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초에서의 첫 날. 관광지로서의 속초보다도 평소 내가 잘 알아차리지 못했던 생각들을 알 수 있었던 소중한 하루였다. 가족에 대한 애틋함, 혼자 여행하는 것에 대한 나의 느낌 그리고 혼자 살아보는 것에 대해서.
속초는 오전 일정으로 오후 2시에 느지막히 출발했다. 집에서 잠깐 쉬고 있을 때였는데 엄마가 나에게 다가오더니 5만 원짜리 지폐 한 장을 건넸다. 나는 왠 5만 원이냐며 용돈이냐고 물었지만 엄마는 별 대답이 없었다. 우리집 류여사님의 투박한 사랑 표현ㅋㅋㅋ 집 밖에서 제대로 잘 먹고 다니라는 말인 것 같아 괜시리 마음이 뭉클해졌다.
아빠는 내가 가는 데까지 데려다주겠다며 함께 집을 나섰다. 시외버스를 기다리는 동안 아빠와 잠깐 커피를 홀짝이고(처음 해본 일이다ㅋㅋㅋ) 드라이브를 했다. 버스를 기다리는 시간이 지루할 것 같다고 생각했는데 이것 저것 하니까 시간이 금방 갔다. 아빠는 내가 자리에 앉아 버스가 떠날 때까지 있었다.
사실 평소에는 이렇게까지 같이 시간을 보내지 않기도 하고 뭔가 쑥스러워서 일상적인 대화도 잘 나누지 않는 것 같은데 가끔 이렇게 엄마 아빠의 사랑을 진하게 느낄 때가 있다. 엄마 아빠만의 사랑 표현법을 다시 알기도 하고, 또 그런 생각도 든다. 나도 나중에 내 자식한테 엄마 아빠 같은 사랑을 줄 수 있을까?
오후 2시 넘어서 출발해서 속초는 6시가 다 되어서야 도착했다. 바다를 보니까 실감이 났다. 내가 진짜 속초에 왔구나!
속초에서의 첫 끼니를 무엇으로 할지 굉장히 고민하다가 새콤한 음식으로 입맛을 돋구어주고 싶었다. 문득 속초에 오기 전부터 내가 계속 막국수를 먹고 싶었다는 게 생각났다. 그런데 괜찮은 막국수집을 찾지 못해서 냉면으로 대신했다.
확실히 이번 속초 일정이 평일인데다, 비수기여서 그런지 딱 저녁 먹을 시간임에도 사람이 많지 않았다. 식사하러 올라간 2층은 거의 쓸쓸함에 가까운 한적함이었다. 나는 쫄깃한 명태회가 들어 있는 함흥냉면을 시켰다. 면발도 굉장히 쫄깃하고 명태도 양념이 잘 배어 있어서 육수로 간을 조절해 함께 먹기 참 좋았다.
사람 한 명 없는 곳에서 조용히 식사를 하고 있자니 뭔가 어색한 기분이 들었다. 그러고보면, 나는 항상 여행할 때 누군가와 함께 여행을 했다. 대화와 시덥잖은 장난으로 오디오가 빌 틈이 없었다. 저절로 가족 생각이 났다. 가족들이랑 같이 오면 참 좋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속초에 도착해서 느낀 저녁 즈음 비수기의 속초는 꽤나 고요해서 '와 신난다~!'는 느낌보다도 저절로 차분해졌던 것 같다. 내가 간 곳이 왁자지껄한 곳이 아니어서 그런 것일 수도, 혼자 와서 그런 것일 수도 있다.
혼자서 뭘 못하는 성격도 아니고 혼자서도 잘 노는 편이지만, 누군가와 함께였다면 더 재밌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동시에 사색하는 시간을 갖고 싶을 땐 혼자 여행하는 것만큼 좋은 것도 없을 것 같다.
숙소는 내가 생각한 것 이상으로 쾌적하고 좋았다. 특히 전자레인지부터 인덕션, 세탁기, 건조대까지 구비되어 있어서 정말 속초에 일주일 머무는 데 부족함이 없었다.
저녁을 먹고 숙소에 가는 길에 편의점에 들려 속초에서의 첫 날을 장식할 맥주와 안주를 샀다. 이런 게 항상 로망이었다ㅋㅋㅋㅋㅋ 혼자 살게 되거나 혼자 여행했을 때 자기 전에 맥주 마시면서 글쓰기. 그렇게 하루를 마무리하기. 내가 진짜 살아보고 싶었던 순간이자 앞으로도 이런 삶을 살고 싶어서 특별히 기록해본다. 속초 일주일살기 동안 내가 경험한 이곳의 공기와 온도, 소리 등을 최대한 몸에 자세히 기억해두어야지!
아침에 일어나서 어제 다 못 쓴 글을 마무리하는데 커튼 사이로 어스름히 들어오는 빛이 참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