뽀송뽀송 내면일기 5
'공부'는 참 요상한 무엇이다. 스스로 좋아한다고 생각해 본 적 없는데, 좋아하는 것 같고, 알러지 같은 반응이 올라오다가도, 평소 즐겨서 하고 있는 것이다. 뭐, 그렇다. 알 수 없다. 애증이다.
세상엔 정말 다양한 공부가 있다. 수능공부, 마음공부, 철학공부, 자기공부, 영상공부 등 자기 관심사나 세상이 정해준 공부부터, 해야 하는 공부, 마음이 이끌려서 하는 공부, 의지로 하는 공부, 재밌어서 하는 공부 등 내 의지를 쓰거나 그저 자연스럽게, 물 흐르듯 하는 공부까지. 이처럼 '공부'라 함은, 넓은 스펙트럼을 가진 단어인데, 이상하게 '공부'라는 두 글자를 떠올리면, 징그럽고, 하기 싫다는 마음이 가장 먼저, 강하게, 또렷하게 올라온다. 아마, 어렸을 때부터 오랫동안, 하기 싫은 공부를 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그 공부는, '수능공부'.
그 공부는 솔직히 지금 생각해도, 왜 해야 하는지, 어떤 쓰임이 있는지 도통 알 수 없는 일반쓰레기 같은 공부다. 이건 결코 치기 어린, 어리숙한 분노, 설익은 마음 같은 것이 아니다. 나는 수많은 사람들이 이 일반쓰레기 공부에 귀하디 귀한 세월을 빼앗긴 것도 모자라, 아주 오랜 시간, 마음에 깊은 자상을 안고 살아가고 있다고 생각한다. 지금도.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사회인이 되었어도, '학벌'과 '자기 능력', 내지는 자신의 존재감과 결부시켜 스스로의 자존감을 깎아내리며 살고 있는가. '~에 들지 못했다'는 채울 수 없는 갈증, 부족하다는 자기 인식, 소외되고 밀려난 슬픔... 그 마음을 어찌 치유할 수 있을까.
모두가 타고난 대로, 각자 다른 재능과 고유함을 포용하고 독려해 주지는 못할 망정, 고작 '수능'이라는 몇 시간짜리 시험 하나로 줄을 세워서 등급을 매기는 꼬라지라니..... 그 울타리 안에 들어가지 못한, 않은, 여기서부터 소외되고 밀려난 사람들이 얼마나 많나. 일찍이 '수능'이라는 하나의 기준, 잣대로 이 사회와 시스템이 오랜 기간 굳건히 유지되어 왔고, 유지되고 있다는 걸 생각하면.. 이것이야말로 가장 큰 적폐가 아닐까.
세상에 이 공부만큼 폭력적이고 잔인한 공부가 있나? 개개인이 가지고 있는 독창성과 재능을 보지 못하게 구조적으로 막고 있는.. 아주 답답하고 죄가 중한 공부. 그래서 나는, 공부가 좋으면서도 여전히 뿌리 깊은 거부 반응을 느끼고 있는 중이다.
생각해보면, 나도 꽤나 알아가고, 학습하고, 배우는 걸 좋아하는 사람인데. 공부라는 두 글자를 온전히, 깨끗하게 좋아하게 되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