뽀송뽀송 내면일기 4
자기 자신을 열심히 꾸미고 가꾸는 사람은, 내게 오랫동안 선망의 대상이자 냉소의 대상이었다. 자기한테 어울리는 예쁜 옷을 입고, 화장을 하고, 잔뜩 멋을 내고, 카메라 앞에 서서 예쁜 표정을 지어보이는 것. 솔직히 말하면, 나도 그런 쪽의 사람이고 싶었지만 그 마음을 업신여기기 일쑤였다. 남한테 예뻐보이려고 뭐 저렇게까지 하냐? 저건 자기 기준보다 타인의 시선에 민감한 거야. 있는 그대로의 자기 모습을 사랑하지 못하고 있는 거야. 나는 자기 자신을 자유롭게 표현하고 꾸미는 사람들의 선택을 마음 속으로 함부로 재단하며, 모든 욕망을 초월한 사람인 것 마냥 고고한 척, 고매한 척, 위선을 떨었다. 예쁘게 보이고 싶으면서도, 예쁘게 보이려는 마음을 우습게 여겼다.
자기 스타일이 있는 사람, 자기만의 스타일을 추구하는 사람을 보면 어딘가 배알이 꼴렸다. 사회적 동물로 마지막 남은 분별은 있어서, 겉으로 드러내지는 않고 마음 속으로 많은 이들을 있는 힘껏 비웃으며 지내왔다. 뭐야, 홍대병 걸린 것 같아. 왜 저렇게 입어? 오글거려.... 내면을 먼저 가꿔야지. 호박에 줄 긋는다고 수박되냐. 지금 생각해보면, 나도 그런 사람이 되고 싶은데, 그럴 수 없음에 대한 심술이자 질투였던 것 같다.
내가 자라온 환경을 보면, 신기하게도 그 누구 하나 '외면'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이 없었다. 일단 우리 가족, 엄마부터 꾸미고 치장하는 데 관심이 없었고, 어렸을 때 친하게 지냈던 친구도 마찬가지였다. 오히려 그 때의 분위기는 꾸미는 데 신경 쓰면, 어른 말 잘 안 듣는 아이, 공부에는 하등 관심 없고 노는 것만 좋아하는, '날라리' 같다는 인식이 있었다. 꾸밈은 하찮은 것, 중요하지 않은 것으로 자주 간주되고 억압되었다. 나는 사회와 어른들이 만든 '바른 아이' 틀에 들어가 사랑을 받고 싶어서 열심히 촌스러웠다.
내 안에 외면보다 내면이 훨씬 중요하고 높은 가치라는 생각, 외면 가꾸기를 터부시 해왔다는 걸 알아차리게 된 지는 얼마 되지 않았다. 어느 날, 나한테 좀 더 솔직해져보자는 물음이 세워졌다. 내가 진짜 원하고 바라는 게 뭐야? 그래서, 예쁘게 보이고 싶다는 거야, 아니라는 거야? 나만의 스타일을 가지고 싶다는 거야, 아니라는 거야? 나는 예쁘게 보이고 싶은 마음, 나만의 스타일을 갖고 싶은 마음이 있으면서도 정작 그것을 스스로에게 '허용'하지 않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예쁘고, 잘 꾸미는 사람이 되고 싶었지만, 실제 내가 갖고 있는 마음은 멸시와 하대하는 마음이었으니, 그런 사람이 될 수 없는 것은 당연했다. 원하지만 강렬히 원하지 않고 있었다.
이제야 내가 갖고 있었던 이중적인 마음을 알아보고, 예쁘고, 꾸미고 싶은 마음을 있는 그대로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나는 '예뻐지려는 노력, 예쁘고 싶은 마음'이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사랑 받을 수 없는 것이라 생각하고 거부감을 가지고 있었다. 예쁘고 싶은 마음, 예뻐보이고 싶은 마음 안에는 그냥 내가 표현하고 싶은 대로 나를 자유롭게 표현하고, 내가 추구하는 모습이 되고자 하는 소중한 마음이 들어 있었다. 가장 나다운 모습을 보여주고, 당당해질 수 있는. 내가 생각하는 나의 이상적인 모습에 가까워지기로 결심하고 노력하는 것이었다.
나에게, 예쁘고 싶은 마음이 있다는 걸 인정하고, 허용해준 지 얼마 되지 않아서, 스스로 예쁘다 여기고, 예쁘다 말해주는 게 어딘가 쑥스럽고, 낯간지럽고, 어색하다. 근데, 이것도 즐겨야지. 뻔뻔해져야지. 내가 먼저 나를 예쁘다고 봐주지 않으면, 어여삐 여기지 않으면, 누가 나를 예쁘다고 봐주나. 언제나 '지금'이 가장 찬란하고 아름다운 순간이기에, 더 열심히, 최선을 다해 내가 가진 예쁨을 표현하고 남겨야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이제 시작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