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 별 듣는 말 특징
나이 별 듣는 말 특징이라는 제목으로 다음과 같은 글을 보았다.
고1: 너 중학생 아니야
고2: 너 이제 고3이야
고3: 너 이제 수능이야
대1: 너 이제 고등학생 아니야
대2: 너 신입생 아니야
대3: 너 이제 졸업 얼마 안 남았어
대4: 너 이제 취준생이야
취준생: 너 이제 백수야
직장인: 너 아직 신입이야
대리: 너 이제 신입 아니야
다음 한 줄로 넘어갈 때마다 어찌나 숨이 턱턱 막히고 체할 것 같던지. 모든 문장이 '과정'을 존중하지 않는다. '과정'을 버티지 않는다. 오직 그 다음, 다음이다. 우리나라가 '지금, 여기, 있는 그대로의 상태'를 '수용'하고 '받아들이지 않는구나' 라는 생각이 곧장 들었다. 어쩌면, 있는 그대로의 수용, 현존을 체험하고 단련하는 데 더할 나위 없는 환경이 주어진 것인지도 모른다.
문장은 계속 '지금'을 부정한다. 고등학교 1학년 때는 '고등학교 1학년'을 보는 것이 아닌, '중학생' 시절은 끝났다며 채찍질을 하고, 대학교 4학년 때는 이제 취준생이라며 번듯한 미래를 신속히 준비할 것을 재촉한다. 글이 풍기는 전반적인 분위기는, '지금, 있는 그대로의 상태에 현존'하는 것이 아니라 계속 앞만 보고 달리는 경주마들의 경기다. 지금 서 있는 발 아래를 보는 게 아니라, 자꾸만 고개를 쳐들고 100m 앞만 보고 있다. 실제 다수가 우리 사회의 분위기를 이렇게 느낀다면, 어떻게 불안하지 않을 수 있을까. 내가 지금 서 있는 토대부터 긍정(수용)하지 못하는데 말이다. 높은 불안도를 느끼는 건 다 이유가 있는 것이다.
우리는 언제부터, 왜, 충분한 인정과 축하, 축배를 들지 않고, 계속 더, 더, 더, 더, 더, 더 나은 것, 더 높은 것만을 외치게 되었을까. 지금, 여기, 있는 그대로를 존중하고 수용하지 않고, '부정'부터 하는 사회에서는 아무도 충만하게 행복해질 수 없을 것이다. 서로가 서로의 발목을 붙잡을 수 밖에 없을 것이다.
불안은 마음이 편하지 않고 조마조마한 상태를 말한다. 나이 별 듣는 말 특징처럼 '나의 지금'을 현존하지 못하고, 수용하지 못하면 마음이 불편할 수밖에 없다. 이는 곧, 스스로를 '불완전'하다고 여기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 사회에 만연한 불안과 과도한 성장주의를 치유하는 건, '지금, 여기'에서부터다. '지금, 여기, 있는 그대로'를 인정하고, 수용하고, 받아들이는 것부터 시작이다. 수용할 때 비로소 완전해진다.