머니와 태아였던 내가 하나임을 느끼게 해 준 자궁에서의 온전한 접촉은, 대자연에서 모든 존재는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는 유대감을 몸으로 익히게 해준다.     


하나로 연결된 생명의 배꼽

엄마와 ‘나’를 이어주던 배꼽. 우리 몸의 한가운데에 자리 잡고 있는 배꼽은 우리가 어디에서 온 것임을 알게 해주는 ‘근원’에 대한 상징이다. 인간에게는 그러한 생명의 근원이었던 엄마의 자궁으로 돌아가고픈 본능적인 욕구가 있다. 엄마와 내가 하나임을 느꼈던 바로 그때 말이다.

     

구약성서에 나오는 예언자 요나는 하느님의 부르심을 받고도 도망쳤다가 큰 고기 뱃속에 들어가게 된다. 그곳에서 살아 나와 회개하는 인물인 요나의 이야기에서 인간이 가지고 있는 모태 귀소본능(母胎歸所本能)을 말하는 ‘요나 콤플렉스’가 유래되었다. 


요나 콤플렉스란 아직 성년이 되지 않은 소년기에 나타난다. 어떤 공간에 감싸이듯이 들어 있을 때에 안온함과 평화로움을 느끼면서 지나치게 폐쇄적 성격을 보이거나, 유아기 혹은 아동기의 습관이나 엄지손가락을 빠는 등의 퇴행적인 증상을 보이는 것, 쉽게 말하자면 엄마 뱃속 시절을 그리워해 현실에 적응을 못하는 것을 말한다. 

‘요나 콤플렉스(Jonah complex)’는 분석심리학의 창시자인 칼 융(Carl G. Jung)이 자신의 운명이나 사명을 피하려는 인간의 무의식적인 성향을 설명하면서 언급했다. 심리학의 제3세력인 인본주의 심리학과 제4세력이라 불리는 트랜스퍼스널 심리학을 이끈 에이브러햄 매슬로(A. Maslow)는 인간은 무한한 잠재력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실패에 대한 두려움과 성공에 대한 의심 때문에 자기를 제한하는 요나 콤플렉스를 가지고 있다고 말한다.


한편, 프랑스의 과학 철학자인 가스통 바슐라르(Gaston Bachelard)는 <공간의 시학(La Poetique De L'Espace)>이라는 저서에서 요나 콤플렉스에 대해 언급했다. 즉, 그것은 우리들이 어머니의 태반 속에 있을 때에 우리들의 무의식 속에 형성된 이미지로서, 우리들이 어떤 공간에 감싸이듯이 들어 있을 때에 안온함과 평화로움을 느끼는 것이 바로 이 요나 콤플렉스이다.      


모태 회귀본능과 그리스도 부활의 모티프를 중심으로 ‘요나 콤플렉스(Jonah complex)’ 개념을 정교화한 것은 바슐라르였다. 바슐라르는 요나 콤플렉스가 어머니의 태반 속에 있을 때 무의식 속에 형성된 것으로서, 이 때문에 인간은 감싸인 듯 내밀한 공간에서 안전함과 평화로움을 느낀다고 말했다. 즉 요나 콤플렉스는 부드럽고 따뜻하며 결코 습격받은 적이 없는 편안함에 대한 지향으로, 모태로의 회귀본능을 근본으로 한다. 그런데 바슐라르에 따르면 요나 콤플렉스에는 또 하나의 주제가 깔려 있다. 그것은 바로 부활이다. 요나 콤플렉스의 핵심은 큰 물고기에 삼켜진 요나가 밖으로 토해지는 대목, 즉 재생의 순간에 있다. 이른바 ‘요나의 기적’이다.


바슐라르의 요나 콤플렉스는 모성 속에서의 죽음과 재탄생을 거쳐 완성된다. 그에게 물고기 뱃속에 삼켜진 요나의 상태는 애벌레와 나비의 중간 존재인 ‘번데기’와 같다. 번데기 안에 ‘갇힌 존재, 보호된 존재, 숨겨진 존재’는 곧 나비가 되어 날아오를 것이다. 그 비상(飛翔)에는 삶과 죽음이 한데 어우러져 있다.     


생물체로서 우리가 최초로 받은 인상은 어머니의 자궁벽에 둘러싸여 황홀하게 떠다닐 때 느끼던 친밀한 촉감이다. 점차 발달해가는 신경계에 미치는 주요 자극은 촉감과 압박감과 움직임 같은 여러 감각이다. 또한 태아의 피부는 온통 어머니의 따뜻한 양수 속에 잠겨 있다. 그리고 태아는 자신의 몸이 나날이 성장함으로써 발생하는 자궁과의 밀착으로 자궁에 둘러싸인다는 감촉을 느끼고, 그 부드러운 감촉이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더 강해지고 꼭 안긴다고 느낀다. 더욱이 이 기간을 통해 태아는 어머니의 폐로부터 호흡으로 생기는 리드미컬한 압박과, 걸을 때 생기는 부드럽고 규칙적인 진동을 느낀다.

-데스몬드 모리스, «인간의 친밀 행동»중에서      


어머니의 뱃속에서 웅크린 채 손가락을 입에 넣고 빨면서 잠들어 있는 태아의 모습을 떠올려보라. 슬프고, 외롭고, 힘들고, 아플 때 그런 모습으로 웅크리고 있는 자신을 본 적이 있지 않으신가? 엄마 뱃속의 자궁은 모든 불안과 위험 요소로부터 격리되어 안전하게 보호받는 존재로 머물 수 있었던 곳이었다. 힘겨운 사회생활에 지친 사람들이 무장을 해제하고 편히 쉴 수 있는 고향과도 같은 자궁은 영원한 그리움의 대상으로 우리 마음속에 간직된 안전함의 상징적 원형이다. 


인간이라는 존재에서 삶은 홀로 견뎌야 하는 외로움이 아니라 함께하는 어울림이며, 슬픔이 아니라 기쁨이며, 소진된 생의 에너지는 언제든 채워질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고 살아갈 수 있어야 한다. 혼란스럽기만 한 이 세상에서 인간이 삶을 살아낼 수 있게 해주는 생의 마지막 안전망은 바로 피부와 피부의 따뜻한 접촉이다. 안전하게 보호받고 보살핌을 받고 있다는 느낌은 어머니의 자궁 속과 같이 부드럽게 꼭 안긴다는 느낌을 주어야 하며 호흡과 심장의 맥동과 같이 부드럽고 규칙적인 리드미컬한 진동과 압박이 있어야 한다. 필자가 하고 있는 약손명상테라피에 기반을 둔 신체심리치료의 치유적 메커니즘이 바로 그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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